추경 불용액 왜 많나

▲ 정부는 이번 추경을 구조조정 지원과 일자리 창출에 맞추고 있다지만, 목적에 맞는 추경이냐는 지적이 많다.[사진=뉴시스]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이 일부 수정을 거쳐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런데 난데없이 추경무용론이 나온다. 박근혜 정부 들어 두차례의 추경을 했지만 결산을 해보니 본예산보다도 더 적은 돈을 지출해서다. 철만 되면 ‘추경 추경’하면서 노래를 부르는데 대체 어디에 썼는지, 왜 쓰지 않았는지를 말해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유럽 재정위기 등 대외경제 여건이 좋지 않다. 우리 경제도 1% 미만의 저성장이 2년 가까이 지속되면서 경제 활력이 크게 떨어졌다. 다양한 정책조합을 통한 경제 활력 제고를 위해 추경을 편성할 필요가 있다(2013년 4월 현오석 전 경제부총리).”

“메르스로 인해 병ㆍ의원 등 의료업계와 도소매ㆍ관광 업종은 큰 피해를 입었다. 악화된 경제 여건으로 세입도 당초보다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세입 부족으로 재정 지출 여력이 줄어들면 경제와 민생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2015년 7월 박근혜 대통령).”

박근혜 정부는 출범 이후 두번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다. 규모는 2013년 17조3000억원(세출확대 5조3000억원+세입경정 12조원), 2015년 11조8000억원(세출확대 6조2000억원+세입경정 5조6000억원)이었다. ‘민생 안정’과 ‘메르스’가 이유였지만, 취지는 똑같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거였다. 하지만 비판이 만만치 않았다. 야당은 “민생이라는 취지와 용도, 목적에 맞는 추경이냐” “재정건전성은 어떻게 책임질 거냐”는 등의 비판을 쏟아냈다.

그럼에도 정부와 여당은 결국 2013년엔 본예산 총지출보다 7조원이 더 많은 349조원을, 2015년엔 9조3000억원이 더 많은 384조7000억원을 총지출로 잡았다. 사정이 있어서 추경을 한다는데 굳이 토를 달 사람은 없다. 이미 예산이 성립한 이후라도 정부가 국정운영을 하는 데 있어 ‘부득이한 경우’가 생겼다면 얼마든지 추경으로 예산을 더 편성할 수 있다. 법률적 근거(국가재정법)도 있다.
문제는 정부가 추경을 통해 예산을 늘려놓고는 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2013년 결산 총지출은 추경포함예산 총지출보다 11조3000억원 적은 337조7000억원, 2015년은 12조7000억원 적은 372조원이었다. 본예산 총지출이 각각 342조원과 384조7000억원이었으니 그보다도 적다. 더구나 2013년 추경은 17조3000억원 가운데 15조8000억원을, 2015년엔 9조6000억원을 국채발행으로 조달했다. 쓰지도 않을 예산을 더 늘리기 위해 쓸데없는 정쟁을 하고, 빚까지 졌다는 얘기다.

예산을 쓰지 않은 이유는 여러 가지인데, 2015년의 경우 ‘예산절감과 집행잔액(40.7%)’ ‘지급사유 미발생(29.3%)’ ‘계획변경과 취소(14.7%)’ ‘세수부족(7.2%)’ ‘수시예산 미배정(1.0%)’ ‘기타(7.1%)’ 순이었다. 세수부족 때문에 집행하지 못한 게 아니니까 본예산만 제대로 활용해도 충분했다는 방증이다. 돈을 흘려보내야 할 곳에 못 보냈으니 추경 목적을 달성했을 리 만무하다. 정부가 이번에 또다시 추경을 편성하자 “추경의 필요성, 용도와 목적에 맞는 쓰임새, 추경의 효과 등을 고려해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빚까지 낸 추경, 무용지물

정창수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추경은 국가재정법에서 밝힌 사유에 따라 제한적으로 사용돼야 한다”면서 “불용액不用額이 많다는 건 충분한 심의 없이 졸속으로 통과된 추경이 많다는 것이고, 예산민주주의에도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이번 추경에서는 정부가 이런 지적을 불식시킬 만큼 제대로 준비를 했을까. 기획재정부가 명확하게 밝힌 이번 추경의 배경은 ‘구조조정 지원과 일자리 창출’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한파가 닥친 조선ㆍ해운업계에서 시작된 구조조정이 추경의 배경이라 봐도 무방하다. 지난 6월 김현아 새누리당 대변인이 “브렉시트(Brexitㆍ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와 산업 구조조정 등 국내외 경제 불안 요인에 대응하고 민생을 챙기기 위해 추경 편성은 필수불가결하다”고 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럼에도 추경예산의 용도를 보면 이런 목적을 염두에 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추경의 규모는 11조원(국회 본회의 의결이 남음)이다. 구조조정 지원에 1조9000억원, 일자리 창출과 민생안정에 1조9000억원, 지역경제 활성화에 2조3000억원, 지방재정보강에 3조7000억원, 국가채무 상환에 1조2000억원을 쓸 예정이다.

하지만 구조조정 지원에 들어갈 1조9000억원 가운데 국책은행 출자에 들어가는 돈이 1조4000억원이다. 조선업계를 위한 선박 발주는 고작 1000억원에 불과하다. 일자리 창출과 민생안정을 위해 편성한 1조9000억원 가운데 창업자금이 3000억원, 조선업밀집지역 일자리 지원 400억원, 생계급여와 긴급복지 200억원이다. 반면 용도조차 불분명한 예비비는 3조원이 넘는다.

이왕재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이번 추경의 약 40%가 의무지출이고, 국세수입 증가에 연동한 지방교부금 증가와 국채 상환 등이 대부분”이라면서 “이처럼 정부의 직접지출 비중이 낮으면 추경의 효과는 제한적일 뿐만 아니라 추경목적에 맞춰서 정책적으로 지출을 확대하는데도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불용액이 늘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지적했다.

본예산 잘 쓰면 추경 필요 없어

실제로 추경예산 11조원 가운데 9조8000억원은 올해 더 걷힐 것으로 보이는 세출 확대분이고, 1조2000억원은 세계잉여금(지난해 쓰고 남은 세금)이다. 문제는 국세는 쓰임새가 정해져 있어 추경예산을 쓰는데도 걸림돌이 많다는 거다. 이번 추경의 의무지출 비중은 2013년과 2015년에 각각 6.5%(불용액은 13.5%), 14.8%(16.0%)였던 것과 비교해 굉장히 높은 수준이다. 이 수석연구위원이 불용액이 늘어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김남희 참여연대 복지조세팀장은 “추경의 목적과 쓰임새가 따로 논다”면서 “추경안 조정 과정에서 없어지기는 했지만, 애초에 정부 추경안에는 울산에 전시컨벤션센터를 짓는 예산 128억원도 포함돼 있었는데, 그게 이번 추경의 목적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라고 꼬집었다.

정창수 교수는 “본예산은 1년에 걸친 정부의 계획과 체계적인 국회 심의를 통해 이뤄지는 예산이지만, 추경은 ‘타이밍’이라는 정부의 재촉과 함께 충분한 계획이나 심의 없이 편성된다”면서 “추경 편성보다는 본예산을 충실히 집행하는 게 훨씬 효율적인 재정운영”이라고 조언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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