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걷수다] 그 집의 창살에 나비가 앉았네
[길걷수다] 그 집의 창살에 나비가 앉았네
  • 오상민 사진작가
  • 호수 406
  • 승인 2020.09.26 07: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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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편 방범창살의 추억

건축가와 사진작가. 둘은 창신동을 걷는다. 옛것의 향기와 정취가 뭉클하게 흐르는 그곳. 문득 낡은 방범창살에 시선이 간다. “어릴 때 저 창살에 끼었었지(사진작가).”“맞다, 맞아(건축가).” 둘의 맞장구 사이에서 기억이 살아난다. 주변을 둘러본다. 둘만 보기엔 아까운 추억들이 샘솟는다. 길걷수다 첫번째 발걸음, 창신동 방범창살 편이다.

지금보니 머리도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창살의 폭이 좁다. 내가 큰 건지 창살이 좁은 건지 모르겠다. 분명한 건 이 모양새였다는 점이다. 그날의 아픔은 머리보다 몸이 먼저 기억한다. [사진=오상민 작가]
지금보니 머리도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창살의 폭이 좁다. 내가 큰 건지 창살이 좁은 건지 모르겠다. 분명한 건 이 모양새였다는 점이다. 그날의 아픔은 머리보다 몸이 먼저 기억한다. [사진=오상민 작가]

1990년께, 서울의 한 복도식 아파트 2층. 열살 전후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가 집에 들어가려 현관문 앞에 서서 초인종을 누른다. 당연히 열릴 줄 알았던 문은 열리지 않고 잠잠하다. 문을 힘껏 당겨도 요지부동. 작은방 창문을 열어 엄마를 불러본다.

# 사건의 시작
 
“엄마! 엄마!” 집안은 조용하다. 엄마는 어디 간 걸까. 보통 이런 경우, 아이들은 두가지 정도의 선택지에서 고민한다.
 
첫째엄마가 올 때까지 집 앞에서 기다린다.
둘째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다시 온다.

이 아이는 첫째도 둘째도 아닌 셋째 선택을 한다. ‘창문으로 들어간다’. 아직 덜 자란 아이가 창문으로 집에 들어가는 일은 생각보다 단순하고 쉬운 일이다. 창문은 넓고, 아이는 작다. 그 아이는 창문으로 집에 들어가는 방법을 다시 한번 그린다.

1. 창문을 연다.
2. 창문턱에 올라선다.
3. 방범창살을 통과한다.
4. 집안 도착성공.
 
아이가 집에 들어가기 위해 창문 앞에 선다. 창문을 최대한 활짝 연다. 창문을 가로막고 있는 타원형의 창살이 등장한다. 언뜻 몸이 들어갈 만하다. 그래, 진입구다.

대각선 방향의 타원형 구멍. 바로 저 구멍이었다. [사진=오상민 작가]
대각선 방향의 타원형 구멍. 바로 저 구멍이었다. [사진=오상민 작가]

창살을 잡고 창문턱 위로 펄쩍 뛰어오른다. 타원형 공간에 먼저 팔을 넣고 머리를 집어넣는다. 조금 끼는 느낌이지만 살짝 고개를 트니 쉽게 들어간다. 곧바로 어깨를 접어 넣는다. 약간 걸리는 느낌, 통증이 살짝 느껴지지만 구겨 넣는다. 상체가 집 안으로 들어갔다.
 
손으로 창살을 밀면서 몸을 집 안으로 빼내본다. 몸만 빠지면 입성 끝. 그런데 아차! 골반이 살짝 낀다. 몸을 살짝 틀어보지만 아프기만 하다. 그래도 포기하면 안 된다. 한번, 두번, 아니 여러번 시도해본다. 몸을 이쪽저쪽으로 크게 틀어본다. 정말 아프다. 직감적으로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부턴 ‘후퇴’다. 들어온 반대 방향으로 상체를 빼낸다. 분명 좀 전에 들어갔던 어깨, 팔, 머리가 빠지지 않는다. 뭔가 잘못됐다. 앞뒤로 몸이 걸려버렸다. 온몸에 힘이 빠진다. 젖은 빨래처럼 축 늘어져 버린다.
 
