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복의 까칠한 투자노트

▲ 환율을 결정짓는 주요 변수는 미국 기준금리가 아니라 경상수지나 외환보유고다.[사진=뉴시스]
최근 개인의 달러화 예금이 늘었다. 환차익을 노린 투자다. 그런데 이들은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ㆍFed)만 쳐다본다. 연준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면 원ㆍ달러 환율이 오를 것으로 속단하고 달러화 예금을 늘리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환율은 그리 간단치 않다. 경상수지, 자본수지, 국가가치 등 변수가 수없이 많다. 연준만 보고 베팅하는 건 ‘묻지마 투자’와 다를 바 없다.

올 여름휴가철에 해외여행을 다녀온 이들이 꽤 많았나 보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 8월 출국자 수는 약 206만명으로 지난해보다 약 23만명이 더 많았다. 내수가 침체된 상황에서도 해외여행자가 늘어난 이유 중 하나는 연초 대비 달러화 환율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건 그 와중에도 달러를 사들인 이들이 많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의 ‘7월 중 거주자 외화예금 동향(7월말 기준)’에 따르면 개인의 달러화 예금 잔액은 약 81억 달러였다. 전월 대비 10억9000만 달러(15.5%) 늘어난 수치다. 월별 증가액으로는 증가폭이 가장 컸다.

달러에 투자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원화가치가 떨어질 때를 노린 환차익이 목적이다. 싼값에 달러를 사뒀다가 비싸지면 되파는 거다. 원화가치가 떨어질 거라는 걸 전제로 깔고 달러를 사들이고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많은 투자자들이 미 연방준비제도(연준ㆍFed)가 기준금리를 인상할 때 원화가치가 떨어질 것으로 내다본다는 점이다. 논리적으로 타당한 시나리오다. 연준이 금리를 올리면 달러가치가 상승한다.

신흥국가에 투자했던 달러들은 미국으로 이동한다. 당연히 신흥국의 외환보유고는 줄고 해당 국가의 통화가치는 떨어진다. 그런데 이 과정에선 따져볼 게 많다. 연준의 금리인상이라는 한가지 변수를 갖고 환율을 예측하는 게 타당하느냐는 점이다. 아울러 이 변수에만 기댄 채 ‘달러화 예금’ 투자를 결정하는 게 합리적인지도 살펴봐야 한다.
▲ 삼성전자 갤럭시노트7 생산이 중단된 날 원화가치는 뚝 떨어졌다.[사진=뉴시스]
최근 불거진 갤럭시노트7의 폭발 사태를 보자. 우리나라 코스피200 시가총액의 약 20%를 차지하고 있는 삼성전자는 10월 11일 갤럭시노트7의 단종을 발표했다. 흥미롭게도 이날 우리나라의 미 달러화(USD) 환율은 전일 대비 1.12% 상승(1124원)했고, 그후 이틀 연속 1.0%포인트 더 올랐다. 달러가 빠져나가면서 원화가치가 떨어진 것인데, 외국 투자자들이 우리나라의 경제체력을 낮게 평가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렇듯 환율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한두개가 아니다. 갤럭시노트7 사례에서 보듯, 국가가치가 환율을 결정하기도 한다. 환율을 볼 때 ‘외환보유고’를 살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외환보유고는 국가의 가치를 가늠하는 결정적인 잣대이기 때문이다. 실례로 외환보유고가 충분하면 달러의 공급에 여유가 있다는 뜻이니, 원화가치는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경상수지와 자본수지의 움직임을 통해 환율을 내다볼 수도 있다. 두 수지에 따라 외환보유고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실례로 수출기업이 수출을 잘 해서 무역흑자를 내면 달러 유입이 늘어나 원화가치가 상승하는 식이다.

미 기준금리가 그리 중요한가

이런 맥락에서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만을 보면서 투자를 단행하는 건 위험하다. 여러 변수의 인과관계를 잘못 인식하면 잘못된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올바른 분석은 이런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자동차와 조선, 철강, 스마트폰, 석유화학 등 산업의 중추라 할 수 있는 분야에서 수출 감소를 겪고 있다. 경제체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환율상승이 불가피해 보인다. 경상수지 흑자가 환율상승을 억제하고 있는 모습이다. 여기에 미국의 기준금리 이슈까지 겹쳐 있다. 최근엔 ‘최순실 게이트’까지 터졌다.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이 더 커지고 있다.” 이런 분석이 나오면 투자 방향도 달라진다. “지금 상황에서 돈을 벌려면 국내 투자보다는 해외 투자를 살펴보는 게 합리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미 연준의 금리인상이 달러의 해외유출을 가져오므로 원화의 가치가 하락한다는 도식적인 예측은 정말 순진한 것이다. 환율은 그렇게 단순하게 움직이는 지표가 아니다. 달러와 동시에 엔화와 같은 안전자산의 추이도 함께 고려해야 하고, 유럽계 자금의 흐름도 살펴봐야 한다. 달러는 여러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 움직인다는 얘기다. 단순히 한가지 요인만으로 환율이 움직일 것이라고 예단하고 투자를 단행하는 건 ‘묻지마 투자’와 다를 바 없다.
이병복 금융산업평가 컨설턴트 bblee2@naver.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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