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회장 없는 롯데의 미래

총수를 잃은 롯데그룹이 흔들리고 있다. 수그러들었던 형제의 난은 불씨가 다시 살아났고, 신동빈 회장이 이끌던 해외사업은 차질을 빚을 공산이 커졌다. 최고 결정권자 없이 2월 27일 열리는 임시주총에선 계열사 흡수합병 문제도 결정해야 한다. 그렇다고 탈출구가 없는 건 아니다. 신辛의 롯데를 ‘시스템의 롯데’로 만들면 혁신작업에 힘이 붙을 가능성이 높다. 불투명한 지배구조 개편작업에 메스를 대는 걸 우선 전략으로 삼으라는 거다. 신辛 없는 롯데, 정상궤도를 찾을 수 있을까. 더스쿠프(The SCOOP)가 롯데의 미래를 살펴봤다.

▲ 신동빈 회장의 구속으로 롯데그룹이 초유의 위기에 직면했다.[사진=뉴시스]

“면세점 특허권 재취득이라는 현안을 갖고 있는 신동빈 롯데 회장이 국가 경제정책 최종 결정권자인 대통령 요구에 따라 뇌물을 공여했다. 두 사람 사이에 묵시적 청탁이 오갔다.” 1심 법원의 결정(2월 13일ㆍ징역 2년 6개월, 추징금 70억원)에 롯데 사람들은 고개를 숙였다. 선고 직전까지도 결과를 낙관했던 탓인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신 회장 구속으로 롯데그룹은 51년 만에 ‘총수 구속’ ‘총수 부재’라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호텔롯데 기업공개(IPO), 기업지배구조 개선, 해외사업 투자, 인수ㆍ합병(M&A) 등 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는데, 총수를 잃었으니 최악의 상황이라 할 만하다.

롯데그룹이 신 회장이 구속된 직후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한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룹 2인자로 불리는 황각규 롯데지주 대표(부회장) 주재로 긴급 대책회의를 열어 4명의 BU(Business Unit)장을 주축으로 ‘비상경영위원회’를 가동하기로 했다. 롯데그룹은 지난해 2월 조직을 개편하고, 정기 임원인사를 통해 4명의 BU장을 선임했다. 그룹 조직을 화학ㆍ식품ㆍ유통ㆍ호텔&서비스 등 4개 협의체로 구성해 허수영 화학BU장, 이재혁 식품BU장, 이원준 유통BU, 장송용덕 호텔&서비스BU장에게 각 사업부문을 맡겼다.

2월 27일 롯데지주 임시주총은 신 회장 공백 이후 열리는 비상경영위원회의 첫 주총이다. 이날 롯데지주는 롯데상사, 롯데지알에스, 롯데로지스틱스 등 6개 계열사를 롯데지주로 분할합병하는 안건을 통과시킬 예정이다. 총수 없이 의사결정이 제대로 이뤄지는지 첫 시험대에 오르는 셈이라 관심이 모아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비상경영체제는 그야말로 ‘한시조직’일 뿐이다. 강력한 방패막이(신동빈)를 잃은 롯데그룹에는 ‘외풍外風’이 스며들고 있다. 무엇보다 형제 갈등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은 동생이 구속된 다음날(2월 14일) ‘롯데 경영정상화를 위한 모임’ 일본 사이트에 격한 글을 올렸다. “롯데그룹 한일 양측의 대표자 지위에 있는 사람이 횡령, 배임, 뇌물 등의 행위로 유죄 판결을 받고 수감된 것은 그룹 역사상 전대미문의 사건이다. 신 회장의 즉시 사임, 해임은 불가결하고 매우 중요한 과제다.”

신 회장의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 사임건이 주총을 통과한 뒤에도 신동주 전 부회장은 “대표권을 반환했더라도 수감 상황에서 이사 지위에 머무는 일은 사회적으로 용납될 일이 아니다”며 “이사 지위에서도 물러날 것을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동생이 자리를 비운 사이 책상을 아예 빼버려야 한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오랫동안 유지돼온 한일 양국 롯데의 ‘원 롯데’ 체제가 흔들릴 위기에 처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 한동안 잠잠하던 형제의 난이 또다시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사진=뉴시스]

더 큰 문제는 신 회장 중심으로 전개하던 해외사업이다. 롯데그룹은 해외에서 마트ㆍ호텔ㆍ백화점ㆍ면세점 등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중심에는 신 회장이 있었다. 그는 각국 정상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세일즈’를 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일반적인 경영이야 전문경영인들이 맡아서 하면 되지만 정치와 외교는 총수의 역할이 크다”면서 “신 회장의 역할을 대신할 인물이 없어 당분간은 글로벌 경영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김희천 고려대(경영학) 교수는 “장기적인 큰 그림을 그리는 덴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해외사업은 총수가 비즈니스를 하는 것과 전문경영인이 비즈니스를 하는 것이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당분간 큰 사업보다는 작은 일들을 하나씩 수행하는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롯데그룹이 위기를 탈출할 방법은 무엇일까. 흥미롭게도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롯데그룹은 그동안 복잡하고 불투명한 지배구조로 지적을 받아왔다. 2014년 말 기준 순환출자 고리가 75만개에 달할 정도였다.

이후 지속적인 개편 작업을 통해 점점 그 수를 줄여왔고, 그러다 지난해 10월 ‘롯데지주’를 공식 출범, 롯데제과 등 4개 회사가 보유하고 있던 지분 관계가 정리되면서 순환출자고리는 13개로 대폭 개선됐다. 복잡하게 얽힌 지배구조가 단순화되면서 경영투명성과 경영효율성을 동시에 높일 수 있게 됐다. 1월 이사회에선 롯데지주가 6개 비상장 계열사를 흡수 합병해 순환출자를 완전히 해소하기로 했다.


김희천 교수는 “롯데그룹은 기업지배구조를 바꾸려고 노력하던 중 지금과 같은 위기를 맞게 됐다”면서 “이번 총수 부재는 그동안의 노력이 실질적으로 어떻게 가동하는지 테스트하는 무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은 이재용 부회장의 부재를 겪으면서 밖에서 보는 것보다 전문경영인 체제가 훨씬 더 잘 갖춰져 있다는 걸 보여줬다. 좋든 싫든 롯데그룹도 시스템이 가동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각 사업부문(BU)장들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이유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롯데그룹. 아이러니하게도 총수가 빠진 지금이 바로 롯데그룹의 혁신 타이밍이 될 가능성이 높다. 창립 51주년. 신辛 없는 롯데에 ‘신바람’이 불지 지켜볼 일이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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