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걸의 有口有言] 지각 인생은 없다
[윤영걸의 有口有言] 지각 인생은 없다
  • 윤영걸 편집인
  • 호수 319
  • 승인 2018.12.24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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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흐를수록 더 아름다워
영화 ‘인생후르츠’의 주인공 노부부는 나이와 싸우지 않고 굴복하지도 않는다. 두 사람의 중요한 행복 비결이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영화 ‘인생후르츠’의 주인공 노부부는 나이와 싸우지 않고 굴복하지도 않는다. 두 사람의 중요한 행복 비결이다.[사진=더스쿠프 포토]

2018년이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험난한 세파를 헤치느라 탈진증후군(번아웃 신드롬)에 걸린 듯 몸과 마음이 지칠 때다. 12월말 세모歲暮의 공허함을 달래줄 과일향 물씬 나는 영화 한 편과 어릴 적 할머니 무르팍에서 옛날 얘기를 듣는 듯 추억에 빠지게 하는 따뜻한 책 한권을 소개한다.

일본 다큐멘터리 영화 ‘인생후르츠(Life is fruityㆍ후시하라 겐시 감독)’는 후반 인생을 고민하는 이에게 멋진 대안을 제시한다. 2014년 촬영 당시 90세였던 츠바타 슈이치 할아버지와 87세 츠바타 히데코 할머니의 일상을 2년간 담아냈다. 물질만능시대에 욕심을 버리고 사람과 자연에 대한 존중으로 삶을 채워가는 노부부의 모습이 한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답게 펼쳐진다. 

2009년 인기를 끌었던 영화 ‘워낭소리’가 소를 매개로 노부부의 삶을 그렸다면 ‘인생후르츠’는 통나무집에 살며 텃밭에서 과일 50종, 채소 70종을 기르는 노부부의 일상을 담았다. 할아버지는 1960년대 아이치현 고조지 뉴타운 계획에 참여하며 집과 자연이 공존하는 마을을 설계하지만 개발열풍에 밀려 성냥갑 같은 아파트만 빼곡히 들어서고 만다. 부부는 재산을 털어 뉴타운 옆에 990㎡(약 300평) 규모의 공터를 사들여 통나무 집을 짓고 나무를 심고 텃밭을 가꿨다. 50년이 지나자 공터에는 새들이 날아드는 도시의 보석상자가 됐다.

‘사람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편의점을 기피하고 재래시장을 다니는 할머니는 사람들에게 감사의 편지를 전해주기를 좋아한다. 할머니는 고민이 생기면 남편에게 “해도 될까?”라고 묻는다. 할아버지는 “당신이 하는 건 다 좋은 것”이라고 맞장구를 친다. 아내를 ‘내 최고의 여자친구’라고 생각하는 할아버지는 어느날 밭일을 하다 잠깐 쉬려고 눈을 감은 채 그대로 세상을 떠난다. 할머니는 “눈물은 금물”이라며 슬픔을 가슴속에 묻은 채 덤덤히 장례를 치르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과일도 인생도 영글어야 더 맛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다.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라는 책은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인물’이라고 칭찬한 애나 모지스 할머니의 그림 67점과 글을 엮은 자전적 에세이다. 모지스 할머니는 76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101세까지 총 1600여점의 작품을 남겼고, 93세에는 타임지 표지를 장식했다. 할머니의 그림에는 그가 겪어온 삶의 아픔과 따스함이 모두 녹아있다. 눈이 소복이 쌓인 숲에서 단풍나무 수액을 받아 시럽을 만들던 경험이, ‘사과 버터 만들기’에는 밤늦게까지 온 가족이 버터를 만들던 기억이 오롯이 담겼다. 

인생후르츠의 주인공 부부와 모지스 할머니의 행복 비결은 끊임없이 손을 놀린다는 점이다. 모지스 할머니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으면 닭을 키웠을 것이라고 말한다. 건축가였던 츠바타씨는 책 출판과 건축설계 제안이 계속 들어오지만 모두 거절한다. 대신 비용 한푼 못받는 정신병원 설계 작업에는 흔쾌히 참여한다. “돈보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게 이유다. 

“사람들은 늙어서 활동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활동하지 않기 때문에 늙는 것이다(올리버 웬델 홈스)”는 말이 생각난다. 이들의 존재이유는 결과가 아니라 뭔가 열심히 일하는 과정에 있다. 

두번째 행복 비결은 자신의 나이와 싸우지 않고, 그렇다고 굴복하지도 않는다. 시간의 흐름을 덤덤히 받아들일 뿐이다. 모지스 할머니는 “사람들은 내게 이미 늦었다고 말하곤 했어요. 하지만 무엇인가를 진정으로 꿈꾸는 사람에겐 바로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젊은 때랍니다. 뭔가 시작하기에 딱 좋은 때 말이에요”라고 말한다. 

이들은 불행도 삶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담담히 받아들인다. 가족을 소중히 하고, 가정에서 행복을 느낀다. 이웃은 남이 아니라 또 다른 가족이다. 쓰바타씨 부부는 노동은 취미이자 생업이자 이웃에 대한 숭고한 봉사였다. 부부는 땀 흘려 재배한 과일과 채소를 정성스레 포장해 이웃에게 나눠준다. 남은 수확물로 딸기케이크ㆍ푸딩ㆍ경단ㆍ잼 등을 직접 만들어 먹는다. 벼락이 치고 장마가 휩쓸고 지나가도 인생은 과일처럼 무르익는다. 우리네 삶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 아름다워짐을 몸소 보여준다.

무술년 묵은 해가 지면 기해년 새해가 뜬다. 올해 좌절한 사람이나 성공한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승부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남은 인생은 ‘아직 길다’는 메시지다.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생존과정에서 행복을 느끼도록 설계됐는지 모른다. 지금의 고난이 ‘기다림과 버림’으로 거듭나 머지않아 희망의 새싹이 움트길 기대해본다.  
윤영걸 더스쿠프 편집인 yunyeong0909@thescoop.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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