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걷수다] 옛것이 차라리 요즘 것 같구나
[길걷수다] 옛것이 차라리 요즘 것 같구나
  • 오상민 사진작가
  • 호수 407
  • 승인 2020.10.02 07: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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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편 창신동 방범창살의 고찰

몇주 동안 우리는 시간 나는 대로 더 많은 창살을 찾아 골목을 탐색했다. 창살을 찾는다는 목표를 정하고 골목을 둘러보니, 이전에는 그냥 지나쳤을 법한 평범한 창살부터 독특한 문양이 있는 창살까지 다양한 종류가 눈에 들어온다. 건축가와 사진작가의 길걷수다 창신동 방범창살 두번째 이야기다. 

옛 방범창살은 다양한 모양을 가진다. 빨간 벽돌과 방범창살, 나무가 한폭의 그림처럼 어울린다. [사진=오상민 작가]
옛 방범창살은 다양한 모양을 가진다. 빨간 벽돌과 방범창살, 나무가 한폭의 그림처럼 어울린다. [사진=오상민 작가]
옛 방범창살은 다양한 모양을 가진다. 빨간 벽돌과 방범창살, 나무가 한폭의 그림처럼 어울린다. [사진=오상민 작가]

요즘 방범창살 대부분은 감옥의 철창살처럼 단순한 모양이다. 옛 창살들이 다양한 형태와 장식으로 만들어진 것과 대조적이다. 왜일까. 현장답사로 수집한 자료의 분석을 통해 ‘방범창살’을 이론적으로 고찰해보자.

■ 재료 고찰=옛 방범창살의 재료는 폭 1~2㎝, 두께 2~3㎜ 정도의 띠로 만들어진 철(steel)이다. 철은 강도에 비해 가공성이 좋아 장비만 있다면 구부리고 꼬거나 절단하기가 쉽다. 그래서 패턴이나 장식을 만드는 게 다른 고강도 재료에 비해 용이하다. 하지만 철은 물에 닿으면 녹이 슬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페인트칠을 해야 한다. 페인트가 방수도막을 형성해 물의 침투를 막아 철의 부식을 방지해줘서다. 이런 재료의 물리적 특성이 옛 방범창살의 다양한 형태와 색을 만들어냈을 수도 있다.
 
반면 요즘 창살은 스테인리스‧알루미늄 등을 가공한 원통형 봉을 사용한다. 재료 자체가 녹이 잘 슬지 않기 때문에 옛 창살처럼 페인트를 칠하거나 유지 관리에 신경 쓸 필요가 별로 없다. 원통형 봉에는 때론 철근을 넣어 절단이 어렵게 개량하기도 한다.

색과 모양이 획일적인 요즘 방범창. 방범의 목적에만 충실한 모습이다. [사진=오상민 작가]
색과 모양이 획일적인 요즘 방범창. 방범의 목적에만 충실한 모습이다. [사진=오상민 작가]

■ 제조 고찰= 옛 방범창살을 만들기 위해선 도안이 필요하다. 방범용이기 때문에 사람이 들어가지 못할 크기의 패턴이면 충분하다. 조밀한 패턴이 튼튼하지만, 너무 조밀하면 물량이 많이 들어가고 작업품이 많이 들어 적절한 크기의 패턴이 좋다. 도안이 결정되면 철을 구부리거나 접거나 꽈서 패턴을 만든다. 철과 철이 만나는 부분은 벌어지지 않게 단단히 용접한다. 때에 따라서 나비·하트와 같은 문양을 추가한다.
 
이런 문양들은 단조로운 패턴에 재미를 주는 미적 요소일 뿐만 아니라 양쪽의 철을 고정하는 구조적 역할을 하기도 한다. 방범창살의 형태가 완성되면 페인트칠을 한다. 설치 방법은 두개다. 창문에 딱 붙이거나 창살 다리를 부착해 원하는 만큼 띄워서 설치한다. 공간을 띄우면 그곳에 물건을 놓을 수 있다.

