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커버스토리 視리즈
사라진 구독 해지 버튼➋
소비자 구독 제한 막는 기업들
화장실 들어갈 때 나갈 때처럼
버튼 없애고 위약금 부과하고
정부가 법적 제재하고 있지만
아랑곳 않는 기업도 적지 않아
점점 짙어지는 구독경제 그림자

# 우리는 視리즈 ‘사라진 구독 해지 버튼’ 1편에서 구독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이 ‘거친 방법’으로 소비자들의 구독 해지를 막은 사례들을 살펴봤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는 불법입니다. 정부는 이런 행위를 제재하고 있습니다.

# 문제는 현행법 체계론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대처밖에 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이 때문인지 정부의 시정명령을 따르지 않고 버젓이 영업을 진행하는 기업도 있습니다. 우린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요? 더스쿠프 視리즈 ‘사라진 구독 해지 버튼’ 2편입니다.

일부 구독 서비스는 다양한 방법으로 소비자의 구독 해지를 막는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더스쿠프 포토]
일부 구독 서비스는 다양한 방법으로 소비자의 구독 해지를 막는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더스쿠프 포토]

구독이 일상인 시대가 찾아왔습니다. 우리가 즐겨 보는 OTT 업계만 해도 그렇습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OTT를 이용한 경험이 있느냐’는 질문에 전체의 86.5%가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유료 OTT를 이용 중’이란 응답도 55.2%에 달했습니다. 한국인 2명 중 1명은 OTT 서비스를 구독 중이란 얘기입니다.

이번엔 관점을 구독 서비스를 도입한 기업 입장으로 바꿔볼까요? 구독자는 기업 실적의 지표입니다. 구독자가 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실적이 악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구독자가 곧 돈이니까요. 그래서 기업들은 구독자 늘리기에 사활을 겁니다. 구독자 한명이라도 이탈하는 것을 막으려 온갖 노력을 기울입니다.

이 때문일까요? 이들 구독 서비스 중에선 과격한 방법으로 소비자의 구독 해지를 막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視리즈 1편에서 설명드렸듯, 구독 해지 버튼을 감추거나 시스템적으로 해지할 수 없도록 만드는 방법이 대표적입니다. 해지하려고 하면 ‘여태까지 할인 받은 금액을 되돌려달라’면서 어마어마한 위약금을 제시하는 업체도 있습니다.


지금은 좀 드물긴 합니다만, 구독 연장 해지는 해주지만 환불은 해주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소비자가 서비스를 한번도 이용하지 않았는데도 말이죠. 이런 방식은 주로 OTT나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업계에서 주로 쓰였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22년 2월 넷플릭스·구글·웨이브·KT·LG유플러스 등 5개 기업에 시정명령과 총 195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했습니다.

전자상거래법에 따르면 소비자는 구매 후 콘텐츠를 이용하지 않았다면 7일 이내에 언제든지 전액을 환불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5개 업체는 ‘구독 해지(취소) 시 남은 결제 기간만큼은 환불해주지 않는다’는 약관을 빌미로 소비자들의 구독 취소를 막아왔죠.

이렇듯 업체들이 소비자의 구독 해지를 제한하는 건 엄연한 불법입니다. 또다른 법을 살펴볼까요.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 제31·32조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통해 구독 해지 제한을 막고 있습니다.

“계속거래(구독)의 계약을 체결한 소비자는 계약기간 중 언제든지 계약을 해지할 수 있고, 사업자는 대금 환급을 부당하게 거부해서는 안 된다.” 간단히 말하면 할인 정책이 들어갔든 약정을 걸었든 소비자는 언제든지 구독을 취소할 수 있다는 겁니다.

위약금 조항을 약관에 교묘히 넣어놓는 업체도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위약금 조항을 약관에 교묘히 넣어놓는 업체도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이 조항을 토대로 정부는 어도비의 사례처럼 과도한 위약금을 부과하는 것도 ‘약관법 위반’으로 보고 있습니다. 2022년 11월 공정거래위원회는 마이크로소프트(MS), 어도비, 한글과컴퓨터에 ‘약관 시정 조치’를 내렸습니다. 이들 3개 업체의 약관에 소비자에게 불리한 약관 조항이 다수 있다는 게 이유였죠.

그중 한글과컴퓨터와 어도비는 소비자의 구독 해지를 제한했다는 이유로 시정 조치를 받았습니다. 한글과컴퓨터의 경우, 소프트웨어 구독을 해지해도 요금을 제대로 환불해주지 않았습니다.

어도비는 연간 이용료를 한번에 낸 이용자에게 “구독한 지 14일이 지나면 환불이 불가능하다”며 환불을 거부했습니다. 1년 약정을 하고 매월 요금을 내는 고객은 해지 시 ‘약정 위반’을 이유로 남은 기간 약정 의무액의 절반을 내야 했습니다.

문제는 업체들의 구독 해지 제한을 예방할 수 있는 법적 울타리가 그리 튼튼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다시 공정위의 사례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공정위의 시정조치에 한글과컴퓨터는 순순히 약관을 수정했습니다. 이제 한글과컴퓨터 구독자는 구독 해지를 선택해 잔여 요금을 일괄 환불받거나, 구독 연장 중단을 선택해 더 이상 결제가 되지 않도록 설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도비는 공정위의 시정명령이 떨어진 지 1년 4개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약관을 고치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29일 방송통신위원회가 ‘이용자 해지를 제한하고 위약금 부과 사실을 명확히 고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시정명령과 13억9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긴 했습니다만, 어도비는 여전히 요지부동입니다.

이 때문인지 인터넷엔 어도비를 사용하다가 ‘위약금 폭탄’을 맞은 소비자들의 불만 쌓인 글이 적지 않습니다. 조금만 검색해 보면 ‘구독을 해지했더니 어도비에서 30만원 위약금을 달라고 한다’ ‘한달만 쓰려고 했는데 1년치를 내게 생겼다’며 해결책을 찾는 소비자들의 게시글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기자의 케이스도 여기에 포함되겠네요. 어도비 관계자는 “공정위와 방통위의 방침에 최대한 협조하고 있다”면서도 “다만, 약관 수정과 관련해선 정해진 것이 없다”고 말을 아꼈습니다.

정부는 구독 해지를 막는 기업들의 행위를 약관법 위반으로 보고 있다.[사진=뉴시스]
정부는 구독 해지를 막는 기업들의 행위를 약관법 위반으로 보고 있다.[사진=뉴시스]

최철민 변호사(법률사무소 최앤리)는 “공정위의 권고 조치는 소비자의 신고가 다수 접수될 때 진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면서 “공정위 지침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업체가 많아 관련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소비자가 나서지 않는 한 이들 업체의 구독 제한 행위를 사전에 차단하기가 쉽지 않다는 얘깁니다.

구독 서비스가 현대인의 일상이 된 만큼, 그 폐해의 그림자도 짙어지고 있습니다. 구독 연장은 곧 기업의 매출과 직결됩니다. 그렇기에 기업들은 어떻게든 소비자들이 구독을 유지하도록 온갖 방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힘없는 소비자들만 피해를 입고 있고, 소비자를 보호해야 할 법적 울타리는 ‘사후약방문’에 그치고 있습니다. 지금 규제기관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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