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한주를 여는 시
이승하의 ‘내가 읽은 이 시를’
노희석 시인의 연작시
도서출판 잠꼬대 「수인의 편지」
30년 교화사가 바라본 수용자
어머니 뜻을 거역한 청개구리
초범이 재범, 3범이 되는 사회
출소자 향한 외면 거둘 수 없나

 

‘수인의 편지 1’  

운명은 사슬인가
끊기지 않는

돌아서야 한다
막다른 벼랑
잡아주는 이 누구 없어도

삐져나오는 한숨까지
다 내 탓이기에
모포 자락 뒤집어쓰고
눈물 견디며 산다

당신의 뜻 엎질러놓고
어머니,
이 아들은 
일어나야만 합니까.

‘수인의 편지 19’  

차라리 모른 척 누워 있을 테니
마음껏 물어뜯으라
내 뼛속까지

한 번도 씻어본 적 없는 
이 더러운 피를
찬란하게 들이켜다오
한 방울 남김없이
여름모기여

나는 목숨이 아니다
청개구리 속에다
애물일 뿐이니
달디달게 마셔다오

어머니
당신의 주름살, 귀밑 흰머리
내가 죄인입니다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수인의 편지」, 도서출판 잠꼬대, 1992.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두 편의 시를 연속으로 읽는다. 28편의 연작시 중 첫번째와 열아홉번째 시다. 이 시를 쓴 노희석 시인은 30년 동안 교화사敎化師로 일하다 정년퇴직했는데 「수인의 편지」는 대전지방교정청에서 교화사로 일할 때 낸 시집이다. 

교화사란 교도소에서 수용자들을 반성·교화시키는 것을 임무로 하는 국가 3급 공무원이다. 전에는 교회사敎誨師라고 했다. 교도소에서 일하는 이들은 직급에 따라 교도·교위·교감 등이 있는데 이들은 ‘감시’가 중요한 업무지만 교화사는 ‘교화’가 중요한 일이다. 수용자들과 상담을 하고 애로사항을 들어주고 인생 멘토링을 해준다. 

시의 화자는 교도소 수용자, 이를테면 기결수다. 죄를 지었기에 죗값을 치러야 바깥세상으로 나올 수 있다. 사형수와 무기수는 세월이 아무리 흘러가도 바깥세상에 나오지 못하고 그 안에서 숨 거둘 때까지 지내야 한다. 예전에는 무기수가 20년 정도 모범수로 살면 재심을 거쳐 가석방되기도 했다는데 지금은 그런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한다. 

그렇게 출옥한 무기수가 또다시 죄를 지은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라나. 이것은 수용소 문예지 ‘새길’의 심사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100명쯤 되는 이 땅의 사형수와 무기수들은 어떤 끔찍한 죄를 범했기에 남은 생을 몽땅 그 안에서 살아야 할까.

이 시의 화자는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어머니를 생각하며 죄책감을 느낀다. 모포 자락 뒤집어쓰고 몇번을 울었을까. 여름에 모기한테 시달리면서 내 뼛속까지 물어뜯으라고 한다. “이 더러운 피”를 빨아먹는 정도가 아니라 찬란하게 들이켜 달라고 소리친다. 

화자는 어머니의 뜻을 거역한 청개구리요 애물이었다고 자탄한다. 어머니의 얼굴에 주름살이 늘어나게 했고 귀밑머리가 하얗게 세게 했으니 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고 자학한다. 

 

[사진 | 픽사베이]
[사진 | 픽사베이]

노희석 시인은 교화사 시절 수용자들을 만나 들었던 이야기를 시로 쓴 것임이 분명하다. 적어도 이 시의 소재가 된 이는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반성하고 있다. 
진심으로 반성하고 참회하고 나오는 이는 우리 사회가 포용해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는 소년원의 아이가 성인교도소로 가는 확률이 높고 초범이 재범·3범이 되는 비율도 높다. 출소한 사람에 대한 일가친척과 동료들의 외면, 사회의 냉대가 심하기 때문이라고 하니 우리 모두 교화사가 되면 좋겠다. 우리 중 죄 안 짓고 사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이승하 시인
shpoem@naver.com

더스쿠프 Lab. 리터러시
lmw@
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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