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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
세상이 무너진 날 아침
기댈 수 있는 유일한 곳

세상이 무너졌다면 사람들은 어디서 위안과 연대감을 느낄 수 있을까.[사진=게티이미지뱅크]
세상이 무너졌다면 사람들은 어디서 위안과 연대감을 느낄 수 있을까.[사진=게티이미지뱅크]

“방금 지진 일어난 거 맞음?” 최근 경북 경주에서 지진이 발생했을 때 온라인 커뮤니티엔 많은 글이 쏟아졌다. 동이 트기 전이었는데도 사람들은 수십개 글을 올리며 자신의 경험을 공유했다. 누군가는 커뮤니티에 “재난 알람 탓에 잠에서 깼다”는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지만, 또다른 누군가는 재난 알람을 듣고 커뮤니티에 접속했을 것이다.

이 순간에도 수많은 이들이 커뮤니티에 온갖 형태의 글을 올린다. 취미나 일상 같은 개인의 소소한 이야기부터 사회·정치적 사건까지 종류에 제한은 없다. 그만큼 커뮤니티 영향력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고, 개인의 정체성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통계를 보면 삶에 침투한 커뮤니티의 현주소를 엿볼 수 있다.지난 해 주간조선이 여론조사업체 피앰아이에 의뢰해 조사한 2022 온라인 커뮤니티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의 58.1%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이용한다’고 말했다.

커뮤니티 이용자 중 ‘하루 2시간 이상 이용한다’고 답한 사람은 30.3%, ‘일주일에 한번 이상 글을 쓰는 사람’은 20.3%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이용자가 커뮤니티 규칙을 습득해 생각과 관심사를 공유하는데, 그 때문인지 (이용자들은) 현실보다 커뮤니티에서 더 강한 소속감을 느낀다”고 분석했다.

이렇다 보니 지진 앞에서 사람들이 커뮤니티를 찾는 모습은 생소한 광경이 아니다. 전쟁이 터지면 뉴스가 아닌 커뮤니티에서 전황 등을 체크하는 이들도 적지 않을 듯하다. 아마도 “방금 집 앞으로 탱크가 지나갔어” “인증 사진 올림” 등의 내용일 게다.

웹소설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은 이렇게 극한의 상황에서 커뮤니티를 찾는 사람들이란 상상에서 시작한다. 소설 속 문명사회는 핵전쟁과 괴물의 등장으로 멸망을 앞두고 있다. 주인공 ‘박규’는 멸망을 직감하곤 가진 재산을 처분해 방공호를 만든다. 박규와 같은 생각을 한 이들이 모여있는 곳이 바로 온라인 커뮤니티 ‘비바! 아포칼립스’다.

웹소설에 커뮤니티가 등장하는 것은 드물지는 않다. 상업소설의 특징을 갖고 있는 웹소설은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특히 온라인 문화를 차용하는 경우가 많다. 인터넷 방송은 ‘인방물’이란 하나의 장르로 굳어졌고 커뮤니티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커뮤니티는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기보다 작품 속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는 도구로 활용되곤 했다.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은 커뮤니티를 도구가 아닌 작품 속 이야기를 전개하는 중심축에 뒀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이 소설은 멸망 앞에 놓인 인간군상을 옴니버스 형태로 그려낸다. 괴물이 등장하지만 물자 고갈, 약탈, 굶주림, 생존자 간 갈등 등 현실적인 상황이 주를 이룬다. 작가 특유의 덤덤한 문장과 감성은 이야기에 여운을 더한다.

[사진=문피아 제공]
[사진=문피아 제공]

이렇게 자칫 우울로 가득한 이야기를 환기해주는 게 바로 커뮤니티다. 실제 커뮤니티에서 일어날 법한 일이 멸망 상황에 변주돼 일어난다. 끔찍한 상황 속에서도 우스꽝스러운 글을 올리는 주인공과 이용자들의 모습은 어두운 이야기에 웃음을 더해준다. 커뮤니티 이용 경험이 있는 독자들이 공감할만한 장치다.

이 소설은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인간이 어떻게 관계를 맺는가를 다룬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라는 배경 탓에 이 관계는 씁쓸한 결말이 뒤따르는 일이 많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성과 희망도 제시한다. 과연 커뮤니티의 역할은 어디까지일까.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에서 답을 찾아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가 될 듯하다.

김상훈 문학전문기자
ksh@thescoop.co.kr

이민우 더스쿠프 기자
lmw@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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