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안창남의 생각
국가의 무기로 작용하는 세금
기계적으로 운용하면 폐해 커
세금정책 수립에 철학적 성찰
생각 있는 세금 운용 통해서
공정 국가 만드는 힘 길러야

국가가 자신들의 곳간을 채우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중 가장 고약한 건 ‘세금稅金’이다. 때만 되면 국민들의 돈을 거둬가면서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세금은 인류 역사에 선재先在하는 개념이 아니다. 국가 성립과 필요에 따라 후천적으로 생성된 개념에 불과하다. 당연히 국가는 국민에게 세금을 요구할 때 자세를 낮춰야 한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세금을 징수할 때 국가가 가져야 할 제1 덕목은 성실납세자 존중이다.[사진=뉴시스]
세금을 징수할 때 국가가 가져야 할 제1 덕목은 성실납세자 존중이다.[사진=뉴시스]

정부의 간섭을 최소한으로 하고 경제의 운영을 시장에 맡기는 시장경제체제가 발달하면 할수록, 시장의 특성상, 돈이 되는 것이라면 무슨 일도 망설이지 않는 ‘맘모니즘(mammonism)적 사고’가 만연한다.

이 과정에서 탈세가 기생함은 물론 이들을 도와주거나 심지어 돈을 벌기 위해 탈세를 권장하는 조력인(변호사ㆍ회계사 등)이 등장한다. [※참고: 맘모니즘은 부ㆍ돈ㆍ재산 등을 절대시하는 태도 또는 행위를 의미한다. 부ㆍ돈ㆍ이익이란 뜻을 갖고 있는 셈어(아랍어ㆍ히브리어) ‘맘몬’에서 기원했다.] 

2022년 공전의 히트작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주인공 우변호사는 변호사법 조항(제1조 제1항)을 들면서 “돈보단 사회정의 실현을 우선으로 삼아야 한다”며 상대방을 조곤조곤 맞받아친다. 돈이 가치 판단의 척도로 여겨지는 현실을 사는 누군가에겐 우변의 말이 그야말로 ‘이상한’ 주장으로 들렸을지 모른다. 그래도 우변의 ‘돈은 수단에 불과하지 목적이 아니다’는 주장은 신선했다. 

또 다른 예도 있다. 한국 정부와 미국 사모펀드(PEF) 운용사 론스타 간 배상금 6조1000억원이 걸린 국제분쟁에서 ‘한국을 지키자(Defend the ROK)’란 문구를 새긴 티셔츠를 입고 한국 정부의 과세논리를 옹호한 변호사가 있었다. [※ 참고: 반면 론스타의 이익 수호, 이를테면 세무조사가 위법했다는 주장에 몰두한 자와 집단도 있었지만 오랜 소송 끝에 대한민국이 승소했다.] 

이 과정에서 ROK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일한 변호사에게 대한민국은 ‘존재의 이유’였을 테고, 그들에게 돈은 수단에 불과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독일 출신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이 지적한 “소유욕과 평화는 서로 배척 관계에 있다”는 경구警句는 여전히 유효하다. 

공정한 국가를 만들기 위해선 먼저 세금철학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사진=뉴시스]
공정한 국가를 만들기 위해선 먼저 세금철학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사진=뉴시스]

돈이 모든 가치의 중심이 되는 순간, 돈을 벌기 위해 자연환경을 파괴하고 가난하고 병든 사람을 무시하시하는 행위가 만연한다. 아울러 생명 경시 풍조와 극단적 이기주의도 우리 사회에 팽배한다. 그 결과, 사회 구성원 모두가 패자가 되는 불확실성의 시기가 도래한다. 

이런 맘모니즘을 시정하는 방법은 없을까. 있다. 바로 세금이다. 우리나라 헌법에도 “국가는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라”고 쓰여있다(제119조 제2항). 이를 무시하고 소득재분배에 역행하는 세금정책은 선거 때 표를 구걸하기 위한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렇다고 세금을 전쟁터의 기관총처럼 마구 난사할 수 없다. 세금은 사랑과 같은 인류 역사에 선재先在하는 숭고한 개념이 아니라 국가 성립과 그 필요에 따라 후천적으로 생성된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세금부과와 징수는 법에 따라 엄정하게 하고 절차를 지켜야 한다. 탈세자라 할지라도 법에서 정한 절차를 거쳐서 추징을 해야한다. 

사실 세금은 자비가 없다. 예를 들어 2022년 소득 100억원을 올린 납세자(甲)에게 비과세나 감면 또는 공제 등을 고려하지 않고 세율(49.5%ㆍ소득세 45% +지방소득세 4.5%)만 적용하면, 그의 세금은 49억5000만원 상당에 이른다.

세금 내고 남은 금액 50억5000만원을 상속이나 증여하면 그는 또다시 50%인 25억2500만원을 납부해야 한다. 결국 국가는 갑의 100억원 소득 중 75억7500만원을 시차를 두고 가져가는 지분율 75.75%의 대주주인 셈이다. 

하지만 세금의 ‘생각 없음’이 도를 넘으면 납세자는 지분율 75.75%의 주주(국가 형태)라도 교체해왔다. 미국 독립전쟁, 프랑스 대혁명, 동학농민운동 등이 대표적 사례다. 따라서 세금정책 수립과 집행에는 철학적 성찰이 강하게 요구된다.

철학(philosophy)은 사랑을 뜻하는 ‘philo’와 지혜를 뜻하는 ‘sophy’의 합성어다. 지혜를 사랑한다는 의미의 철학은 ‘생각 있음’을 전제로 하며, 그 기반은 이타적이면서도 미래적인 행위다. 내손을 움켜만 쥐는 자에게 철학은 사치일 것이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말고 세금은 국가재정을 충실하게 조달하고(국가 재정건정성 추구), 국가의 주인인 성실한 납세자를 존중하는 것(과세권 남용방지), 그리고 인류 공동선을 추구하기 위한 국가간 협력과 조화(월드텍스)가 바로 세금 철학의 궁극적인 지향점이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Je pense donc je suis)”는 방법론을 제시한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Descartes)의 말은 마녀사냥 등 비이성적 가치기준이 판치는 당시 세계를 송두리째 바꿔놓는 단초를 제공했다. 

그의 금언을 세금에 적용하면 ‘생각이 있는 세금운용=공평한 국가 구현’이리라. 세금정책을 잘만 운용하면 자본주의의 고질적 병폐인 맘모니즘의 폐해를 완화해 공정한 국가를 만들 수 있는 힘을 지닌다. 이 힘을 잘 써야 진정한 선진국이 된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 | 더스쿠프
acnanp@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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