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커버스토리 視리즈
중간요금제 중간점검➊
중간요금제 확대 후 7개월
정부, 통신비 인하 기대했지만
가계통신비 커다란 변화 없어
중간요금제 매력적 상품일까
기대에 못 미친 중간요금제

# 이통3사가 중간요금제를 론칭한 지 200일이 훌쩍 지났습니다. 정부는 중간요금제가 ‘가계통신비’를 떨어뜨리는 역할을 해낼 것으로 기대했지만, 한낱 공염불에 그쳤습니다. 이통3사가 중간요금제를 출시한 이후 가계통신비는 되레 늘어났습니다.

# 그렇다면 ‘중간요금제를 출시하면 실적이 줄어들 것’이라면서 간접적으로 볼멘소리를 흘리던 이통3사의 실적은 어땠을까요? 일부의 걱정과 달리 이통3사는 이번에도 ‘역대급 실적잔치’를 벌였습니다. 그렇다면 중간요금제는 ‘통신비 인하’란 정책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까요? 視리즈 중간요금제 중간점검 1편입니다.

정부가 주도한 중간요금제가 실속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더스쿠프 포토]
정부가 주도한 중간요금제가 실속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더스쿠프 포토]

“통신은 공공재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물가 안정을 위한 고통 분담에 업계가 자발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 2023년 2월 15일,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던진 메시지입니다. 고물가로 국민이 힘들어하고 있으니, 통신업계가 적극 나서서 부담을 덜어줄 방법을 찾으라는 주문이었죠.


대통령의 주문에 이통3사는 ‘무료 데이터’로 답했습니다. 3월 한달간 만 19세 이상의 모든 고객에게 30GB 데이터를 제공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는 ‘반짝 이벤트’에 불과했습니다. 어느덧 13만원(2023년 1분기)을 돌파한 가계통신비를 누그러뜨리려면 좀 더 구체적인 방안이 필요했습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이통3사의 5G 요금제에 ‘중간’이 없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일례로, 110GB(6만9000원)를 제공하는 SK텔레콤의 요금제 ‘레귤러’와 바로 아래 단계 옵션인 ‘베이직 플러스(24GB·5만9000원)’의 데이터 제공량은 86GB나 차이가 났습니다. 다른 통신사들의 요금제 구조도 크게 다르지 않았죠. 선택폭이 좁다 보니 소비자들은 자신의 데이터 사용량에 걸맞은 요금제를 고르기가 쉽지 않았고, 과소비로 이어질 가능성도 그만큼 높았습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5G 중간요금제’입니다. 중간 단계의 요금제를 추가해 ‘데이터 양극화’가 심한 이통3사의 5G 요금제를 세분화하는 게 이 요금제의 목표였습니다. 그러면 소비자는 이전보다 합리적인 소비를 꾀하고, 이를 통해 가계통신비도 자연스럽게 낮아질 거란 게 과기부의 생각이었죠.

첫 테이프는 업계 3위인 LG유플러스가 끊었습니다. 지난해 4월 12일 50GB·80GB ·95GB·125GB 데이터를 제공하는 중간요금제 4종을 출시했습니다. 한달 뒤인 5월 1일엔 SK텔레콤이 바통을 이어받았습니다. 기존 24GB짜리 베이직 플러스에 추가 용량을 얹는 방식으로 37GB·54GB·74GB· 99GB 요금제를 공개했죠. KT도 6월 2일 50GB·80GB·95GB·125GB 5G 요금제를 선보였습니다.

사실 이통3사는 2022년 정부 요청으로 30GB대 중간요금제를 한차례 선보인 바 있습니다. 이를 고려하면 정부가 가계통신비를 낮출 방안으로 중간요금제란 카드를 한번 더 꺼내든 셈입니다.

그래서인지 중간요금제를 계속 밀어붙이는 정부의 행보를 두고 업계에선 ‘물음표’가 흘러나왔습니다. ‘가격 인하가 아닌 선택지 확대가 통신비 인하로 이어질 것인가’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던 겁니다. 통신업계에선 ‘중간요금제가 실적에 큰 부담을 줄 것’이란 볼멘소리도 나왔습니다. 고용량·고가 요금제 가입자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중간요금제로 갈아타면 이통사의 가입자당 평균 매출(ARPU)이 줄어들 것이란 이유에서였죠.

