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onomovie] 전쟁, 학습된 두려움
[Economovie] 전쟁, 학습된 두려움
  • 김상회 정치학 박사
  • 호수 325
  • 승인 2019.02.13 08: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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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공동경비구역 JSA❹

조지 오웰(George Orwell)은 1949년 소설 「1984」에서 ‘빅 브라더’가 지배하는 1984년의 디스토피아를 그린다. 오세아니아의 ‘빅 브라더’는 주민을 지배하고 감시한다. 유라시아ㆍ이스타시아 대륙과 전쟁 중이라고 선전하며 위기의식을 불어넣는다. 그러나 실제 전쟁 중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주민들은 그렇게 살아가고 빅 브라더는 그렇게 권력을 유지한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빅 브라더’는 위기의식을 이용해 주민들을 통제한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빅 브라더’는 위기의식을 이용해 주민들을 통제한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이수혁(이병헌 분) 상병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을 정찰하던 중 지뢰를 밟는다. 꼼짝달싹할 수 없게 된 난감한 상황에서 역시 정찰 중이던 북한의 오경필(송강호 분) 중사가 두려움에 ‘질질 짜는’ 이수혁을 발견하고 지뢰를 제거해주고 돌아간다. 그 인연으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남측 경비병 이수혁과 남성식(김태우 분) 일병은 공동경비구역 북측 초소를 드나들며 오경필, 정우진과 친구처럼 어울린다. 진정한 남북화합이 그곳에서 이뤄진다.

그러나 현실적으론 반공법에 이적단체와의 불법교신, 불법회합죄 등 엄중하기 짝이 없는 범법 행위일 뿐이다. 결국 그들의 어울림은 북한군 장교에게 발각되고 어지러운 총질이 이어진다. 오경필은 목격자인 북한 장교를 사살하고 남측 병사들과의 우발적인 총격 사건으로 상황을 정리하고자 한다. 이수혁과 남성식은 북한군의 일제사격 속에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넘어 남측으로 귀환한다.

이수혁은 북한 초소에 납치됐다가 북한군 2명을 사살하고 탈출한 ‘영웅’이 된다. 공동경비구역의 남측 책임자인 표 장군은 괴뢰군 ‘2마리’를 죽인 이수혁 상병을 상찬한다. 반면 경비 장교에게는 이수혁의 탈출 과정에서 북한군과 총격전을 벌이고도 괴뢰군 ‘1마리’ 죽이지 못했다며 질책한다. 군대란 사람을 죽이면 칭찬받고 사람을 안 죽이거나 못 죽이면 질책을 받는, 참으로 기묘한 곳이다. 밥 먹고 오직 사람 죽이는 훈련을 받는 난감한 곳이다.

영화 속 남북 병사들의 교류는 현실적으로 엄중한 범법 행위일 뿐이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영화 속 남북 병사들의 교류는 현실적으로 엄중한 범법 행위일 뿐이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적극적으로 사람을 죽이지 못한 ‘잘못’을 저지른 경비 장교가 표 장군에게 변명한다. “그러다가 정말 전쟁이라도 나면…어쩌나 싶어서….” 그러자 표 장군이 변명 아닌 변명을 하는 경비 장교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본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Si Vis Pacem, Para Bellum).” 전쟁으로 점철됐던 정복 국가인 고대 로마의 전략가 베게티우스가 남긴 말이다.

표 장군은 전쟁의 발발을 두려워하는 경비 장교에게 아마도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도 불사할 각오가 돼있어야 한다는 베게티우스의 가르침을 들려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거기까지는 장군으로서 전쟁을 두려워하는 부하에 대한 응당한 질책인 듯하다. 군인이 전쟁을 두려워하면 어찌하겠는가.

그러나 그다음 장면이 관객을 혼란스럽게 한다. 한바탕 법석을 떨던 표 장군이 경비 장교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판문점 최고참의 경험이 담긴 은밀하고도 묘한 팁을 전한다. “전쟁이란 게 말이야… 그렇게 쉽게 일어나는 게 아니야.” 전쟁도 불사할 듯한 표 장군의 용맹성은 군인의 상무정신도 아니고 베게티우스의 평화를 위한 전략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단지 ‘북한을 향해 총 몇 발 쏘고 북한군 몇 명쯤 죽여도 전면전까지는 발생하지 않는다’는 ‘믿음’에 근거할 뿐이다.

남한이나 북한이나 진정 ‘전쟁 불사’의 자세는 되어있지 않다는 것을 판문점에 오래 근무한 표 장군은 눈치 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양측 모두 전쟁 불사를 외쳐야만 한다. 표 장군은 용장도 아니고 베게티우스와 같은 전략가도 아닌 그저 노회한 최전방의 ‘똥별’인지도 모르겠다.

걸핏하면 전쟁이 날 듯 요란스럽지만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사진=뉴시스]
걸핏하면 전쟁이 날 듯 요란스럽지만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사진=뉴시스]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소설 「1984」에서 1984년의 세상은 오세아니아ㆍ이스타시아ㆍ유라시아 3대륙으로 나뉜다. 모두 전체주의 정치가 지배한다. 이들을 다스리는 ‘빅 브라더’는 주민들을 철저히 감시하고 통제하고 세뇌한다. 주민들의 통제와 복종을 위해 ‘빅 브라더’는 주민들에게 끊임없이 위기의식을 강요한다.

오세아니아의 빅 브라더는 항상 유라시아와 이스타시아의 침략을 경고하고, 그들과 전쟁 중이라고 선전한다. 그러나 그들이 정말 전쟁 중인지 주민들은 모른다. 감시와 통제를 당한다고 딱히 못 견디게 불편한 것은 없다. 주민들은 그렇게 살아가고 빅 브라더는 그렇게 권력을 유지한다.

걸핏하면 당장이라도 전쟁이 터질 것처럼 요란스럽지만 표 장군 말처럼 전쟁은 그렇게 쉽게 일어나지 않아 왔다. 혹시 남과 북의 정체 모를 ‘빅 브라더’들이 서로 있지도 않는 외부의 위협 혹은 외부의 위협을 과장하면서 주민들을 통제하고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해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북한은 혹시 그럴지 몰라도 설마 우리 대한민국이 그럴 리야 없지 않겠는가. 조지 오웰은 그저 미친 몽상가이거나 피해망상증 환자이기를 바란다.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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