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b. 리터러시가 간다➋
경주 독립서점 어서어서
황리단길 지키는 문화 공간
주인이 읽어본 책만 배치해
맞춤형 책 추천 받을 수 있어
특별한 추억 간직하고 싶다면

마음이 아프면 어디로 가야 할까요? 경주 황리단길에 마음이 아픈 사람을 위한 약국이 있습니다. 바로 어서어서 책방입니다. 책방주인이 직접 읽어본 책으로만 구성된 큐레이션 문학서점입니다. 자신의 아픈 상처를 시집 한권으로 치유해보면 어떨까요?  ‘Lab. 리터러시가 간다’ 두번째 편 독립서점 '어서어서'입니다.

어서어서 책방에는 전국에서 사람들이 찾아온다.[사진=Lab. 리터러시]
어서어서 책방에는 전국에서 사람들이 찾아온다.[사진=Lab. 리터러시]

경주대릉원의 천마총 구간 서쪽에 있는 황리단길은 경주시를 대표하는 관광지입니다. 눈치 빠른 독자께선 벌써 알아차리셨겠지만, 황리단길은 황남동이란 지역명에 경리단길을 합친 조어입니다. 그만큼 힙하고 세련됐다는 뜻이겠군요.
 
그렇다고 황리단길이 오로지 ‘힙’한 것만은 아닙니다. 이 길 구석구석엔 왕릉과 전통문화, 경주의 색이 묻어 있습니다. 수많은 한옥숙소와 카페, 동전빵과 경주빵 등 볼거리와 먹거리도 넘칩니다. 전통적이면서도 세련된 구성 덕분인지 이 길은 젊은 세대가 한번쯤 가고 싶어 하는 공간으로 거듭났습니다. 

이런 황리단길의 한복판엔 오래도록 자리를 지켜온 또다른 상징적 공간이 있습니다. 마음의 약을 처방해주는 곳, 책을 처방하는 경주의 독립서점 ‘어서어서’입니다. 황리단길이 널리 알려지기 전인 2017년에 생긴 어서어서는 어떻게 이곳을 대표하는 상징이 됐을까요? 내친김에 문을 열고 들어가봤습니다. 

‘읽는 약’이라는 약 봉투에 책을 담아주는 어서어서는 문학 전문서점입니다. 어서어서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건 수많은 시집입니다. 시집을 보기 어려운 시대에 당당하게 매대를 가득 차지하고 있습니다. 

30㎡(약 9평) 남짓한 공간에는 앤틱(antique)한 카메라, 큐레이팅한 책, 추천영화 등 문화가 한가득했습니다. 더 흥미로운 건 여기에 있는 모든 책은 책방 주인인 양상규 대표가 읽어본 것들이란 점입니다. 

그래서인지 양 대표는 마치 약을 처방해주듯 독자에게 딱 필요한 책을 추천해주곤 합니다. 책을 직접 읽고 고르고 배치하니 서점 어디 하나 양 대표의 손을 타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어서어서는 그냥 서점이 아닙니다. 양 대표의 애장품 전시관에 가깝습니다. 이런 점에서 그는 책 소믈리에일지도 모르겠군요. 먼저 책을 맛보고 서점에서 책을 찾는 독자에게 책을 드리니까요. 

모두 그렇진 않겠지만 문학은 사람을 구원하거나 치유하는 힘이 있다고 합니다. 문제는 나에게 맞는 책이 무엇이냐는 것이죠. 사실 젊은 세대는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 젊은이들에게 책 한권, 영화 한편을 보는 것은 거추장스러운 일일지 모릅니다. 젊은층 사이에서 ‘쇼트폼’ 콘텐츠가 유행하고, 영화나 책을 요약해주는 크리에이터가 인기를 끄는 건 이 때문일 겁니다.

[사진=Lab. 리터러시]
[사진=Lab. 리터러시]

그런 의미에서 어서어서 책방의 책은 좋은 선택지입니다. 저 역시 이곳에서 김유림 시집 「세 개 이상의 모형」을 만났습니다. 크라프트지로 만들어진 ‘읽는 약 봉투’에 시집을 싸주는 것을 보고 감성을 제대로 아는 곳이란 느낌이 들었습니다. 크라프트지 특유의 갈색과 거친 종이의 질감이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책을 구매하면 면 책갈피를 함께 증정합니다. 이 책갈피는 서점에 비치된 스탬프를 찍어서 직접 완성할 수 있습니다. 자신만의 감성을 추가하면 어서어서 책방에서의 기분 좋은 나들이는 끝납니다.

사실 어서어서 책방이 파는 건 책뿐만이 아닙니다. 양 대표의 취향, 책갈피로 대표되는 경주의 개인적 추억, 그리고 문화를 모두 만날 수 있습다. 어서어서 책방은 에세이 쓰기 강의, 문인들의 강연회, 밤늦게 책 읽기, 책 발간 등을 즐길 수 있는 복합 문화공간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곳을 방문하고 누군가의 작은 세계를 엿본 기분이었습니다. 그 세계는 따뜻하고 보드라운 것이라서 마음이 푸근해졌습니다. 경주에서 작은 ‘치유’를 선물 받고 오면 어떨까요? 수 시간을 차를 몰고 가 만난 경주는 이제 저에게 작은 시집이 됐습니다.

이민우 더스쿠프 기자
lmw@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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