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한주를 여는 시
이승하의 ‘내가 읽은 이 시를’
김소월 시인의 술
기대받은 천재였지만
한풀이는 시 뿐이었다

술은 물이외다, 물이 술이외다.
술과 물은 사촌이외다. 한데,
물을 마시면 정신을 깨우치지만서도
술을 마시면 몸도 정신도 다 태웁니다.

술은 부채외다, 술은 풀무외다.
풀무는 바람비(風雨)외다, 바람개비는
바람과 도깨비의 어우름 자식이외다.
술은 부채요 풀무요 바람개비외다.

술 마시면 취케 하는 다정한 술,
좋은 일에도 풀무가 되고 언짢은 일에도
매듭진 맘을 풀어주는 시원스러운 술,
나의 혈관 속에 있을 때에 술은 나외다.

되어 가는 일에 부채질하고
안 되어 가는 일에도 부채질합니다.
그대여! 그러면 우리 한잔 듭세, 우리 이 일에
일이 되어 가도록만 마시니 괜찮을 걸세.

술은 물이외다, 돈이 물이외다.
술은 돈이외다, 술도 물도 돈이외다.
물도 쓰면 줄고 없어집니다.
술을 마시면 돈을 마시는 게요, 물을 마시는 거외다.

「여성」 40호(1939.7)에 발표한 유고작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눈물겨운 시다. 소월은 32년 생애의 말년에는 술에 젖어 시름을 달랬다. 자식은 4남 2녀를 뒀으니 가장으로서 돈을 벌어와야 했다. 소월이 아주 어릴 때 그의 아버지는 철도 부설공사에 동원된 일본인 노무자들에게 집단폭행을 당해 정신이상자가 되고 말았다. 할아버지는 광산업에 뛰어들었다가 쫄딱 망했다.

소월은 문우들이 있는 경성(서울)에서의 생활을 작파하고 고향 정주군(평안북도) 옆에 있는 구성군 남시에 가서 동아일보 보급소를 열었지만 사업 수완이 빵점이었고 신문을 보는 시골 사람도 없어 역시 망하고 말았다.

심한 관절염을 앓고 있어서 술과 아편으로 통증을 달래곤 했다. 1934년 12월 24일에 뇌일혈로 세상을 떠났는데 아편을 술에 타 마셨다는 자살설과 실수로 아편을 과다복용했다는 설이 있다. 살아 있는 내내 몸과 마음이 다 아팠다. 

그의 괴로움이 술을 다룬 이 시에도 여실히 나타나 있다. 만취할 정도로 마셔본 이는 알 것이다. 술이 몸도 마음도 다 태워버리는 경지를. 불을 크게 일으키는 데는 부채나 풀무(불을 피울 때에 바람을 일으키는 기구)가 필요한데 술이 술을 부르고 술이 술을 증폭시킨다. 다정한 술, 시원스러운 술, 술밖에 나를 달래주는 것이 없다. 

술은 호기를 불러오고 한동안 나를 유쾌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백, 두보, 왕유, 이하 등 당시唐詩 4걸은 모두 술노래를 여러편 지어 불렀던 것이다. 내게 위로가 되는 것이 술밖에 없는 이 한스러운 세상! 그런데 술은 돈이 있어야 살 수 있다.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할 것인가. 술 살 돈이 없다면 죽어야 하는가. 

[사진 | 국가문화유산포털]
[사진 | 국가문화유산포털]

소월은 배제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뒤인 1923년, 일본의 도쿄상과대학으로 유학을 갔으나 하필이면 입학 후 관동대지진과 일본의 잔혹한 조선인 학살사건이 발생해 신변의 위험을 느끼고 대학을 중퇴한 후 귀국한다. 워낙 비범한 천재라서 집안을 일으킬 거라는 기대를 갖고 문중의 어른들이 돈을 모아서 유학비용을 댔는데 중퇴하고 말았으니 면목이 없었다.

경성에서 시를 쓰면서 시름을 달래다 배고프다고 우는 아이들을 데리고 고향에는 못 가고 고향 옆 동네에 가서 신문사 지국을 열었지만 문을 닫았다. 그나마 갖고 있던 돈으로 술을 사 마시다가 한 많은 세상을 떠났다. 시가 한풀이였다. 소월의 이 시를 읽을 때마다 나는 가슴에 통증이 온다. 

이승하 시인
shpoe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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