아이는 생각한다. 뭐가 잘못된 걸까. 엄마는 어디 갔고 문은 왜 잠겨있으며, 난 왜 창문에 끼어 접힌 채로 걸려 있는 걸까.

언덕과 구불구불 골목길은 창신동의 특징이다. 길따라 늘어선 주택과 건물들엔 다양한 방범창의 모습이 남아있다. [사진=오상민 작가]
언덕과 구불구불 골목길은 창신동의 특징이다. 길따라 늘어선 주택과 건물들엔 다양한 방범창의 모습이 남아있다. [사진=오상민 작가]

마지막 승부
 
아이가 끼어있는 타원은 45도 정도 기울어져 있어, 걸려 있는 것만으로도 불편하다. 아이는 이런 자세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다시 집에 들어가기로 결심한다. 사실 방금 전 골반이 끼었을 때, 순간적으로 떠오른 ‘비장의 카드’가 있었다. 바지를 벗는 거였다.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소소한 감정 따윈 중요하지 않다. ‘집에 들어가는 최선의 방법’만 생각하기로 ‘바지 벗기’를 결행한다.
 
다시 힘을 모아 양팔로 최대한 방범창살을 밀어낸다. 상체를 앞으로 기울인다. 정말 힘껏 몸을 민다. 골반이 걸린다. ‘앗! 바지가 없지.’ 정말 아프다. 피부까지 긁힌다. 그럴수록 더 세게 민다. 몸을 더 앞쪽으로 기울인다. 더 힘을 준다. 쏘옥~ 척! (침대) 꿀렁~ 성공!
 
드디어 집에 들어왔다. 하지만 성공의 기쁨도 잠시, 골반이 아프다. 피부가 붉게 부어오른다. 피가 맺히고, 멍도 올라온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그날 이 아이는 평생을 잊을 수 없는 방범창살의 기억을 머리에 새겼다.
 
시간이 흘러 열살의 아이는 마흔살의 어른이 됐다. 창살에 낀 아이는 사진작가가, 나는 건축가가 됐다. 언젠가 창신동에 있는 내 건축사사무소를 찾아온 친구와 함께 동네 골목길을 걸으며 그날의 기억을 소환했고, 우린 수다를 떨었다. 문득 시선에 들어온 방범창살에 친구의 눈이 번쩍 뜨인다. “찾았다! 바로 저 창살에 내가 끼었었지!”

분명한 나비문양이다. 이 방범창을 만든 사람도 같은 마음으로 만들었을까. 아니면 우연의 일치일까. [사진=오상민 작가]
분명한 나비문양이다. 이 방범창을 만든 사람도 같은 마음으로 만들었을까. 아니면 우연의 일치일까. [사진=오상민 작가]
옛 방범창살은 단순한 문양이 아니다. 하나하나 예술 작품처럼 보인다.[사진=오상민 작가]
옛 방범창살은 단순한 문양이 아니다. 하나하나 예술 작품처럼 보인다.[사진=오상민 작가]

소소한 창살의 추억은 내 친구만의 특별한 기억은 아닐 거다. 창살 문양마다 혹은 창문 하나마다 비슷한 듯 다른 각자의 추억과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갖고 마을을 걸어보니, 골목마다 각기 다른 방범창살의 독특한 패턴, 모양이 눈에 들어온다.

언젠가부터 설치되기 시작한 요즘의 방범창살은 대부분 다 비슷한 모양인데, 왜 그 이전의 방범창살들은 패턴․문양․색깔 등이 다양할까.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우린 시간 나는 대로 창신동을 걸으면서 옛 방범창살을 건축가와 사진작가의 눈으로 보기로 했다. 흥미로웠다. 사진작가의 눈엔 꽃과 나비가 보였다. 건축가의 눈엔 지금과 다른 패턴과 문양이 들어왔다. 다음회에선 이 이야기를 해볼 생각이다.

글=박용준 보통사람건축사사무소 대표건축사
opa.lab.02064@gmail.com
 
사진=오상민 천막사진관 작가
studioten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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