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우 랩장의 1인칭 책읽기
단편선 「어느 노동자의 모험」
감기에 걸린 상태, 피곤한 상태
그리고 시인 혹은 소설가인 상태

누군가에게 생계는 글을 쓰는 행위도 포함된다.[사진=셔터스톡]
누군가에게 생계는 글을 쓰는 행위도 포함된다.[사진=셔터스톡]

우리나라에서 가장 돈을 못 버는 직업은 무엇일까. 한국고용정보원의 조사에 따르면, 가난한 직업의 2위와 3위는 수녀와 신부다. 이들의 평균 연봉은 각각 1262만원, 1471만원쯤 되니 한달로 치면 대략 100만원 버는 것이다. 아르바이트를 해도 200만원을 버는 세상에 너무 적게 버는 것 아닌가 싶다가도, 수녀와 신부의 의식주를 성당에서 해결해준다는 점을 감안하면 도저히 납득하지 못할 일도 아니다.

그럼 가장 돈을 못 버는 직업은 무엇일까. 바로 시인이다. 시인은 1년 평균 542만원을 번다. 한달에 50만원도 못 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통계가 나왔을 때 시인들은 누가 이렇게 돈을 많이 버느냐며 불만을 토로했다. 통계 뒤 현실은 더 궁핍하단 거다. 

무언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소설가의 형편도 시인보단 좀 더 나았지만 가난한 직업 10위 안에 있었다. 문인의 가난함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젊은 문인을 만나면 문인이란 것이 직업이 아니라 일종의 상태라며 농담을 하곤 한다. 감기에 걸린 상태, 피로한 상태, 그리고 시인인 상태.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면 직업을 이렇게 정의한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정한 기간 계속하여 종사하는 일. 그렇다면 글을 쓰는 것은 ‘생계生計’가 맞는 것일까.

독특한 책을 한권 만났다. 「어느 노동자의 모험-프롤레타리아 장르 단편선」이라는 책이다. 이 소설집은 5편의 독특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노동자란 경제활동에서 재화를 창출하는 이를 이야기한다. 산업혁명기를 배경으로 삼은 로맨스 웹소설 속 노동자에게 빙의하거나 노동 운동을 하다 사고사한 망자를 만나 자신이 노동 착취를 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삼도천 뱃사공의 이야기 등 장르적 문법으로 작금의 사회문제를 더듬어 나간다. 

소설은 다양한 시대와 공간을 통과하지만 결국은 노조 탄압, 외국인 노동자 처우, 하청노동자, 중대재해 등 현실 문제를 다룬다. 책 제목처럼 각기 다른 사회에서 주인공들은 각자 다른 노동 문제를 직면하게 된다.

이 책을 덮고 나서 나는 이 책을 만들었을 출판노동자를, 글을 썼을 작가를 떠올렸다. 꼭 문인이 아니더라도 글로 생계를 꾸려나가보려는 사람들을 손끝으로 더듬을 수 있었다. 

글로 재화를 창출하지 못하더라도, 쉽게 말해 글로 돈을 못 벌어도 글을 쓰는 이들이 있다. 취재를 하며 만난 많은 작가는 자신을 소설가나 시인이라고 말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이들은 글을 쓰며 농사를 짓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글을 쓴다. 그들에겐 글을 쓰는 행위가 삶을 살아가는 이유처럼 보였다. 생계는 꼭 돈을 버는 것과 밥을 먹는 것만을 이야기하는 건 아닐 테다. 누군가에게 생계는 글을 쓰는 것이기도 하다.

[사진 | 구픽 제공]
[사진 | 구픽 제공]

나는 시인이, 소설가가, 문인이 ‘상태’가 아니길 꿈꾼다. 작가는 노동자가 됐으면 좋겠다. 글쓰기 노동을 판매해 그 대가인 임금을 받아낼 수 있는 프롤레타리아(생산수단이 없어 노동으로 돈을 버는 이)가 됐으면 싶다. 

2023년 9월 작가 노조가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특정한 회사에 고용되지 않는 작가들에게 왜 노조가 필요했을까. 출판사들은 여태까지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책 한권을 만드는 것이 평생의 목적인 수많은 이들에게 ‘상태’를 강요해왔다. 2020년 작가들의 35.8%는 원고료를 받지 못했고 출판 계약서 없이 원고 청탁을 받은 경우는 50.0%가 넘었다. 통계로 잡히지 않는 작가들의 증언도 이미 여러 차례 이뤄졌다. 

노조가 생겼다는 건 ‘어느 노동자의 모험’이 시작했다는 것이다. 스스로가 노동자임을 자처한 작가들 앞에는 소설 속 주인공이 만나는 것만큼이나 거대하고 조용한 난관들이 있을 것이다. 부디 이들의 이야기가 해피엔딩이 되길 바란다.

이민우 더스쿠프 기자
 lmw@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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