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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카: 부당한 사용과 구멍➎
공공기관 경영진 법카 일탈 반복
코레일 계열사 CEO 사적 사용 해임
가스공사 전 사장은 호화출장 논란
1박당 260만원 스위트룸 투숙해
관행처럼 이뤄졌던 호화 출장건
윗물 탁하니 아랫물도 마찬가지

2022년 어느 공사 사장이 ‘호화 출장’을 다녔다. 법인카드를 들고서였다. ‘해외숙박 상한액’조차 만들어 놓지 않았던 이 공사의 허술한 시스템이 문제였다. 더 심각한 건 이 공사가 그해 이런저런 어려움을 들면서 국민이 납부하는 요금을 네차례나 올렸다는 점이다. 국민의 호주머니를 털어 사장의 출장비를 대줬다고 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다. 공공기관 법인카드: 부당한 사용과 구멍 다섯번째 이야기다.

가스공사는 재정난을 이유로 수차례 요금은 인상했다.[사진=연합뉴스]
가스공사는 재정난을 이유로 수차례 요금은 인상했다.[사진=연합뉴스]

법인카드 문제로 정가 안팎이 시끄럽다. 최근 조성경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1차관이 법인카드를 사용해 업무추진비를 거짓으로 신고한 정황이 드러났다. 조 차관은 어떤 경우에도 사적으로 사용한 적이 없다고 일축했지만, 사용 내역을 밝히지 않으면서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이렇듯 정부 부처나 공공기관의 법인카드 유용은 대표적인 ‘혈세 빼먹기’다. 매년 국정감사에서 단골처럼 오르는 비위 이슈이기도 하다. 최근 3년간 국정감사에서 지적된 공공기관의 법카 오용 사건은 14건에 이른다. 각 공공기관이 내부감사에서 적발한 것만 이 정도이니 실제 오용 건수는 훨씬 더 많을 게 분명하다. 

여기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기관의 주요 경영진이 법인카드 유용 논란에 휩싸이는 경우도 적지 않아서다. 윗물이 탁한데 어찌 아랫물이 맑을 수 있겠느냐는 거다. 공공기관의 법인카드 유용이 내부에선 ‘관행’처럼 받아들여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럼 윗물의 오용 사례는 어떨까. 2021년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선 공공기관 최고경영자(CEO)의 ‘법카 일탈’이 화제가 됐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의 자회사 코레일네트웍스의 강귀섭 전 사장이 문제였다. 김상훈 의원(국민의힘)은 “강 전 사장은 2년 남짓 근무하며 무려 1020건, 9100만원의 법인카드를 사용했다”면서 “그중 사적 용도로 쓰였다고 규명된 건 900만원에 달하고 정육점, 담배 구매, 지인 식사대접 등에 썼다”고 지적했다. 강 전 사장은 법인카드 문제가 도마에 오르면서 2020년 8월 해임됐다. 

코레일네트웍스 노조 관계자는 “강 전 사장을 해임할 때에도 전ㆍ현직 임원들이 법인카드를 사적으로 사용하는 문화가 워낙 만연해 있어 청와대에 조사를 촉구했지만 의미 있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다”면서 “지금도 언론에 드러나는 법인카드 부정사용 건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채희봉 전 가스공사 사장은 해외 출장 중 호텔 스위트룸에 묵은 것으로 확인됐다.[사진=뉴시스]
채희봉 전 가스공사 사장은 해외 출장 중 호텔 스위트룸에 묵은 것으로 확인됐다.[사진=뉴시스]

2023년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선 채희봉 전 한국가스공사 사장의 ‘호화 출장’이 도마에 올랐다. 채 전 사장은 2022년 4월 영국 런던에 갔다. ‘신규 LNG 도입계약 SPA 서명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채 전 사장은 사흘간 고급 호텔 스위트룸에 투숙하며 1박당 260만원을 법인카드로 긁었다. 

공공기관의 여비규정은 통상 ‘공무원 여비 규정’을 참고한다. 임직원 직급별 여비 세부기준은 국민권익위원회가 마련한 ‘공직유관단체 공무여행 관련 예산낭비 방지 방안’을 따른다. 

