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 처리한 예산안 심의
3년 연속 법정시한 못 지켜
총선 의식한 여야, 예산 나눠먹기
역점 분야 예산 주고받으며 담합
속기록 없는 소소위 밀실 협의
‘밀실 담합’ 뿌리뽑아야 할 병폐

여야가 늦게나마 새해 예산안을 합의한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여야가 밀실에서 서로 원하는 것을 맞바꾸는 ‘예산 나눠먹기’는 뿌리 뽑아야 할 병폐다.[사진=뉴시스]
여야가 늦게나마 새해 예산안을 합의한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여야가 밀실에서 서로 원하는 것을 맞바꾸는 ‘예산 나눠먹기’는 뿌리 뽑아야 할 병폐다.[사진=뉴시스]

올해도 예산안 심의는 법정 처리시한(12월 2일)을 넘긴 늑장·졸속·짬짜미 심사에다 나라살림을 정쟁 대상으로 삼는 구태를 되풀이했다. 새해 예산안이 우여곡절 끝에 2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법정시한을 19일 넘긴 것이자 3년 연속 지각 처리다. 

여야가 합의 처리한 예산을 보면 총지출 규모가 정부 원안보다 3000억원 적은 656조6000억원이다. 정부 원안에서 4조2000억원을 깎고, 3조9000억원을 증액했다. 국가채무와 국채 발행 규모를 정부안보다 늘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재정악화 소지는 줄였다.

정부가 삭감하며 현장의 반발을 샀던 연구·개발(R&D) 예산을 차세대 원천기술 연구 보강과 최신·고성능 연구 장비 지원을 위해 6000억원 늘린 점도 의미가 있다.

하지만 여야는 내년 4월 총선을 의식해 서로 관심 및 역점을 두는 분야의 예산을 주고받는 방식으로 담합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관심사업인 지역사랑상품권 발행 지원 예산이 ‘0원’에서 3000억원으로 살아났다. 새만금사업 예산도 3000억원 증액하며 복원됐다. 

민주당이 상임위원회에서 삭감한 1900억원 원자력발전 예산 등 국민의힘이 요구한 예산도 상당 부분 살아났다. 결과적으로 여당은 원자력발전 예산과 건전재정 기조를 지켰다. 제1 야당은 지역화폐와 새만금사업 예산을 확보했다. 하지만 그동안 숱하게 지적돼온 예산안 심사 과정의 구태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정부 예산안은 9월 정기국회 시작 전 국회에 제출한다. 하지만 국정감사 등 정치 일정에 밀려 11월에야 심사를 시작한다. 정책 질의 등 절차를 거치면 법정시한까지 2주 남짓이다. 수백조원 예산안을 심의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올해 정기국회에서 여야는 정치 공방으로 예산안 심의를 제대로 진행하지 않았다. 민주당은 서울~양평고속도로 특혜 의혹 등 3건의 국정조사와 대장동 50억 클럽과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 조사를 위한 ‘쌍특검’ 공세에 집중했다. 국민의힘도 이를 핑계로 예산안 처리를 미뤘다. 

지난해와 판박이였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지난해 이태원참사 국정조사 등 정치 이슈를 예산안 처리의 볼모로 삼아 2014년 국회선진화법 제정 이후 가장 늦은 12월 24일에 예산안을 처리했다.  

더 큰 문제는 예산을 깎고 더하는 과정이 불투명하고 여야 정당이 짬짜미를 되풀이한다는 점이다. 여야가 국회선진화법 상 11월 30일까지 예산안 심사를 완료하지 않으면 12월 1일 정부 원안이 본회의에 자동으로 올라간다. 그 이후에는 여야 지도부 극소수만 참여하는 ‘예결소소위원회(이하 소소위)’에서 더하고 빼는 협상을 진행한다.  

예산안 자동 본회의 부의 제도 도입 이후 법정시한을 지킨 것은 2015년과 2021년 예산 두 차례뿐이었다. 그 결과 여야는 부실·졸속 심사를 되풀이하고, 법적 근거가 없는 소소위에서 밀실 심사를 진행한다. 합법적 권한을 지닌 국회 예산결산위원회보다 비공식 협의체 소소위가 나라살림을 좌우하는 그릇된 구조다.

더구나 소소위 밀실 협의는 속기록을 남기지 않아 거기서 무슨 말이 오갔는지 알 수 없다. 현실적으로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을 지키는 게 쉽지 않다면 후속 협의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소소위가 비공식 협의체라도 속기록을 남겨야 한다. 국민은 무슨 근거로 여야가 예산을 증액하거나 감액했는지 알 권리가 있다.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어느 한쪽 주장만 관철하기 어려운 만큼 주고받기는 나타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타당성과 명분이 없거나 약한데 여야가 서로 원하는 것을 맞바꾸는 것은 야합이다. 특히 선거가 있는 해의 예산안일수록 소소위 협의 과정에서 여야 간 선심성 관심사업 예산의 주고받기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별도 협의체를 법률로 정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예산안 처리시한을 넘겼을 때 신속 심의기구에 맡겨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거대 양당이 나라살림을 밀실에서 나눠먹기하는 행태를 방치해선 안 된다.

여야는 총선을 의식해 서로 역점 분야의 예산을 주고받는 방식으로 담합했다.[사진=뉴시스]
여야는 총선을 의식해 서로 역점 분야의 예산을 주고받는 방식으로 담합했다.[사진=뉴시스]

올해 예산안 합의도 과거처럼 거대 양당의 일부 의원과 기획재정부 책임자만 참여하는 소소위에서 마무리됐다. 국회는 스스로 만든 법정시한을 어기면서 졸속·짬짜미 심사를 반복하는 행태를 언제까지 되풀이할 텐가. 

예산안 법정시한의 구속력을 높이도록 법을 정비해야 할 것이다. 회의록도 남기지 않는 소소위에서 밀실 흥정을 하고, 그 과정에서 여야 실세 정치인들이 자신의 지역구 사업 관련 ‘쪽지 예산’을 챙기는 악습을 뿌리 뽑아야 한다. 

늦게나마 국회에서 새해 예산이 확정된 만큼 정부는 집행에 차질이 없도록 준비해야 할 것이다. 내년 경제여건이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상황에서 사회적 약자 보호와 경제 살리기 등 필요하고 절실한 곳에 신속 투입해야 한다. ​ 

양재찬 더스쿠프 편집인
jayang@thescoop.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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