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내부거래 공시 기준 완화의 오류➋
내부거래 감시 기능 저하 우려하자
다른 제도로 감시 가능하단 공정위
내부거래 공시제도 도입 취지 무색

# “이번에 시행령을 개정해 대규모 내부거래의 공시 기준을 (100억원으로) 끌어올린 건 2012년 기준치를 100억원에서 50억원으로 낮췄던 것(기준 강화)을 원래대로 돌려놓은 것에 불과하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대규모 내부거래의 공시 기준을 완화한 근거로 내세우는 논리 중 하나다. 

# 하지만 이는 타당하지 않다. 당시 공정위는 내부거래 공시 기준의 강화(100억원→50억원)를 통해 불합리한 일감 몰아주기를 줄이고, 중소기업에 기회를 제공하며, 시장 자율감시 기능도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기 때문이다. 만약 효과를 봤다면 기준을 더 강화하는 게 옳고, 효과가 없었다면 ‘원인’부터 찾는 게 순리다. 그런데 공정위는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은 채 내부거래 공시 기준을 50억원으로 낮췄다. 타당한 조치였을까. ‘내부거래 공시 기준 완화의 오류’ 2편이다.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사진=뉴시스]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사진=뉴시스]

‘내부거래 공시 기준 완화의 오류’ 1편에서 우리는 한가지 사실을 확인했다. 지난 5년간 공시대상 기업은 늘었지만, 전체 내부거래 규모(국내 한정)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거다. 한 기업당 내부거래 규모가 줄어든 것으로, 기업들이 사실상 ‘내부거래 쪼개기’를 꾀했다는 거다.

이런 상황에서 공정거래위원회는 내부거래 공시 의무의 기준치를 50억원에서 100억원으로 높였다. “100억원도 안 되는 내부거래는 들여다보지 않겠다”는 건데, 지난 수년간 ‘내부거래 쪼개기’가 심화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이다. 업계 안팎에서 “공정위가 내부거래를 눈감아주려 한다”는 오해가 흘러나오는 이유다.

그럼에도 공정위는 내부거래 공시 기준을 100억원에서 50억원으로 낮춘 게 현실을 반영한 조치라고 주장한다. 문제는 공정위가 빠진 논리적 오류가 이뿐만이 아니란 점이다. 

■ 오류➋ 제도 취지의 호도 = 공정위가 내세운 “다른 공시제도를 통해 내부거래를 모니터링할 수 있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당초 대규모 내부거래 공시제도가 생겨난 이유는 대규모 내부거래를 규제하기 위함이다. 

2000년 당시 공정위는 이 공시제도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룹 계열사 간 내부거래 시 이사회 의결과 공시를 의무화함으로써 무분별한 보증으로 인한 동반 부실과 계열사 늘리기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를 통해 내부거래의 병폐를 뼈저리게 느꼈고, 이후 부당한 내부거래를 막겠다는 취지로 이 제도를 만들었다는 거다. 이사회 의결과 공시를 의무화한 것도 그래서다.

이를테면 대규모 내부거래 공시제도는 ‘사후의 내부거래 정보 취득’을 위한 게 아니라 ‘부당한 내부거래의 사전 방지’에 중점을 둔 제도다. 따라서 다른 공시제도를 통해 내부거래를 모니터링할 수 있다는 주장은 애초의 대규모 내부거래 공시제도의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거나 다름없다. 

일감 몰아주기나 경제력 집중은 일반 국민의 삶에도 영향을 미친다.[사진=뉴시스]
일감 몰아주기나 경제력 집중은 일반 국민의 삶에도 영향을 미친다.[사진=뉴시스]

신동화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간사는 “각각의 공시제도가 생겨난 이유나 추구하는 목적이 모두 다른데, 다른 공시제도를 통해 내부거래를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게 타당한 해명인지 의문”이라면서 이렇게 꼬집었다. 

“대규모 내부거래 규제는 공시대상기업집단 소속 기업 간 내부거래의 블공정성뿐만 아니라 비효율성을 차단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내부거래 규제로 인해 해당 기업이 더 좋은 외부기업과 거래할 수 있어서다. 게다가 현재 내부거래 공시는 거래 규모만 보여줄 뿐 구체적인 계약 내용은 확인할 수 없다. 이런 점들을 감안하면 공정위는 공시 기준을 완화할 게 아니라 오히려 더 강화하는 게 마땅하지 않겠는가.”

■ 오류➌ 원상복귀란 궤변 = 기존의 대규모 내부거래 공시 기준을 원래대로 돌려놓는 것이라는 설명도 궤변에 가깝다. 2012년 공정위는 대규모 내부거래 공시 기준을 100억원에서 50억원으로 조정하면서 이렇게 밝힌 바 있다.

“이번 개정을 통해 수의계약 방식으로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관행을 예방하고, 독립중소기업에 사업 기회를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공시대상과 공시범위가 확대돼 시장의 자율감시 기능도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공정위가 기대했던 효과가 나타났다면 일감 몰아주기를 예방함과 동시에 독립중소기업의 사업기회가 늘어났을 거다. 시장의 자율감시시스템도 한층 탄탄해졌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도 공시 기준을 원래대로 돌려놓겠다는 건 이런 효과를 없애겠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공정위가 ‘기대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반론을 펴도 논란의 여지가 남는다. 만약 2012년 내부거래 공시 기준을 강화한 효과가 기대치를 밑돌았다면 공정위는 그 원인부터 분석하는 게 순리다. 자체적인 반성도 하지 않은 채 ‘제도를 원상복귀하겠다’는 건 납득하기 힘들다. 

이처럼 공정위가 내세운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의 명분과 논리는 허술하기 짝이 없다. 이런 허술함 때문에 우려하는 일이 현실화하면 우리 삶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무엇보다 1400만명(계좌 수 기준)이 넘는 주식투자자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 기업의 몫으로 돌아가야 할 이익이 ‘내부거래’란 미명으로 다른 곳으로 새어나갈 수 있어서다. 자칫 일감 몰아주기 이슈가 불거져 공정위의 제재를 받는다면 주가 급락을 걱정해야 할 처지에 몰린다.

총수일가의 일감 몰아주기나 사익편취 논란으로 기업의 주가가 크게 하락할 수도 있다.[사진=뉴시스]
총수일가의 일감 몰아주기나 사익편취 논란으로 기업의 주가가 크게 하락할 수도 있다.[사진=뉴시스]

이뿐만이 아니다. 내부거래가 늘어나 시장에서 경쟁이 줄면 우리 경제의 성장동력도 약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이득을 보는 건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경영권 승계나 사익편취를 꾀하는 일부의 특수관계인일 가능성이 높다. 

공정위는 2023년 12월 ‘공시대상기업집단 내부거래 현황’을 발표하면서 이렇게 밝혔다. “계열사 간 내부거래 비중ㆍ금액이 크다는 것만으로 부당 내부거래의 소지가 높다고 단정하긴 어렵다. 다만 총수일가 지분율과 내부거래 비중 간 양(+)의 상관관계가 지속하고, 내부거래 관련 수의계약 비중이 큰 점 등을 고려할 때, 부당 내부거래의 발생 여부를 모니터링해야 할 필요성은 상당하다고 판단된다.” 규제의 끈을 느슨하게 풀어버린 지금, 공정위의 이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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