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중저가폰 꺼내든 두 기업
득일지 독일지는 시간 지나 봐야

삼성전자와 애플은 매년 고가의 스마트폰을 내놓으며 오랫동안 프리미엄 시장을 선도해왔습니다. 그런데, 이들 기업이 최근 저렴하면서도 괜찮은 성능을 갖춘 가성비폰을 잇달아 내놓고 있습니다. 두 기업이 갑자기 전략을 수정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프리미엄만 좇다 후발기업들에 점유율을 뺏길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작용했기 때문이죠. 더스쿠프(The SCOOP)가 삼성전자와 애플의 달라진 행보를 분석해 봤습니다.

삼성전자와 애플이 잇달아 가성비폰을 출시했다.[사진=뉴시스]
삼성전자와 애플이 잇달아 가성비폰을 출시했다.[사진=뉴시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스마트폰 시장을 이끄는 화두는 ‘프리미엄’이었습니다.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신제품에 입이 떡 벌어지는 가격을 매겼기 때문입니다. 한번 살펴볼까요. 2018년 9월, 애플은 아이폰X을 출시하면서 사양과 가격대별로 여러 가지 버전을 선보였습니다. 기본 64GB 모델이 142만원에 달할 정도로 가격이 무척 비쌌죠.

애플은 최상위 라인인 ‘아이폰Xs 맥스’도 선보였는데, 뛰어난 성능을 자랑하긴 했지만 가격이 무려 198만원(512GB 기준)에 달했습니다. 200만원짜리 스마트폰을 누가 살까 싶었지만, 아이폰Xs 맥스는 2019년 상반기 세계 스마트폰 판매량의 9.6%(IHS마킷)를 차지하면서 인기를 끄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런 열풍에 힘입어 애플은 아이폰X을 출시한 지 10개월 만에 6300만대를 팔아치우면서 620억 달러(69조7624억원)를 벌어들였죠. 이후에도 애플은 아이폰11, 아이폰12 등에도 고가의 가격표를 매겼습니다.

여기에 뒤질세라 라이벌인 삼성전자도 프리미엄 스마트폰 개발에 열을 올렸습니다. 신제품을 내놓을 때마다 조금씩 가격을 올리는가 싶더니, 지난해 4월에 출시한 ‘갤럭시S20’의 고가 모델 ‘갤럭시S20 울트라’엔 159만5000원의 가격표를 매겼죠. 

이는 이전까지 삼성전자가 프리미엄 라인에 100만원대 안팎의 가격대를 매겼던 것과는 분명 다른 행보였습니다. 이뿐만인가요? 갤럭시Z플립(2020년 2월 출시)도 있습니다. 최초의 폴더블 스마트폰이란 타이틀 덕분인지 이 스마트폰의 가격은 165만원에 달했죠.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프리미엄 전략을 고수했던 이유는 간단합니다. 제대로 통하기만 한다면 이윤을 많이 남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마케팅의 선두주자인 애플을 예로 들어볼까요? 아이폰X 시리즈를 내놓았던 2019년 3분기 당시 애플의 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32%였습니다(카운트포인트리서치). 하지만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스마트폰 시장 전체의 66%인 80억 달러(9조3280억원)를 기록했죠. 이러니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프리미엄 스마트폰에 목을 맬 만합니다.

그런데, 프리미엄을 고수하던 삼성전자와 애플이 최근 분위기를 바꾼 듯합니다. 특히 눈여겨볼 건 애플의 행보입니다. 지난해 4월 애플은 아이폰SE의 2세대 버전을 깜짝 공개하면서 업계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습니다. 아이폰SE는 2016년 3월 선보였던 저가 모델로, 출시 당시 기준으로 기본 모델(16GB)이 59만원에 불과할 정도로 가격이 저렴해 나름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 이후 4년 동안이나 아이폰SE의 차기작을 출시하지 않았던 애플이 돌연 2세대 버전을 론칭했으니 화제를 끌 만했습니다. 애플이 프리미엄에서 가성비로 전략을 수정한 게 아니냐 해석이 나올 정도였죠. 

