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복의 까칠한 투자노트

카카오뱅크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고객이 자발적으로 카카오뱅크 계좌를 만들고, 예금을 하고, 대출을 한다. 왜일까. 어떤 이들은 높은 예금 이자와 낮은 대출 이자 때문이라지만 꼭 그 이유만은 아니다. 카카오뱅크를 통해 고객들이 시중은행들이 구축해온 불합리한 구조를 인지하게 되면서다. 이른바 ‘카뱅 돌풍’, 시중은행들의 오만함을 부수고 있다.

▲ 카카오뱅크가 금융산업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다.[사진=뉴시스]

5일 만에 100만개, 2주 만에 200만개 돌파. 카카오뱅크 출범 후 계좌개설 수가 가파르게 늘고 있다. 대면 업무를 하지도 않는데 많은 이들이 카카오뱅크를 통해 예ㆍ적금이나 대출을 했다는 의미다. 9일 기준 카카오뱅크의 수신액(예ㆍ적금)은 9960억원, 여신액(대출)은 7700억원이다. 이런 돌풍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동안 우리는 ‘은행에 의해 길들여진 고객’이었다.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내 주변’에 있는 은행에 간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은행들은 고객들이 발걸음하기 좋은 장소에 지점을 낸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지점을 휴식공간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은행은 ‘고객을 위한 서비스’라고 말하고, 고객은 마치 대단한 편의를 제공받는 것처럼 착각한다.

하지만 애당초 지점의 목표는 따로 있다. 사실 지점은 다양한 금융상품을 판매하기 위한 수단이다. 고객의 발을 묶어두기 위해 에어컨과 히터를 틀고, 좀 더 많은 금융상품을 구매하는 이들은 VIP 공간을 만들어 ‘대접’해준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제공하면서 그런 시스템이 당연한 것처럼 고객의 머릿속에 각인시켜온 거다. 그래서 고객은 정해진 업무시간 안에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쪼개 창구번호표를 들고 기다리는 걸 당연하다고 느낀다.

혹자는 ‘은행 지점을 지나치게 비꼬는 게 아닌가’라고 반문할 수 있다.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시중은행의 모바일뱅킹만 이용해 봐도 금방 깨닫게 된다. 1년에 한번 공인인증서 만기가 도달해 갱신을 하려면 울화통이 터져서 하루 정도는 은행 욕을 하곤 한다. 너무 복잡하기 때문이다. 또한 공인인증서 유효기간이 지났다면 보안 토큰(공인인증서 저장용 USB) 교체 비용까지 내야 한다. 과연 이 비용을 고객이 내는 게 맞을까. 이쯤 되면 은행이 비용 절감을 위해 고객에게 부담을 주는 것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든다.

특히 모바일뱅킹 초기 화면은 결코 고객 편의적이지 않다. 은행이 원하는 금융상품 관련 정보제공 서비스가 주를 이루고, 고객이 원하는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상당한 노력을 들여 해당 화면을 찾아야 한다. 은행 상품광고가 메인이고, 고객 서비스가 서브라는 생각마저 든다.

불편함을 파는 시중은행

문제는 그동안 우리가 이런 합리적 의심을 하지 않았다는 거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금융은 독과점시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이 제공하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싫으면 나만 손해인 구조였다. 은행이 원하는 금융상품에 가입하지 않거나 그들이 정한 일방적인 규칙(대출금리 등)을 따르지 않으면 모든 불편함은 고객의 몫이었다.

산지의 돼지고기나 닭고기 값이 내렸다는 뉴스가 나와도 소비자 가격은 결코 떨어지지 않는 것처럼 기준금리에 따라 변하는 은행금리도 예금금리는 변동이 없지만 대출금리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축산농가보다 유통업자가 돈을 더 많이 벌듯이 예금자보다 중개업자인 은행이 돈을 더 번다.

은행들은 고객 위에 군림해왔다. 카카오뱅크의 출현은 고객에게 이런 불합리한 구조를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대안을 제시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카카오뱅크의 예금금리가 시중은행보다 높고, 대출금리는 싸다는 사실만으로도 고객은 무엇이 합리적인지 판단할 수 있게 된 거다.

그럼에도 은행의 기득권은 여전히 강하다. 그래서 제2ㆍ제3의 카카오뱅크가 더 필요하다. 그래야 은행이 원하는 상품과 시간이 아니라 고객이 직접 상품과 시간을 고를 수 있는 시대가 열린다. 그런 면에서 카카오뱅크는 금융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서막에 불과하다.
이병복 금융산업평가 컨설턴트 bblee2@naver.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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