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훈 사장 연임 의결한 채권단
하지만 새 임기는 1년에 불과해
배 사장 아직 신뢰하지 못했나

해운업체 HMM이 지난해 최고의 실적을 거두자 온갖 조명이 배재훈(68) 사장에게 쏠렸다. 10년 만에 흑자전환을 이뤄냈으니, 그럴 법도 했다. 때마침 연임이 거론됐고, 모두가 그의 다년 임기를 예견했다. 하지만 HMM 대주주 산업은행은 고작 ‘1년 임기’를 보장했다. 이를 두고 미디어에선 ‘HMM의 매각을 염두에 두고 있다’ ‘배 사장의 실적을 과소평가했다’고 꼬집었지만 다른 평가도 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그 다른 평가에도 펜을 집어넣었다. 

HMM 채권단이 지난 3월 26일 배재훈 사장의 임기를 1년 연장하기로 의결했다.[사진=뉴시스]
HMM 채권단이 지난 3월 26일 배재훈 사장의 임기를 1년 연장하기로 의결했다.[사진=뉴시스]

HMM에 2020년은 최고의 한해였다. 이 회사가 지난해 기록한 영업이익은 9808억원. 무려 10년 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사상 최대 영업이익이라는 겹경사를 맞았다. 해운시장이 깜짝 부활한 덕이 컸지만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동안 HMM이 새 배를 사들여 덩치를 키우고, 글로벌 해운동맹에 가입하는 등 경쟁력을 높이지 않았다면 누릴 수 없었던 수혜다. 위기의 순간에도 역전의 발판을 틈틈이 마련해온 덕분에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스포트라이트는 HMM의 키를 쥔 배재훈 사장에게 쏟아졌다. 숱한 미디어는 “2019년 초 위기에 빠진 HMM에 긴급 투입됐던 배 사장이 소방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고 평가했다. 8년간 이어온 적자의 고리를 2년여 만에 끊어냈으니 찬사가 쏟아질 만도 했다.

그런 배 사장에게 HMM 채권단이 내린 결정은 의외였다. 배 사장은 채권단의 재신임을 받는 데는 성공했지만, 추가 임기는 1년에 불과했다. ‘배재훈호號’가 올린 공적을 감안하면 예상 밖 결과였다. 실망스러운 성적표를 남겼던 유창근 전 HMM(당시 현대상선) 사장도 2018년 3월 연임할 땐 임기 3년을 보장받았으니, 배 사장의 ‘1년 임기’는 이슈를 불러일으켰다. 

그렇다면 HMM 채권단은 왜 배 사장의 임기를 1년밖에 보장하지 않았을까. 두가지 가능성이 있다. 먼저 “HMM의 매각 시나리오가 유력하기 때문에 짧은 임기를 받은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설득력이 없지 않다. 채권단으로선 지금이 흑자전환에 성공하며 기업가치가 훌쩍 오른 HMM을 매각할 절호의 타이밍임에 분명하다. 관리기업의 매각을 최우선 과제로 꼽는 이동걸 산은 회장이 HMM의 매각을 염두에 두고 있을 가능성도 높다. 해양수산부의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이 내년에 끝난다는 점을 HMM의 매각과 연관 짓는 시각도 있다. 

 

해운업계 한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HMM이 홀로서기에 성공한다면 해수부로서도 최상의 시나리오다. 배 사장의 임기가 1년에 불과한 건 채권단이 단기간 안에 HMM을 매각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산은 측에선 HMM 매각설을 강하게 부인했다. 산은 관계자는 “그동안의 경영성과를 높이 평가해 (배 사장의) 연임을 결정했다”면서 “경영목표 달성을 독려하고, 코로나19 국면임을 감안해 임기를 1년으로 정했을 뿐 매각 때문은 아니다”고 일축했다. 

이런 산은의 주장은 배 사장이 짧은 임기를 받은 또다른 가능성으로 연결된다. 그건 ‘신뢰의 문제’다. 채권단이 배 사장의 역량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았을 것이란 얘기다. 혹자는 “배 사장이 ‘흑자전환’과 ‘역대 최대 영업이익’ 달성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았는데 무슨 소리냐”고 되물을지 모른다. 누군가는 “언론이 호평한 덴 나름의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배 사장의 실적을 둘러싸곤 다른 의견도 있다. 업계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배 사장이 최고의 실적을 거둔 덴 두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HMM에 투입된 초대형 선박, 둘째는 해운시장의 호황이다. 다만 여기선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업계와 미디어는 ‘과감하게 초대형 선박을 투입해 경쟁력을 끌어올린 것’을 배 사장의 성과로 평가했지만 사실 그렇게 보긴 어렵다.” 

무슨 말일까. 이유를 설명해보자. HMM은 지난해 2만4000TEU급 컨테이너선 12척을 인도받아 규모의 경제를 실현했다. 치킨게임이 한창인 해운시장에서 글로벌 해운사들과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고 실적 개선을 이뤄낼 수 있었던 이유다. 글로벌 해운동맹 ‘디 얼라이언스’에 가입해 사업 시너지를 키울 수 있었던 것도 사실상 HMM이 초대형 선박을 갖춘 덕분이었다. 

하지만 HMM의 초대형 선박 투입 카드는 배 사장의 전략이 아니다. 2018년 추진된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실제 선박이 발주된 시기도 2018년 6월이다. 이때는 배 사장이 HMM의 수장으로 취임(2019년 3월)하기 전이다. 

익명을 원한 업계 관계자는 “HMM의 서비스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한 해운동맹 가입 역시 배 사장이 취임하기 전부터 물밑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면서 “배 사장이 바통을 이어받아 HMM이 준비해오고 있던 경쟁력 강화방안을 잘 마무리한 것은 맞지만 온전히 배 사장의 공적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꼬집었다. 

배 사장에게 운이 따른 측면도 있다. 코로나19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가 해운업계엔 되레 전화위복이 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상반기 코로나19로 위축됐던 소비가 하반기에 가파르게 늘면서 해운 수요와 운임이 치솟았는데, HMM의 실적 개선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이를 뒤집어 말하면 정상적인 상황에서 찾아온 호황이 아닌 만큼 언제 다시 위축될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HMM 채권단이 배 사장에게 1년의 임기를 부여한 것도 이런 부담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산은이 정말 HMM을 매각할 계획이 없다면 배 사장에겐 앞으로의 1년이 새로운 시험대가 될 공산이 크다. 올해 추가로 인도받는 1만6000TEU급 컨테이너선 8척을 어떻게 운용하고, 예측이 쉽지 않은 해운시장의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지에 따라 배 사장의 경영능력이 재평가를 받을 수 있어서다. 1년 뒤 배재훈호 HMM은 어떤 성적표를 받아들까.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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