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윤호 변호사의 기록
개정 학교폭력예방법 3월 시행
지난해 정순신 아들 사태 논란
징계불복, 소송 이어간 가해자
씻을 수 없는 상처 입은 피해자
학폭예방법 개정 필요성 대두돼
개정 학폭제도 효과 나타날까

7.6%(교육부·2023년 1차). 학교폭력 피해학생 중 누구에게도 피해 사실을 알리지 않은 비중이다. 이유는 ‘이야기해도 도움받을 수 없을 것 같아서’ ‘가해자의 보복이 두려워서’ 등이다. 이런 상황에서 3월 1일 학교폭력예방법 개정안이 시행된다. 지난해 파문을 일으켰던 ‘정순신 변호사 아들 사태’ 이후 강화된 조치다. 달라진 학교폭력예방법은 우리 학교를 어떻게 바꿔 놓을까.

개정된 학교폭력예방법이 3월 1일부터 시행된다.[사진=연합뉴스]
개정된 학교폭력예방법이 3월 1일부터 시행된다.[사진=연합뉴스]

“같은 학교 같은 반 학생에게 당했어요.” 누구에게 학교폭력(이하 학폭)을 당했느냐는 질문에 피해자의 48.3%(교육부 학교폭력실태조사·2023년 1차)가 이렇게 답했다. 학폭 피해자로선 매일 가야 하는 교실이 두려움과 공포의 공간이 될 수밖에 없는 셈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수년 새 유명인의 학폭 가해 사실이 연이어 불거지면서 경각심이 커졌다는 점이다. 특히 올해 신학기는 학폭 문제를 해결한다는 측면에서 중요한 변곡점이 될 전망이다. 오는 3월 1일부터 ‘학교폭력예방법(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시행되기 때문이다. 

그럼 현장에선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답을 찾기 전에 학교폭력예방법을 왜 개정했는지 그 발단부터 살펴보자. 이 법의 개정 필요성이 커진 건 지난해 2월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됐던 정순신 변호사의 아들 학폭 사건이 언론에 알려지면서다.

정 변호사의 아들(이하 가해학생)은 2017년 고등학교 재학 당시 동급생을 1년여간 지속적으로 괴롭혀온 것으로 밝혀졌다. 반복되는 언어폭력과 따돌림으로 피해학생은 일상생활이 어려워졌고, 자살 시도까지 했다. 결국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에선 가해학생에게 ‘강제전학’ 징계를 내렸다. 입시에 민감한 명문고등학교에서 강제전학 처분이 내려진 건 그만큼 사안이 중대하고, 피해학생과 가해학생의 분리가 시급했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가해학생 측은 강제전학 징계에 불복했다. 행정소송을 진행해 사건을 대법원까지 끌고 갔다. 그렇게 1년 넘게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가해학생은 전학도 가지 않았다. 결국 피해학생은 가해학생과 같은 공간에서 생활해야 했고, 가해학생이 잘못을 부인하는 모습을 보며 2차 피해를 입어야 했다. 

학폭을 저지른 가해자는 응당 징계를 받는 줄로만 알았던 사람들은 분노했다. 정 변호사의 사건을 통해 징계에 불복해 소송을 이어가는 방식으로 징계를 지연하는 사태를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피해학생은 이후 6년여가 흐를 때까지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정작 가해학생은 어떤 불이익도 받지 않은 채 서울대에 정시로 합격했다. 이 논란으로 정 변호사는 국가수사본부장 후보에 임명된 지 하루 만에 자진 사퇴했고, 학교폭력예방법의 허점을 보완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여기에 발맞춰 정부는 지난해 4월 ‘학교폭력 종합 근절 대책’을 발표했다. ‘가해학생 무관용 원칙’ ‘피해학생 보호 강화’ ‘학교의 대응력 강화’ 등을 원칙으로 내세웠다. 이번 학교폭력예방법 개정안 역시 이 3가지 원칙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렇다면 법이 개정되면 학폭 제도들은 어떻게 달라질까. 무엇보다 가해학생을 좀 더 엄정하게 조치한다. 가해학생은 피해학생에게 접촉·협박·보복행위를 해선 안 되고, 이를 위반할 경우 출석정지·학급교체·전학·퇴학 처분 등 중징계를 내리도록 했다. 학폭 전력이 있는 경우 대학 수시뿐만 아니라 정시에서도 불이익을 주도록 했다.[※참고: 학폭 기록 대학 입시 반영은 2026학년도 대입부터 의무화된다.] 

피해학생의 보호를 강화했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학폭 발생 시 피해학생과 가해학생을 물리적으로 분리하도록 하고, 학교폭력대책심의위가 열리기 전이더라도 피해학생이 원할 경우 가해학생의 출석정지·학급교체를 할 수 있도록 했다. 

17개 시·도교육청에는 ‘학교폭력 제로센터’를 설치해 초기단계부터 피해학생에게 전담 지원관을 1대1로 배치한다. 피해학생이 필요로 하는 게 무엇인지 살피면서 맞춤형 지원을 하겠다는 거다. 여기에 변호사 등 법률지원단을 구성해 피해학생을 지원한다. 피해학생이 경제적 여건 탓에 불평등을 겪지 않도록 법적 시스템을 만든 셈이다.

아울러 소송 처리 기간도 단축했다. 행정소송 1심은 90일 이내, 2심·3심은 각각 60일 이내에 판결을 내리도록 했다. 정 변호사 아들의 사례처럼 가해학생이 불복조치를 악용하는 사례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다. 다른 행정사건보다 학폭 사건을 신속히 처리해야 한다는 데 입법·행정·사법부가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건 의미 있는 발걸음이다. 

학폭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고충을 겪었던 교사들이 무게를 덜 수 있는 시스템도 도입하기로 했다. 실제로 학폭 사안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교사들이 업무 과중, 학부모와의 갈등 등으로 어려움을 겪어왔다. 학부모 역시 학폭 조사의 공정성, 객관성, 전문성에 불신을 갖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악순환을 개선하기 위해 교육청 내 학폭 전담 조사관을 배치한다. 

학폭 발생 시 전담 조사관을 투입해 조사하도록 제도를 강화했다. 교사가 정당하게 학폭 사건을 처리하거나 학생생활지도를 한 경우엔 민형사상 책임에서 면제하도록 했다. 

지난해 2월 불거진 정순신 변호사 아들 학폭 논란으로 학교폭력예방법의 개정 필요성이 대두됐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지난해 2월 불거진 정순신 변호사 아들 학폭 논란으로 학교폭력예방법의 개정 필요성이 대두됐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학폭 현장에서 일하는 필자로선 피해학생의 보호를 강화했다는 점에서 이번 법 개정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피해학생이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을 것’이란 절망감과 무력감을 호소하고 있다. 학폭은 언제나 법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사각지대에서 기승을 부려왔기 때문이다. 

법은 어디까지나 최소한의 장치일 뿐이다. 학폭의 근절을 위해 법보다 필요한 건 현장이라는 걸 잊어선 안 된다. 부디 이번엔 피해학생 보호제도가 확실히 자리 잡길 바란다. 이젠 학폭 피해학생들에게 ‘넌 마땅히 보호받을 거야’란 희망과 안도감을 줘야 할 때다. 사실 지금도 늦었다.  


노윤호 법률사무소 사월 변호사
yhnoh@aprillaw.co.kr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 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