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린의 ‘특별한 감정이 시가 되어’
서안나 시인의 이별의 질서
종결형 이별의 뼈아픔
사랑은 관념 아닌 실체
온 몸으로 발화하는 아픔

이별의 질서  

간절한 얼굴을 눕히면 기다리는 입술이 된다 

한 사내가 한 여자를 큰물처럼 다녀갔다 악양에선 강물이 이별 쪽으로 수심이 깊다 잠시 네 이름쯤에서 생각이 멈추었다 피가 당기는 인연은 적막하다 

내가 당신을 모르는 것은 아직 내가 나를 모르기 때문이다 슬픈 육체가 육체를 끌어당기던 그 여름 당신의 등은 짚어낼 수 없는 비밀로 깊다 꽃은 너무 멀리 피어 서러움은 뿌리 쪽에 가깝다 

사랑을 통과한 나는 물 위를 미끄러지듯 달리던 비애 우리는 어렵게 만나고 쉽게 헤어진다 내가 놓아 보낸 물결 천천히 밀려드는 이별의 질서 나는 당신을 쉽게 놓아 보내지 못한다 강물에 손을 담그면 당신의 흰 무릎뼈가 만져진다  

서안나

·1990년 문학과 비평 데뷔 
· 추계예대 겸임교수
· 문예진흥기금 다수 수혜

「립스틱 발달사」, 천년의 시작, 2013.

「이별의 질서」는 비련을 대표하는 시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이별의 질서」는 비련을 대표하는 시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비련悲戀’은 ‘슬프게 끝나는 사랑’이란 뜻이다. 흔하게 말하는 ‘비련의 주인공’은 그런 의미로 활용된 것이다. 그런데 비련은 또 다른 뜻도 가지고 있다. ‘애절한 그리움’이란 뜻이 그것인데, 서안나 시인의 「이별의 질서」에 흐르는 감정이 바로 그런 비련의 뜻을 대변한다. 슬프고 애처로운 상태에서 간절하게 떠난 사람을 그리워하는 심리가 시 전체를 관통하기에 비련을 대표하는 시로 「이별의 질서」를 선택했다. 

사랑과 한 몸처럼 따라다니는 것이 이별이다. 상향 곡선만 그리던 사랑이 변곡점을 찍고 하향 곡선으로 돌아설 때 불현듯 이별은 찾아온다. 사람들(진실되게 사랑을 하고 안타깝게 이별을 한 사람의 경우)은 이별 후에 보통 두 가지 태도를 취한다.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살아가는 ‘진행형’의 태도와 다시 만날 수 없음을 확인하는 ‘종결형’의 태도가 그것이다. 

예컨대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라고 한 한용운의 「님의 침묵」은 ‘진행형’의 태도이고, “나 보기가 역겨워/가실 때에는/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라고 한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종결형’의 태도이다.

‘지금-여기’ 안에서 당신과 함께할 수 없다고 해도 ‘연결고리(연기적 속성)’가 남아서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전자이고, “사랑받지 못하는 것은 슬프다. 그러나 사랑할 수 없는 것은 더 슬프다(M.D. 우나무)”라고 여기며 이별을 영영 끝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후자다.  

그렇다면 두 태도 중에서 누가 더 이별의 고통을 안고 하루하루를 힘들게 보낼까. 같은 상황이어도 후자 쪽이 훨씬 더 비통함 속에 몸부림칠 것이다. 이별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계속해서 이별 감정을 되씹고 있기에 고통은 더욱더 오래간다. 후자 쪽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보통 관념적으로, 추상적으로 이별의 아픔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고통도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된 ‘온몸’으로 발화한다. ‘사랑은 관념이 아니라 실체다’란 명제 아래, 안고 만지고 느낄 수 없는 상실감에 대해 현상적 존재로서 현상을 활용해 언술한다. 육체적 코드로 감각되는 몸의 지각은 그 누가 뭐라고 해도 선명하고 확실한 현존성을 드러내는 사실 그 자체다.

그렇게 몸으로 지각된 떨림이 있고서야 생각과 정서가 뒤따른다. ‘육체가 육체를 끌어당기’는 것도 그런 몸의 현상학적 만남 후에 나타난 사랑이다. 몸으로 지각된 사랑이기에 이별 후에도 몸으로 기억되는 아픔을 겪는 것이다.  

“간절한 얼굴을 눕히면 기다리는 입술이 된다”라고 한 1연에서부터 그런 방식이 드러난다. 간절함은 다름 아닌 ‘얼굴’과 ‘입술’에 의해 촉발된다. “잠시 네 이름쯤에서 생각이 멈추었다 피가 당기는 인연은 적막하다”라고 한 2연에서도 ‘피’가 적막함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책=푸른사상 제공]
[책=푸른사상 제공]

3연과 4연도 마찬가지다. 떠난 ‘당신’과 ‘나’의 심리적 거리를 표현한 “꽃은 너무 멀리 피어 서러움은 뿌리 쪽에 가깝다”에서 ‘꽃’과 ‘뿌리’가 없으면 서러움은 진한 울림을 줄 수 없다.

“내가 놓아 보낸 물결 천천히 밀려드는 이별의 질서”나 “강물에 손을 담그면 당신의 흰 무릎뼈가 만져진다”에서도 정서는 현상적 요소에 기대어 표출된다. ‘나’가 ‘비련’의 정서로 흘려보낸 강물은 ‘당신’에게 가 닿지 못하고, ‘당신’을 통과해서 다시 ‘나’를 향해 밀려온다.

‘비련’의 감정조차 ‘당신’과 만나지 못하고 떠돌고 있음을 암시한 구절이다. 강물 속엔 대답처럼 오직 ‘당신의 흰 무릎뼈’만 만져진다. 왜 ‘흰 무릎뼈’인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흰 무릎뼈’는 걸어서 올 수 없는, 온전하지 못한 ‘당신’의 상태와 마음을 암시한 상징물이다. 

시에 나오는 ‘악양’은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을 나타내는 지명이다. 이곳은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소설 속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별을 한다. 그래서 「이별의 질서」는 은연중에 소설 속 인물들이 갖는 이별 정서를 대변하기도 한다.

혹시나 이 글을 읽은 독자가 소설을 읽은 다음 그곳을 여행하게 된다면 높은 언덕 위 평사리 마을에서 ‘비련’의 감정을 간접적으로 느낄 볼 수 있을 것이다. 비옥한 평사리 들판을 품은 채 악양을 통과하는 강줄기를 내려다본다면 “악양에선 강물이 이별 쪽으로 수심이 깊다”라는 구절이 저절로 떠오를 것이다. 

하린 시인 | 더스쿠프 
poeth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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