요즘 방범창살은 녹이 슬지 않는 가공된 재료를 사용해 사각의 틀을 만든다. 그 안에 원통형 봉을 10㎝ 정도의 간격으로 정렬해 설치한다. 창문이 크면 중간에 사각 프레임을 설치해 휨을 방지한다. 원통형 봉은 가공이 어렵고 유지관리 필요성이 적어 재가공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색은 처음 코팅한 백색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옛 방범창살의 다양한 문양. 마치 예술작품 같다. [사진=오상민 작가]
옛 방범창살의 다양한 문양. 마치 예술작품 같다. [사진=오상민 작가]
옛 방범창살의 다양한 문양. 마치 예술작품 같다. [사진=오상민 작가]
옛 방범창살의 다양한 문양. 마치 예술작품 같다. [사진=오상민 작가]

■ 디자인 고찰=요즘 방범창살의 형태는 획일적이다. 뭉뚝하고 단순한 모양이다. 디자인됐다기보단 공장에서 찍어낸 기능적 도구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건물 안팎에서 보는 모습이 모두 감옥의 철창살과 비슷해 다소 유쾌하지 못하다.
 
반면 옛 방범창살은 살의 두께가 얇아 가볍고 날렵해 개방감이 있다. 다양한 패턴과 곡선의 문양들은 방범의 기능적 느낌보다 장식적 느낌이 강하다. 이런 장식성은 창밖을 보는 사람들에게 심미적 자극을 주기도 한다. 파란 하늘에 하트를 띄우거나 나비를 날리는 상상은 옛 방범창살에서만 가능하다. 건축물 외적인 측면에서도 장식성이 있는 문양과 패턴은 획일적이고 지루한 가로환경에서 다양한 표식이나 마크로 활용할 수 있는 디자인 요소가 될 수 있다.

요즘 방범창살. 색과 모양이 획일적이다. [사진=오상민 작가]
요즘 방범창살. 색과 모양이 획일적이다. [사진=오상민 작가]
세월에 의해 휘어져버린 모습마저 멋스럽다. [사진=오상민 작가]
세월에 의해 휘어져버린 모습마저 멋스럽다. [사진=오상민 작가]
창살다리를 부착해 띄워서 설치하면 공간을 활용할 수 있다. [사진=오상민 작가]
창살다리를 부착해 띄워서 설치하면 공간을 활용할 수 있다. [사진=오상민 작가]

비록 방범창살의 설치 이유가 ‘침입방지’란 기능적 목적이라지만, 건축물 내외부 환경을 아름답게 만드는 건 모두에게 긍정적인 일이다. 그래서 일상의 시선이 닿지 않는 범죄 우려가 있는 곳에는 요즘 방범창살을 설치하되, 사방이 공개돼 있어 공공의 시선이 닿는 가로변 창에는 건축물 내외부 사용자를 고려한 옛 창살이 설치됐으면 한다.
 
창은 건물의 숨구멍이다. 사람들은 건물 안에서 창문을 통해 빛과 바람을 느끼고 세상의 소리를 듣는다. 창이 가진 중요한 역할이다. 그런 중요한 곳에 설치되는 게 ‘방범창살’이다. 옛 방범창살의 섬세한 패턴과 조그만 장식은 아마도 창이 가진 목적을 누려야 하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가 아닐까. 기능에만 충실한 요즘 창살을 보며 ‘사람들을 위한 배려가 깃든 디자인’이 필요함을 배운다. 아이러니하게도 옛것이 더 요즘 것 같고 요즘 것이 더 옛것 같다.

글=박용준 보통사람건축사사무소 대표건축사
opa.lab.02064@gmail.com

사진=오상민 천막사진관 작가
studiotent@naver.com

옛 방범창살은 철을 구부리거나 휘거나 꼬아서 만들었다. [사진=오상민 작가]
옛 방범창살은 철을 구부리거나 휘거나 꼬아서 만들었다. [사진=오상민 작가]
옛 방범창살은 철을 구부리거나 휘거나 꼬아서 만들었다. [사진=오상민 작가]
파란 하늘에 나비를 날리는 상상을 해본다. [사진=오상민 작가]
파란 하늘에 나비를 날리는 상상을 해본다. [사진=오상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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