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꽃 소년」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지혜를 배운
소년 소녀 시절의 회상

저자는 수필집 「눈물꽃 소년」을 통해 소년 시절의 서투르고도 빛나는 기억을 공유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저자는 수필집 「눈물꽃 소년」을 통해 소년 시절의 서투르고도 빛나는 기억을 공유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이 있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유년은 봄날 같았고, 지나고 나면 모두 지금보다 반짝반짝 빛났을 때였다. 금아琴兒 피천득은 이 시기를 ‘아깝고 찬란한 다시 못 올 시절’이라 했다. “유치원 시절, 세상이 아름답고 신기한 것으로 가득 차고 사는 것이 참으로 기뻤다.” 

박노해 시인은 인간에게 있어 평생 지속되는 ‘결정적 시기’가 있는데, 그 첫번째가 바로 ‘소년 소녀 시절’이라고 말한다. 인생 전체를 비추는 가치관과 인생관과 세계관의 틀이 짜이고, 저 광대한 세상을 걸어 나갈 근원의 힘을 기르는 때. 아직 피지 않은 모든 것을 이미 품고 있던 그 소년 시절.

수필집 「눈물꽃 소년」은 박노해 시인이 전하는 ‘어린 날의 이야기’다. 어느덧 70성상星霜을 앞둔 시인은 응축된 시어가 아닌 33편의 산문들로 소년 시절 기억을 들려준다. 남도의 작은 마을 동강에서 자라 국민학교를 졸업하기까지, ‘평이’라고 불리던 성장기가 가슴 시리게 펼쳐진다. 

“내 안의 소년은 ‘눈물꽃 소년’이다. 해맑고 명랑한 얼굴로 달려와 젖은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곤 한다.” 독재 시절 살아있는 시어로 시대와 영혼을 뒤흔들었던 저자는 “무슨 힘으로 그런 삶을 살 수 있었나요?”라는 질문에 “내 모든 것은 ‘눈물꽃 소년’에서 시작됐다”고 답한다. 이 책은 현대사의 굴곡을 온몸으로 살아낸 저자가 깊은 성찰을 통해 길어 올린 기억의 유산이기도 하다. 

산과 들과 바다, 진달래와 해당화, 동백꽃 향기, 흙마당과 마을 골목, 학교와 장터…. 그 속에서 자란 소년의 일화가 담백하고 풍요롭게 그려진다. 등장인물들의 정감 어린 사투리와 저자가 직접 그려 넣은 삽화는 이야기에 따뜻함과 아련함을 더한다. 

이 책의 배경은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모자란 게 많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저자는 “자연과 인정人情과 시간은 충분했다”고 말한다. 책 속의 사람들은 못 배우고 가난해도 인간의 기품이 있고, 서로를 보살피는 관계가 있고, ‘참말’을 할 수 있는 진실한 삶을 살아낸 이들이다. 

죄를 지은 청년을 보듬어 살아갈 힘을 주던 할머니. 아버지를 여읜 평이에게 ‘동네 한 바퀴’를 돌게 하며 씩씩하게 나아가게 한 이웃 어른들. 부당한 일에 함께 맞서며 같이 울어주던 동무들. 늘 몸을 기울여 학생들의 말을 들어주던 ‘수그리’ 선생님. 말이 아닌 삶으로 가르치며 눈물의 기도를 바치던 어머니. 연필을 깎아주던 첫사랑의 소녀까지. 

그래서 저자는 가난하고 슬픔 많던 시절이었지만 “내 마음에 어둠은 없었다”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었다. 가난과 결여는 서로를 부르고 서로를 필요로 하게 했다.” 그들에게서 인간의 도리와 원칙, 감사와 책임, 절제와 헌신을 익혔고 스스로 자기 앞가림하는 능력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지혜를 배웠다고 말한다. 

이 책은 간절한 마음과 강인한 의지가 살아있던 눈물꽃 소년을 통해 무엇이 한 인간을 키워내는지, 부모와 아이, 스승과 제자, 이웃과 친구는 어떠해야 하는지, 오늘의 나를 만든 순간들은 무엇인지, 지금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돌아보게 한다.

이지은 더스쿠프 기자
suujuu@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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