가령, 차관급 공무원이 해외 출장지를 방문할 경우 1박 숙박비가 389달러(48만원ㆍ당시 환율 기준)를 넘어선 안 되는 등 모든 공무원의 직급ㆍ직위, 출장국가ㆍ도시등급에 따른 상한액이 설정돼 있다. 불가피한 사유로 숙박비의 상한액을 넘겨야 할 땐 예외 규정도 있다. 다만, 이때 역시 상한액의 2분의 1을 넘지 않는 범위만 추가로 지급할 수 있다. 

채 전 사장이 쓴 호텔비는 가스공사 사장에 준하는 차관급 공무원의 1박 숙박비 상한액 48만원보다 212만원 많은 액수였다. 이날만 특별히 많이 쓴 것도 아니다. 감사원 감사에 따르면, 채 전 사장은 재직기간에 총 16회의 국외 출장을 다니면서 74일을 숙박했고, 총 6482만원을 썼다. 

공교롭게도 그는 모든 출장 건에서 공무원 여비 규정의 상한액을 초과했다. 상한액의 절반을 더 쓸 수 있는 예외 규정을 적용해도 16회 출장 중 12회나 초과했다. 하지만 채 전 사장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때까지 가스공사는 고위 간부의 국외 출장 숙박비 상한액을 정해놓지 않았다. 

그렇다고 공무원 여비 규정을 준용한 것도 아니었다. 숙박한 다음 실비만 청구하면 전액을 되돌려주는 허술한 시스템만 운영했다. 문제는 가스공사의 재무 건전성이 괜찮았냐는 거다. 채 전 사장이 호화 호텔에서 머물던 2022년, 가스공사는 재무상황이 악화하고 국제 에너지 가격이 뛴다는 이유를 들어 가스요금을 네차례나 올렸다.

그러고도 천연가스 수입대금 중 판매 요금으로 회수하지 못한 ‘미수금’은 지난해 말 기준 13조원대로 추정되고 있다. 결국 국민 호주머니에서 더 많은 돈을 빼내 가스공사 고위직의 호화출장에 대준 것이나 다름없다.

더 심각한 건 지금부터다. 가스공사 윗물의 ‘호화 출장 관행’은 아랫물로 이어졌다. 2019년 1월부터 2022년 7월까지 사장ㆍ임원 등 가스공사의 간부들이 해외로 출장한 건수는 53회였다. 이중 모든 출장에서 공무원 여비 규정의 상한액을 초과했다. 이들이 초과한 금액을 모두 더하면 7623만원이나 된다. 사장부터 출장 숙박비를 법인카드로 방만하게 긁어대니 일선 직원들까지 ‘혈세’를 펑펑 써댄 셈이다. 

가스공사 관계자는 “당시엔 공사 내부 여비규정에 상한액이 없었다”면서 “지금은 감사원 지적을 받아 상한액을 정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해명에도 납득하기 어렵다. 

가스공사는 이 사건이 터지기 1년 전인 2021년에도 비슷한 일로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가스공사는 그해 4∼5월 두바이 해외법인의 예산집행 관리 실태를 두고 특정감사를 벌였고, 법인 직원 2명이 허위 출장 보고를 통해 출장비 약 280만원을 부당 수령한 사실을 적발했다. 직원 2명은 추가 협상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출장을 승인받고는 실제론 가족과 호텔에서 숙박하며 휴가를 보내거나 자택에 체류했다. 

허위 출장 기간에 옷을 구매하거나 식사하는 데 법인카드를 썼고, 평소에도 법인카드를 사적인 용무로 긁어댔다. 이렇게 부정 사용한 법인카드 금액은 390만원에 달했다. 

국민권익위원회 관계자는 “법인카드의 용처와 사용 금액을 세세히 들여다보지 않다 보니 사적사용을 관행처럼 여기는 문화가 퍼져 있다”면서 “공공의 기강을 해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시스템을 만들고 유용을 예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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