애플은 왜 4년 만에 중저가폰을 꺼내든 걸까요. 이종욱 삼성증권 애널리스트의 설명을 들어보시죠. “애플은 전체 스마트폰의 80%를 600달러(67만6080원) 이상에 판매했을 정도로 고가 전략을 중시하던 회사다. 이런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저가 제품인 아이폰SE의 출시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애플이 저가 제품을 풀어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리겠다는 전략을 세웠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건 삼성전자도 애플과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0월 인도에서만 살 수 있는 한정 모델 ‘갤럭시F41’을 출시했었죠. 가격 6400만 화소의 쿼드(4개) 카메라, 초고화질(4K) 영상을 촬영할 수 있는 이 모델의 가격은 겨우 26만원(64GB)밖에 되지 않습니다.

다시 중저가폰 꺼내든 애플

물론 애플과 달리 삼성전자는 갤럭시A 시리즈 등 50만원 안팎의 스마트폰을 꾸준히 내놓았죠. 하지만 20만원 가격대를 유지하면서 프리미엄폰 못지않은 성능을 갖춘 스마트폰을 내놓는 건 꽤 이례적입니다. 이는 가성비폰으로 인도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겠다는 삼성전자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들 두 기업이 가성비 시장에 눈을 돌린 이유가 무엇일까요? 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흐름을 살펴보면 답이 나올 듯합니다. 삼성전자와 애플이 역대급 흥행작인 갤럭시S6·아이폰6로 인기를 모았던 2015년에 두 기업은 각각 점유율 22.7%·16.2%를 기록하며 업계 1·2위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IDC). 이때까지만 해도 화웨이(7.4%)나 샤오미(4.9%) 같은 후발주자들은 두 기업의 위세에 눌려 별 영향력을 미치지 못했죠.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시장의 저울이 조금씩 후발 기업들에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2018년 기준 화웨이는 시장 점유율 14.7%를 기록하면서 애플(14.9%)의 턱밑까지 추격했습니다. 샤오미도 3년 새 점유율을 2배 가까이(8.7%) 끌어올리면서 빠르게 몸집을 불렸죠. 가성비를 앞세운 전략이 자국인 중국과 유럽 등지에서 통하면서 단기간에 인지도를 확보한 덕분이라는 게 업계의 공통된 분석입니다. 

급기야 지난해 1분기엔 화웨이(17.8%)가 애플(13.3%)을 점유율에서 앞지르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에 애플이 ‘아이폰SE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애플이 후발주자들의 성장을 꽤 의식했다고 볼 수 있겠죠.

이렇게 삼성전자와 애플은 프리미엄에서 가성비로 전략의 구심점을 옮겼습니다. 그 덕분인지 시장의 판도도 두 기업의 흐름으로 바뀌었습니다. 지난해 4분기 애플은 시장 점유율 23.4%를 차지하며 1위로 올라섰습니다. 삼성전자(19.1%)는 2위로 내려왔지만 올 1월 출시한 갤럭시S21의 판매량이 집계되면 순위는 곧 뒤바뀔 가능성이 높습니다.

중저가폰 득일까 독일까

반면 화웨이는 점유율 8.4%로 곤두박질쳤습니다. 화웨이가 맥을 못 추는 가장 큰 이유가 미국 정부로부터 보안 이슈로 판매 제재를 받았다는 점이긴 합니다만, 삼성전자와 애플이 적극 중저가 시장을 노렸다는 점도 무시하긴 어렵습니다. 보안 논란에서 자유로웠던 샤오미(11.2%)도 점유율이 2.0%포인트 하락했으니까요.

애플과 삼성전자, 두 기업은 빠르게 전략 노선을 갈아타 후발주자들의 추적을 따돌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이들 기업이 풀어야 할 숙제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프리미엄 이미지를 잘 쌓아왔던 두 기업에 ‘가성비’가 되레 독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삼성전자가 인도 시장에 한해서만 20만원대 스마트폰을 푼 것도 이와 무관하진 않을 겁니다. 가까스로 위기에서 벗어난 두 기업은 이제 어떻게 이 상황을 풀어나갈까요?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됩니다.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