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것만으로 기분이 몽글몽글

# 동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일을 마쳤습니다. 날도 풀렸겠다 싶어 집까지 천천히 걸어가 봅니다. 밤공기마저 춥지 않은 걸 보니 봄이 동네 문지방을 넘으려나 봅니다. 저 멀리 편의점이 보입니다. 문밖까지 불을 환히 밝히고 가판대에 무언가를 잔뜩 쌓아놨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아, 밸런타인데이구나.”

# 이벤트를 잘 챙기는 편도 아니고 ‘초콜릿은 몸에 좋지도 않다’는 생각에 가판대 앞을 무심히 지나갑니다. 그러고 보니 밸런타인데이는 여자가 남자에게 주는 것이란 걸 편의점을 한참 지난 후에야 알았습니다. 혹시 아내가 초콜릿 하나 주려나 살짝 기대해봅니다. 

# 산책하는 동네 주민이 옆을 스쳐 지나갑니다. 잠시 후 “어머 저게 뭐야”란 소리가 들립니다. 어딘가를 보며 사진을 몇장을 찍고는 다시 강아지와 산책길을 이어갑니다. 호기심이 발동합니다. 걸어온 길을 되돌아가 사진을 찍었던 방향을 봅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아, 우리 동네에 로맨티시스트가 살고 있구나.”

# 아파트 수많은 베란다 중 한 집에 선명한 하트가 박혀 있습니다. 별도 반짝입니다. 혹시 신혼부부의 달콤한 이벤트일까요?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은 선물일까요? 어떤 이유가 숨어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입가에 미소가 번집니다.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동네에 로맨티시스트가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절로 좋아집니다. 

# 집에 돌아와 씻을 준비를 합니다. 양치질을 하려는데 아내가 화장실 문 사이로 불쑥 손을 내밉니다. 손 위에는 작은 초콜릿 세개가 들려있습니다. 화장실의 환한 백색등 아래에서 슬리퍼를 신은 채 초콜릿을 받는 모습이 그리 로맨틱하진 않지만, 마음은 몽글해집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집에도 로맨티시스트 있습니다. 

사진·글=오상민 천막사진관 사진작가 
studioten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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