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혜진의 내 아이 상담법
이혼 둘러싼 인식 달라져
부부만의 문제 아닌 이혼
자녀에게 충격과 스트레스
우울·불안 등 정서적 문제
자녀 마음에 귀를 기울여야

이혼이 예능 프로그램의 소재가 될 만큼 이혼을 둘러싼 사회적 인식이 달라졌다. 하지만 이혼은 부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어린 자녀에게 부모의 이혼은 큰 충격과 함께 스트레스를 준다. 이 때문에 이혼의 이유를 자녀에게 설명하는 것도 부모의 의무일지 모른다. 이번엔 위기의 가정 속에서 아이들이 겪는 ‘이혼 스트레스’를 살펴봤다. 

이혼의 인식이 달라졌다지만 부모의 이혼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는 아이들이 많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이혼의 인식이 달라졌다지만 부모의 이혼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는 아이들이 많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불과 20여년 전만 해도 ‘이혼’을 금기시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결혼처럼 이혼도 더 행복한 삶을 위한 하나의 선택이란 인식이 확산했다. 그 과정이 여전히 쉽지 않은 건 사실이다. 결혼이든 이혼이든 인생의 큰 변화인 만큼 당사자는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이혼 건수는 9만3200건에 달했다. 같은 해 혼인 건수가 19만2000건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수치다. 눈여겨볼 점은 9만3200건 중 41.7%가 미성년 자녀가 있는 부부의 이혼이라는 점이다. 한해에만 수만명에 달하는 아이들이 부모의 이혼으로 갑작스러운 변화를 맞는다는 얘기다.

실제로 부모의 이혼을 경험하는 아이들의 심리적 충격은 꽤나 크다. 부모가 헤어진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아빠든 엄마든 한부모와만 살아야 하는 상황을 받아들이기도 어렵다. 버림받은 듯한 느낌, 자신이 뭔가 할 수 없다는 무력감, 앞으로 벌어질 일을 두려워하는 불안감….

이런 감정을 말과 행동으로 드러내는 아이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많다. 부모의 이혼이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인 양 행동하는 아이들도 있다는 거다. 겉으로 드러나는 표면적인 모습만으로 아이들의 상태를 판단해선 안 되는 이유다. 

필자는 청소년 상담을 하면서 이혼 가정의 아이들을 자주 만난다. 이들 중엔 부모의 이혼 이후 심각한 우울•불안 등 정서적 문제를 겪는 경우가 많다. 자해•일탈 행동을 하는 아이들도 적지 않다. 심각한 일탈 행동으로 보호처분을 받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겪는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언급했듯 부모의 이혼을 경험하는 아이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각자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부모와 자녀의 사이가 좋거나, 아이의 자존감이 높거나, 아이의 친구•형제 관계가 완만하거나, 경제적 여유가 있는 경우 이혼으로 인한 충격이 상대적으로 덜할 수 있다. 

이런 완충제는 부모가 만들어줄 수도 있다. 자녀에게 부모의 이혼 상황을 충분히 설명하고, 이혼 후 가족 관계가 어떻게 바뀔지 설명해 준다면 자녀의 스트레스를 줄여줄 수 있다.

문제는 이혼 당사자인 부모 스스로가 힘들다 보니 자녀의 마음을 헤아리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아이들의 진짜 속마음이 어떤 건지 필자가 상담을 통해 만난 ‘해미’의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고등학교 1학년인 해미의 부모님은 최근 이혼을 했고, 해미는 엄마와 함께 살고 있다. 

“차라리 헤어지길 잘 했어요.” 필자와 처음 만난 자리에서 해미가 꺼낸 말이다. 알고 보니 해미의 부모님은 결혼 초부터 싸움을 반복해 왔다. 물건을 집어 던지고, 고성을 주고받으며, 욕도 서슴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이런 갈등을 보고 자란 해미는 ‘저렇게 싸우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건 아닐까’ ‘부모님이 이혼하면 난 누구와 살아야 하지’ ‘아무도 나를 키우지 않겠다고 하면 난 고아원에 가야 할까’ 등등 남모를 고민을 해왔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부모의 ‘이혼’ 이야기를 꺼내면 부모가 실제로 이혼을 결정할까봐 내색할 수도 없었다.  

해미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자. “어릴 때부터 ‘자식 때문에 싸운다’ ‘자식 때문에 산다’는 얘기를 수없이 들어왔어요. ‘나만 없으면 부모님이 행복할까’ 싶어서 죽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죠. 그러다 고등학생이 되고 난 후로는 ‘저렇게 싸우면서 왜 헤어지지 않는 거지?’ 이해가 되지 않더라고요. 차라리 헤어졌으면 좋겠다 싶었죠.”


‘죽음’을 생각하게 할 만큼 부모의 갈등은 해미를 괴롭혔다. 어린아이일 땐 부모가 싸울 때 집 한구석에서 울기만 했지만, 중학생 이후론 자해를 시작했다. 부모가 다투는 모습을 보면 극도의 불안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는 부모가 갈라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차라리 헤어진 게 낫다”고 말하면서도 해미는 분노와 우울로 여전히 힘들어하고 있었다. 

“막상 부모님이 이혼하고 나니 버려진 느낌이 들어요. 누구를 향한 건지 모르겠지만 분노가 치밀고, 이 상황을 스스로 바꿀 수 없다는 게 무기력해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고 이런 생각들이 자꾸 떠올라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어요. 학교에선 친구들과 웃고 장난치며 아무렇지 않게 지내지만 집에 오면 모든 게 다 현실이 아닌 것만 같아요.”  

해미의 마음이 이렇게 괴로운 건 결국 부모의 탓이었다. 이혼 전 치고받고 싸웠던 해미의 부모는 이혼 후에도 갈등 상황을 해미에게 고스란히 드러냈다. “엄마가 어떤 얘기를 하든 아빠를 향한 비난과 험담으로 이어져요. 엄마 얘기를 듣고 있으면 우울해져서 자해라도 해야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아요.”

2022년 이혼 건수 9만3200건 중 41.7%가 미성년 자녀가 있는 부부의 이혼이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2022년 이혼 건수 9만3200건 중 41.7%가 미성년 자녀가 있는 부부의 이혼이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그렇다고 친구들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도 없었다. 이혼을 둘러싼 인식이 달라졌다곤 하지만 타인의 신경을 많이 쓰는 청소년기에 아이들이 부모의 이혼 이야기를 꺼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실제로 해미는 가까운 친구들에게조차 솔직한 마음을 터놓지 못했다. 

이혼 가정의 아이들 중엔 해미처럼 혼자 속앓이를 하거나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 필자는 부모들에게 “강해지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이혼이라는 큰일을 치르면 모든 에너지가 자신에게 쏠릴 수밖에 없다. 당연하다. 그럼에도 부모는 어른이다. 

그럴수록 자녀의 마음을 돌봐야 한다.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기 전에 자녀의 마음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 자녀들은 힘든 시기를 극복하고 건강한 삶을 이어갈 수 있다. 이혼하는 건 부모의 선택이지만, 자녀를 이해시키는 건 부모의 의무다. 


유혜진 서울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 소장 | 더스쿠프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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