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야 채운다

# 출근길을 오가며 마주하는 커다란 옥외 광고탑입니다. 어느 명품 브랜드의 이미지가 꽤 오랜 시간 걸려 있던 자리입니다. 어느날 멀리서 보니 광고판 반쪽이 하얗게 변해 있더군요. ‘무슨 일인가’ 궁금했는데, 그 이유를 이내 알아차렸습니다. 광고판 교체 작업중이더군요. 

# 때마침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뀝니다. 빠르게 스마트폰 카메라를 켜고 화면을 확대합니다. 외줄에 매달린 작업자가 페인트 칠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페인트통에 롤러 붓을 푹 담근 다음 팔을 크게 휘젓습니다. 외줄 하나에 의지했지만 힘찬 손짓입니다. 그 손짓에 커다란 광고판이 도화지처럼 흰색으로 바뀝니다. 

# 하얗게 변한 광고판을 보며 생각합니다. 지우지 못한 마음속 응어리도 저렇게 슥슥 지워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한해가 가고 또 한해가 왔습니다. 지우지 못한 아쉬운 마음이 있다면 새해를 맞아 다시 하얗게 칠해보면 어떨까요? 깨끗히 비워내야 뭐든 채울 수 있을 테니까요. 

사진·글=오상민 천막사진관 사진작가 
studioten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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