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부머의 100세 시대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가 가속화하고 있다. 자산도 많고, 연기금도 두둑이 받을 테니, 소비가 활성화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지적도 많다. 100세 시대를 준비해야 하는 그들이 지갑을 닫을 공산이 더 크다는 것이다. 자산의 많고 적음과 노후는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삶과 가족을 바라보는 가치관이 변해야 노후도 변안해진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삶과 가족을 바라보는 가치관이 변해야 노후도 변안해진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2060년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중은 전체의 37.1%로 높아진다. 고령인구가 예상대로 늘어난다면 세계 평균(18.1%)의 2배를 웃도는 수치가 된다. 이렇게 베이비부머 세대(1955~1963년 출생자)는 앞으로 30년여 생존하면서 노인시장의 주축을 이룰 텐데, 우리나라 실버시장은 아직 미약한 수준이다.

대한상공회의소의 분석에 따르면 저마다 노후준비를 하던 베이비부머 세대가 퇴직을 하면 고령층의 소비 여력이 커진다. 그들이 받을 연기금 규모를 감안하면 그럴듯한 분석이다. 하지만 베이비부머 세대가 지갑을 열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오늘날 노인들은 예전 세대에 비해 허리띠를 더 졸라맨다. 그때보다 더 길어진 노후를 걱정해서다. 이는 노인세대의 소비성향(총 가처분소득에서 소비에 지출하는 비율)을 보면 알 수 있다.

70대 노인의 소비성향은 지난 20년간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모든 연령대를 통틀어 가장 낮았다. 70대 노인들도 평균적으로 100세까지 살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에 앞으로 남은 30년 노후를 걱정하는 거다.

베이비부머 세대들은 이전 부모세대에 비해 비교적 일찍 노후준비를 시작했다. 현재 가장 많은 자산을 가진 세대가 바로 그들이기도 하다. 그만큼 심적 부담도 크다. 성인이 된 자녀의 결혼 및 주택마련 자금을 지원해야 하고, 노후준비를 하지 못한 부모 세대를 도와야 한다. 하지만 자녀의 부양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지갑을 닫을 공산이 더 크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문화심리학자인 홉스테드(Hofstede)에 따르면 한국은 ‘걱정이 많은 사회’다. 우리는 현재를 걱정하고 한참 후의 미래를 걱정하고 자식과 손자의 미래를 걱정하고 죽은 후의 삶까지도 걱정하는 문화권에 속한다. 또한 화폐를 성공의 상징보다는 안전이라는 개념과 더 밀접하게 연결시키는 사회이기도 하다. 

노인들 사이에선 “자식보다 돈이 낫다”는 말이 공공연한 진리다. 그러므로 적어도 10년 후, 20년 후 자신의 삶을 지켜줄 수 있는 경제적 안전장치가 없다면 실버시장이 활성화하기 어렵다. 실버시장의 불황은 전체 시장의 불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도 문제다. 

그럼 어떻게 해야 노인들의 걱정을 줄이고 안전감을 높일 수 있을까. 경제적 노후 준비를 도와주는 것만으로 그들의 걱정을 덜어주면 실버들의 소비가 활성화할까. 자산규모와 안정감이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 걸 보면 적어도 그것이 해답은 아니다.

삶과 가족을 바라보는 가치관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아무리 많은 자산도 ‘안전하다’는 느낌을 주기 어렵다. 안전하고 행복한 삶을 현실적으로 다시 정의해야 한다. 부모세대를 걱정하고, 자식과 손자의 미래를 염려하는 ‘걱정 많은 삶’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런 변화 없이 제도만 손본다고 실버시장이 다시 활기를 띠진 않을 거란 얘기다.
김경자 가톨릭대 소비자학과 교수 kimkj@catholic.ac.kr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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