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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분양가상한제 폐지
정부 ‘고분양가’ 길 열어줘
지난해 서울 분양가 17.36%↑
분양가상한제 폐지하면서
사실상 분양 할인도 요구
엇갈린 정부 정책의 부메랑

건설·부동산 기업대출 연체가 급증하고, 법정관리와 폐업을 선택한 건설사들이 증가하고 있다. 부동산 PF 부실을 분기점으로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됐기 때문인데, 여기엔 정부의 엇갈린 정책도 나쁜 영향을 미쳤다. 문제는 부동산 PF 문제가 금융권으로 전이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지난 9일 윤세영 태영그룹 회장이 워크아웃과 관련해 입장문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9일 윤세영 태영그룹 회장이 워크아웃과 관련해 입장문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금융 전이 가능성=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문제로 대표되는 건설·부동산업의 부실 지표가 악화하면서 금융으로 전이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건설·부동산 회사들의 기업대출 연체율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하거나 폐업하는 기업들이 증가하고 있어서다.

한국은행이 15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금융업권별 건설·부동산업 기업대출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금융권 건설·부동산업 대출 잔액은 608조5000억원으로 2년 전보다 22.3%, 1년 전보다 4.8% 증가했다. 건설업 대출잔액이 115조7000억원, 부동산업 대출잔액이 492조8000억원이다. 

상호금융조합·보험사·여신전문금융회사 등 비은행권의 지난해 3분기 건설·부동산업 연체율은 각각 5.51%, 3.99%로 1년 전의 각각 3.1배, 2.4배가 됐다.  3개월 이상 연체된 부실채권(고정이하여신) 비율은 은행권에서 건설·부동산업 각각 0.92%, 0.27%로 2011년 1분기 이후 13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저축은행의 고정이하여신 비율은 건설업이 7.34%, 부동산업이 5.97%로 1년 만에 각각 3.3배, 2.4배 치솟았다. 

국회가 일몰된 ‘기업구조조정 촉진법(기촉법)’을 지난해 12월 8일을 되살렸지만, 태영건설을 제외한 다른 건설사들은 법정관리를 신청하거나 폐업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법정관리를 신청한 건설사는 11곳, 법원의 파산선고 및 파산 종결 결정을 받은 건설사는 11곳이었다. 같은해 11월 법정관리 신청 건설사 2개, 파산한 건설사 4개에서 크게 늘어났다. 

■ 고분양가 악순환의 고리=일반적으로 부동산 PF 부실 문제를 ‘선분양제도’ ‘기준금리 인상’ ‘건축비 상승’으로 설명하지만, 한계가 있다. 정부가 지난해부터 PF 지원펀드를 조성하고, 브리지론 대출을 연장하도록 지도하는 등 부동산시장을 부양하는 정책을 펼쳤지만, 부동산 PF의 확정된 손실을 단순히 연기하는 데 그쳤다. 

부동산 PF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신규 분양에서 기인한다. 부동산 시장은 이미 하락세인데, 시행사는 분양가를 오히려 올렸고, 미분양은 더 늘어났다. 이는 소비자들의 매매심리를 자극하는 방식으로 전체 부동산 시장에 악영향을 끼쳐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됐다. 

지난해 12월 법정관리를 신청하고, 폐업을 단행한 건설사들이 크게 증가했다. 서울 서초구 서울회생법원 모습. [사진=뉴시스]
지난해 12월 법정관리를 신청하고, 폐업을 단행한 건설사들이 크게 증가했다. 서울 서초구 서울회생법원 모습. [사진=뉴시스]
[자료 | 주택도시보증공사, 참고 | 2023년 12월 기준]
[자료 | 주택도시보증공사, 참고 | 2023년 12월 기준]

15일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2023년 12월 민간아파트 분양가격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민간아파트 평균 분양가격은 10개월 연속 상승했다. 지난해 12월 기준 서울의 민간아파트 분양가는 3.3㎡(약 1평)당 3495만원으로 1년 전보다 17.36% 상승했고, 수도권은 3.3㎡당 2434만원으로 14.82%, 전국 평균 분양가는 12.29% 올랐다. 

주택 미분양도 늘어났다. 국가통계 포털에 따르면 2022년 전국 미분양 주택은 2분기 2만7910호였는데, 3분기에 4만1604호, 4분기에는 6만8107호로 늘어났다. 미분양은 2023년 1분기 7만2104호로 고점을 찍고, 3분기 5만9806호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주택 수요는 더 쪼그라들 것으로 보인다. 15일 국토연구원 부동산시장연구센터의 ‘2023년 12월 부동산시장 소비자 심리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주택매매 소비심리지수는 100.1로 전월보다 1.8%포인트 내려갔다. 3개월 연속 하락세다.

분양가가 가장 많이 오른 서울의 주택매매 소비심리지수는 99.6으로 전국에서 가장 낮았고, 하락폭도 가장 컸다. 청약통장 가입자는 17개월 연속으로 감소해 지난해 11월 말 기준으로 1년 전보다 100만명 이상 줄어든 2713만6195명을 기록했다. 

■ 엇갈린 정책의 결과=정부의 엇갈린 정책이 부동산 PF에서 시작된 건설·부동산 부실 악화를 결과적으로 부추겼을 가능성도 있다. 정부가 지난해 분양가상한제를 폐지해 건설사들의 가격 인상길을 열어주고는, 한편에선 분양가 할인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1월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를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와 용산구를 빼고 전부 풀었다. 분양가상한제 폐지 정책은 분양가격을 올려 PF의 수익성을 높여주는 효과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런데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3월 ‘회사채·단기금융시장 및 부동산 PF 리스크 점검회의’에서 “분양가 할인이 없이 현재 몇년 전의 금리와 몇년 전의 모든 사업 구조 아래 (사업을) 그대로 하겠다는 것은 누군가 손실을 부담해야 한다는 뜻”이라며 건설사 등 부동산 PF를 지원하는 전제 조건이 ‘분양가 할인’임을 분명히 했다. 그 결과는 앞서 설명한 분양가의 상승과 미분양의 증가였다. 

정부가 분양가상한제를 폐지한 이후 분양가격이 크게 올랐다. 서울 중구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아파트 모습. [사진=뉴시스]
정부가 분양가상한제를 폐지한 이후 분양가격이 크게 올랐다. 서울 중구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아파트 모습. [사진=뉴시스]

건설사들이 분양 물량을 줄여가면서까지 고분양가를 고수한 데는 이유가 있다. 결국 정부가 구제금융을 통해서 최후의 대부자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태영건설의 워크아웃이라는 형태로 증명됐다. 최후의 대부자(lender of last resort)란 은행 등 금융회사가 파산 위기에 몰려도 결국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와 같은 중앙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해 금융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을 말한다. 

미국의 보수성향 싱크탱크인 카토연구소는 2023년 11월 ‘중국 주택시장의 위기분석’이라는 보고서에서 “자유시장에서는 공급량과 수요량이 같아지는 새로운 균형점에 도달할 때까지 주택 가격의 하락을 허용하는 식으로 과잉공급을 제거한다”며 중국 정부의 지나친 시장 개입을 비판했다. 부동산 하락기에 부양책을 펼치고, 최후의 대부자 역할을 자청한 우리 정부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ayhan0903@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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