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한주를 여는 시
이승하의 ‘내가 읽은 이 시를’
만나지 못하는 가족의 추석
수용자 문예지 새길의 시
송편을 통해 마음 그린 시

송편

추석엔 보름달인데
송편은 왜 반달이에요?
아버지 털고 일어나시라고
돈 벌러 서울 간
네 누이 연락 오라고
좋은 일로 다 채워지라고
반달 같은 송편이다.
그렇게 어머니의 송편은
한숨이 섞여 빚어졌다.
이번 추석에도
돌아오지 않는 막내 생각에
어머니의 손엔
반달 같은 송편만 뜨겠네.

 「새길」, 2021년 가을호. 

수용자의 문예지 「새길」에는 작자가 있는 곳이나 나이, 죄목, 형량 등을 기록한 정보가 전혀 없다. 1948년 4월 1일에 창간해 2022년 겨울호로 통권 460호를 기록한 최장수 문예지임에도 외부에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1948년 4월이면 대한민국 정부가 출범하기 전 미군정 치하였을 때인데, 누구의 아이디어로 이 책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사법부 형정국刑政局이란 곳에서 발간했는데 지금은 사법부 사회복귀과에서 내고 있다.

「새길」엔 테마시, 테마수필, 수기, 독후감, 용서의 글, 소감문, 서간문 등 다양한 글이 실려 있다. 사법부는 소정의 원고료를 지급하고, 전국의 모든 교도소와 구치소에 비치한다. 인기도 많은 문예지다. 단지 그곳에서만 읽히는 비매품 문예지다.

송편은 반달 모양과 보름달 모양 두가지가 있는데 이 시에 나오는 어머니는 반달 송편만 빚는다. 반달은 채워지지 않았음을 뜻한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회복하고(병원에 계신 듯) 누이의 소식도 들려와 식구가 조만간 채워짐을 비는 기원의 의미를 담아 반달 송편을 빚고 있다.

시의 화자인 막내는 형을 살고 있으니 역시 이탈한 식구다. 어머니는 올 가을 추석에도 보름달 송편이 아니라 반달 송편을 만들면서 가족의 모임과 화합, 화목을 기원할 거라고 수의 입은 사내는 생각해보는 것이다.

사진=법무부 교정본부 제공
사진=법무부 교정본부 제공

시 자체의 질적 함량은 높다고 할 수 없지만 감방 구석에 꿇어앉아서 혹은 엎드린 자세로 쓴 시라는 점에서 애틋하다. 이 시에는 병 깊은 아버지와 연락 없는 누이를 걱정하는 마음, 그리고 가족을 기다리는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정이 느껴진다. 서정시의 사전적인 의미는 내 감정을 언어로 그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는 서정시의 본령을 충실히 따른 것이다. 이 시를 써본 것을 계기로 작자는 가족을 더욱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지 않았을까. 어머니에게 자랑할 거리가 생겼다.

어머니, 어머니가 송편 빚는 모습을 시로 썼더니 제가 쓴 게 책에 실렸어요. 원고료도 주던걸요. 앞으로 다시는 엄마 속 안 썩일게요. 우리 올해는 송편 같이 빚어요. 이제는 제가 반달 모양으로 빚을 테니까 어머니는 보름달 모양으로 빚어보세요.

이런 말을 할 것만 같다.

이승하 시인
shpoe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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