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혜진의 내 아이 상담법
비교 대상 엄친아, 엄친딸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아이
10대 우울증 환자 늘어나
경쟁 사회 구조적인 문제
질투 대신 자신 사랑해야

‘엄친아’ ‘엄친딸’이란 말이 유행처럼 나돈 지 오래다. 친구의 자녀와 내 자녀를 비교하는 부모가 적지 않다는 방증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타인과의 비교는 자녀에게 커다란 스트레스를 안긴다. 자신과 남을 비교하게 만드는 분위기 때문에 정신과 진료를 받는 10대도 가파르게 늘었다.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엄친아’ ‘엄친딸’이란 말엔 이처럼 폭력성이 깃들어 있다.

과도한 경쟁은 아이의 마음을 병들게 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과도한 경쟁은 아이의 마음을 병들게 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공부부터 인성, 외모까지 어느 하나 부족함 없는 사람을 두고 ‘엄친아’ ‘엄친딸’이라고 부른다. 이런 말이 생긴 이유는 뻔하다. 많은 자녀가 부모로부터 “내 친구 아들은…”으로 시작하는 근사한 성장 스토리를 많이 들었기 때문일 거다.

청소년 상담을 하는 필자는 모임에 다녀온 부모로부터 ‘친구 자식의 얘기’를 들었다는 아이들을 자주 마주한다. “엄마 친구 아들은 전교 1등이래요” “아빠 친구 딸은 장학금을 받는대요” ….

이런 얘길 들은 아이들의 속내는 어떨까. ‘나는 왜 이 정도밖에 안 될까’라며 좌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부는 이렇게 부족한 사람으로 낳아놓곤 남과 비교해 기를 죽이는 부모에게 분노를 느끼기도 한다.

비단 요즘 얘기만은 아니다. 필자가 20~ 30년 전에 만났던 청소년도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엄친아ㆍ엄친딸 논란은 시대를 초월한 문제다.

물론 부모는 억울할 수도 있다. 친구와의 모임에서 들었던 걸 자녀에게 악의 없이 건넨 것뿐인데 말이다. 그런데 받아들이는 아이 입장은 다르다. 특히 심리적으로 위축된 상황이라면 “걔는 새벽 1시까지 공부한다던데…”는 말은 “넌 대체 그 시간에 뭐하니”란 말로 치환돼 들릴 수밖에 없다.

아이들이 이렇게 비교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경쟁이 치열한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한달에 수백만원을 내야 하는데도 입시 경쟁이 치열한 영어유치원을 보라. 아주 어릴 때부터 무한경쟁에 내몰리는 아이들이 많다. 이런 경쟁은 아이의 마음을 병들게 한다. 실제로 한국의 10대 우울증 환자 수는 2022년 6만7842명으로 2018년 4만29명과 비교해 69%가량 증가했다.

청소년이 우울한 건 한국만 그렇다. ‘한국 어린이ㆍ청소년 행복지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2개국 중 한국의 행복지수는 22위로 최하위를 기록했다. 이런 상황에선 부모가 별 생각 없이 한 비교의 말은 상처가 될 수밖에 없다.

물론 가장 좋은 건 부모가 무슨 말을 하든 자녀 스스로가 남과 비교하지 않는 거다. 부모 친구의 자녀가 아무리 잘났어도, 부모가 아무리 그를 입이 마르게 칭찬해도, 내가 비교하지 않으면 괴로울 이유가 없다.


다만 이런 건강한 마인드를 갖기 위해선 자신이 스스로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내가 남보다 못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으면, 지속적으로 남과 비교할 수밖에 없다. 나아가 자신의 삶에 충실하기도 어렵다.

비교가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잘 보여주는 영화 한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영화 ‘아마데우스(1985년)’는 천재적인 음악가인 모차르트를 질투하는 살리에리의 심리를 다룬다. 영화 속에서 살리에리는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질투한다. 자신에겐 음악적 재능을 주지 않은 신을 원망하며 열등감에 괴로워한다. 그렇다면 살리에리는 모차르트보다 음악적 재능이 부족해서 고통스럽고 불행했던 걸까.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살리에리는 30년 넘게 오스트리아 궁정악장을 지냈을 만큼 뛰어난 실력의 음악가였다. 설사 모차르트를 넘어서는 건 어려웠다고 하더라도, 살리에리가 자신만의 음악에 집중했다면 그가 괴로움에 빠지는 일은 적었을 거다. 결국 살리에리가 불행했던 건 천재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신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자녀가 살리에리가 느꼈던 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실력을 겨루는 대회에 참가하는 운동선수의 모습은 훌륭한 본보기가 될 수 있다. 운동선수들은 찰나의 차이로 희비가 엇갈린다. 수영이나 스케이트 경기의 경우 0.01초 남짓의 시간으로도 결과가 갈린다.

찰나의 차이로 금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들은 얼마나 실망스러울까 싶지만, 정작 선수들은 그렇지 않다. 서로 축하해주고 기뻐하며 메달을 입에 문 멋진 포즈로 촬영에 임한다. 입상하지 못했어도 메달을 획득한 동료를 응원하며 진심으로 기뻐하는 선수도 많다.

등수는 특정 영역에 한한 것이다. 등수로 인생 전체를 평가할 수는 없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등수는 특정 영역에 한한 것이다. 등수로 인생 전체를 평가할 수는 없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경기결과를 인정하고 환하게 웃는 그들의 웃음에서는 살리에리가 느꼈던 절망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선수들은 지금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동료나 선후배들과 또다시 경쟁하고 그들을 이기고 싶어 할 것이다. 하지만 나보다 나은 성적을 내는 선수를 향한 질투나 열등감으로 자신을 피폐하게 하진 않을 거다.

혹시 자녀가 남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슬퍼하고 있다면, 경기에 임하는 운동선수의 마인드를 일깨워주는 건 어떨까. 그리고 “등수는 특정 영역에 한한 것일 뿐, 인생 전체를 평가할 수는 없다”고 이야기해주자. 아울러 자신의 능력과 한계를 인정하고, 할 수 있는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독려해주자. 그러다 보면 자신을 사랑하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해갈 것이다.

유혜진 서울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 소장 | 더스쿠프

홍승주 더스쿠프 기자
hongsam@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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