[자료 | 통계청, 사진 | 뉴시스]
[자료 | 통계청, 사진 | 뉴시스]

어쨌거나 KT가 중간요금제를 출시한 것을 끝으로 7개월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정부의 기대대로 국민의 통신비 부담은 많이 줄어들었을까요? 통신업계의 앓는 소리처럼 이통3사의 실적은 악화했을까요?

먼저 가계통신비에 얼마나 변화가 있었는지부터 알아보겠습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분기 13만295원이었던 가계통신비는 2분기에 12만2000원으로 6.4% 감소했습니다. 당시 이통3사가 중간요금제를 출시하고 있었으니, 이렇게만 놓고 보면 중간요금제의 효력이 나타난 듯합니다.

하지만 3분기 결괏값을 보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2분기(12만2000원)보다 6.6% 오른 13만원을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중간요금제가 아무런 효과를 내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통계입니다. 이를 두고 몇몇 전문가는 “통신장비 비용이 상승한 걸 오해한 결과”라면서 반론을 폅니다.

약간 복잡한 내용을 쉽게 풀어볼까요? 가계통신비를 세분화하면 크게 ‘통신장비’와 ‘통신서비스’로 나뉩니다. 스마트폰 요금제는 이중 통신서비스에 속해 있습니다. 통신서비스 비용은 2023년 1~3분기 모두 10만원이었습니다. 2022년 3분기에도 10만원으로 동일했죠.

하지만 통신장비 비용은 달랐습니다. 스마트폰 할부금이 포함된 ‘통신장비’ 비용은 2023년 1분기 3만원, 2분기 2만2000원, 3분기 3만원이었습니다. 그간 가계통신비가 변화했던 건 모두 통신장비 비용이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이를 감안하면 통신서비스 비용이 ‘3분기 연속 그대로’였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중간요금제가 가계통신비 인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죠.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진 걸까요? 전문가들은 소비자가 중간요금제에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신민수 한양대(경영학) 교수는 “고가요금제를 선택할 경우 받는 스마트폰 보험이나 추가기기 요금 무료 등 할인 혜택이 많다”면서 “이런 고가요금제를 쓰는 소비자들은 혜택이 사라지고 데이터 제공량도 줄어드는 중간요금제에 흥미를 느끼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현장에선 오히려 중간요금제가 통신비 인상을 부추긴다는 얘기도 흘러나옵니다. 서울 강서구에서 휴대전화 판매점을 운영하고 있는 사장 A씨의 얘기를 들어보겠습니다. “기존에는 8만~10만원짜리 고가요금제가 아니면 4만~5만원대 저가요금제 둘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었는데, 선택지가 확대되면서 저가요금제에서 중간요금제로 옮기는 손님이 최근 부쩍 늘었다. 1만원 정도만 더 내면 데이터 제공량이 확 늘어나니까 소비자 입장에선 유혹을 참기 어려울 것이다.”

[자료 | 이통3사, 사진 | 연합뉴스]
[자료 | 이통3사, 사진 | 연합뉴스]

A씨의 말은 과장이 아닙니다. 이통3사의 중간요금제는 가격을 조금만 올리면 데이터 제공량이 가파르게 늘어나는 구조로 설계돼 있습니다. 예컨대, 6GB를 제공하는 4만7000원짜리 LG유플러스 요금제를 쓰는 소비자가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 소비자에게 데이터를 무제한으로 지원하는 9만5000원짜리 요금제는 부담스럽게 느껴질 겁니다. 4만8000원이나 비싸니까요.

하지만 중간요금제는 다릅니다. 1만4000원만 더 내면 기존 제공량보다 5배 많은 31GB 요금제(6만1000원)를 쓸 수 있습니다. 이 소비자가 중간요금제로 갈아탄다면 결과적으론 가계통신비는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중간요금제는 고가요금제를 쓰는 소비자들에겐 어필하지 못하고, 저가요금제를 사용하는 소비자들에겐 정작 ‘더 비싼 요금제’를 추천한다는 부작용을 낳고 있습니다. 이들 소비자가 선택을 잘못했다는 건 아닙니다만, 중간요금제가 ‘통신비 인하’란 본래 목적과 다른 방향으로 쓰이고 있다는 점은 짚고 넘어갈 만한 문제입니다.

그럼 이통3사의 실적은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눈치채셨겠지만, 가계통신비 변화가 거의 없는 만큼 이통3사는 이번에도 ‘역대급 실적’을 올릴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중간요금제를 두고 ‘실효성 없이 이통3사 배만 불린 정책’이란 날선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죠. 이 문제는 중간요금제 중간점검 2편에서 자세히 다뤄보겠습니다.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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