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커버스토리
視리즈 : ESG와 기업가 정신
더스쿠프-가톨릭대 공동기획
제1막 건설 변하지 않는 이유➋
美 건설사 벡텔 기본에 충실
국내 건설사도 세운 원칙들
기본 원칙의 약속 지켜질까

2020년 중대재해처벌법을 시행했지만 건설 현장에서 목숨을 잃는 노동자는 줄지 않았다. 여전히 산업재해의 절반 이상은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다. 누군가는 ‘건설업이 그만큼 위험하다는 방증이지 않을까’라고 반문한다. 과연 그럴까. 건설업이 그렇게 위험하다면, 해외는 어떨까. 더스쿠프 대학생 기사취조단 「위험한 산업: 건설이 변하지 않는 이유」 2편을 열어보자.

우리나라 건설사들은 ESG 경영을 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사진=뉴시스]
우리나라 건설사들은 ESG 경영을 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사진=뉴시스]

우리는 대학생 기사취조단 「위험한 산업: 건설이 변하지 않는 이유」 1편(더스쿠프 578호 원청-하도급 노동자 잡는 불편한 고리)에서 국내 건설업의 재해 현황을 살펴봤다. 산업 현장에서 목숨을 잃는 노동자 중 건설업 종사자가 가장 많았고 건설사들은 ESG 경영을 앞세우면서 현장 안전을 지키겠다고 약속했지만 ‘말의 성찬盛饌’에 그쳤다.

그럼 건설 현장은 위험하기 때문에 가장 많은 사망 사고가 나는 것도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이 질문의 답을 찾는 건 어렵지 않다. 건설업 자체가 위험하다면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사건사고’가 속출해야 한다. 1편에서 언급한 것처럼 전체 산업 재해자의 절반 이상이 건설업에서 발생해야 한다는 거다.[※참고: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3년 3분기(누적) 발생한 산업 재해 중 건설업 비중은 52.5%에 달한다.]

먼저 일본의 통계부터 보자.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2022년 산업 현장에서 사망한 노동자 중 건설업 노동자의 비중은 36.3%였다. 미국은 더 낮았다. 미국 노동통계국이 집계한 결과를 보면, 2022년 산업 현장에서 사망한 노동자 중 건설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2.7%였다. 일하다 목숨을 잃은 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건설업에 쏠려 있는 건 우리나라의 특수한 상황이란 얘기다.

어디서 차이가 생긴 걸까. 미국 최대 건설사 벡텔(Bechtel)의 사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게 많다. 미국 건설업에서 정규직 노동자 100명당 재해를 겪는 노동자의 수는 2022년 기준 평균 1.0명이다. 벡텔의 경우 0.015명으로 평균치의 7분의 1 수준이다. 벡텔은 어떤 방식으로 노동자의 재해사고를 대폭 줄인 걸까. 

벡텔이 지향하는 건설 현장의 안전을 간단하게 표현하면 ‘무사고(Zero Incident)’다. 단순한 구호가 아니다. 벡텔은 현장의 모든 위험을 ‘예방할 수 있다’고 여긴다. 국제표준화기구(ISO) 45001(안전보건경영시스템)과 ISO 14001(환경경영시스템) 기준을 준수하고 같은 기준을 협력사에도 요구한다.

협력업체를 선정할 때도 가장 저렴한 공사비를 제안하는 기업을 뽑지 않는다. ‘무사고’ 계획을 얼마나 벡텔의 기준에 맞출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현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벡텔의 협력업체는 ▲2m(약 6피트) 높이에서 작업할 때 추락방지장치 설치, ▲화학제품 등 위험한 에너지 관리하는 방식, ▲노동자의 부상 위험을 줄여주는 안전 수칙 등을 본사와 같은 수준으로 짜야 한다.

[자료 | 고용노동부·미국 노동통계국·일본 후생노동성, 참고 | 국내 통계는 2023년 3분기 누적·해외 통계는 2022년 기준]
[자료 | 고용노동부·미국 노동통계국·일본 후생노동성, 참고 | 국내 통계는 2023년 3분기 누적·해외 통계는 2022년 기준]
[자료 | 벡텔, 참고 | 2022년 기준·정규직 노동자 100명당]
[자료 | 벡텔, 참고 | 2022년 기준·정규직 노동자 100명당]

여기엔 직원들의 역할도 크다. 관리 감독자는 매주 현장안전 점검회의를 실시하고 작업 계획과 부상ㆍ사고 사례를 사전에 문서화한다. 안전 평가에는 전 직원이 참여한다. 이를테면 TBM(Tool Box Meetingㆍ모든 노동자가 모여 당일 작업계획을 브리핑하고 시공품질과 안전을 논의하는 것) 시스템이다.

모든 현장에 응급처치와 의료서비스를 위한 클리닉을 운영하는 것도 벡텔의 특별함이다. 예기치 않은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장치다.

누군가는 벡텔의 안전 관리 방안을 보고 특별한 게 없다고 꼬집을지 모른다. 사실 안전한 현장의 기준을 세우고, 계획을 수립하며, 매일 현장에서 이를 재확인하는 건 ‘기본’에 가까운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벡텔의 수준 높은 안전은 ‘기본’에서 나온다. 이는 안전 기준을 수립하고도 하도급 업체 노동자의 사고를 막지 못한 DL이앤씨의 사례와 빗대보면 확인할 수 있다.
2023년 10월 12일에 있었던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이 지적했듯, DL이앤씨는 안전사고 예방의 기본 시스템인 TBM에 노동자가 참석하지 않은 사례들이 적지 않았고, 결국 사고로 이어졌다. 반드시 지켜야 할 안전기본수칙만 만들어 놓고 지키지 않았다는 거다.

물론 국내 건설사들이 아무런 변화도 꾀하지 않은 건 아니다. DL이앤씨는 2023년 11월 21일 건설 현장에서 중대재해로 사망한 노동자 유족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2023년 12월 1일 국회 청문회에 출석한 이해욱 DL그룹 회장은 건설안전특별법 및 적정임금제를 도입하자는 이수진 의원(더불어민주당)의 제안에 “DL이앤씨가 고려하는 안전 조치에 도움이 된다면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DL이앤씨가 최고안전책임자(CSO)를 최고경영자(CEO)가 겸직하던 구조적 문제점을 해결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이 변화가 실질적으로 산업 재해를 줄일 수 있을지는 2024년이 지나야 알 수 있다. 예방책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얼마나 사고를 줄였는지가 관건이라서다.

2021년 발생한 광주 동구 학동 철거현장 붕괴사고, 2022년 광주 화정동 아이파크 붕괴사고, 2023년 발생한 인천 서구 오피스텔 신축공사 현장의 추락사고 등 여전히 현장은 위험하다. 그런 현장에서 ‘ESG 경영을 하고 있다’는 홍보용 안전 수칙이 필요 없다는 건 글로벌 건설사 벡텔이 입증하고 있다. 이젠 국내 건설사도 행동으로 보여줄 때다.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권기경 가톨릭대 학생 
0610k3@daum.net

유지원 가톨릭대 학생 
yoojiwon8965@gmail.com

이채원 가톨릭대 학생
lee453007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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