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열 무릉도원-취중진담

➊Utopia-meditation, Acrylic on canvas, 116.8×91.0㎝, 2021-02 ➋Utopia-醉中, Acrylic on Fomex, 45.0×60.0㎝, 20 21-46 ➌Utopia-meditation, Acrylic on canvas, 116.8×91.0㎝, 2021-02 ➍Utopia-醉中, Acrylic on Fomex, 45.0×60.0㎝, 20 21-11 [사진=산촌 갤러리 제공]
➊Utopia-meditation, Acrylic on canvas, 116.8×91.0㎝, 2021-02 ➋Utopia-醉中, Acrylic on Fomex, 45.0×60.0㎝, 20 21-46 ➌Utopia-meditation, Acrylic on canvas, 116.8×91.0㎝, 2021-02 ➍Utopia-醉中, Acrylic on Fomex, 45.0×60.0㎝, 20 21-11 [사진=산촌 갤러리 제공]

아티스트 왕열은 풍경이 아니라 산수를 그린다. 풍경화와 산수화가 자연의 특정 부분이나 배경을 감각적으로 경험하면서 회화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건 동일하지만 대상을 바라보는 방식뿐만 아니라 대상을 구상하고 재현하는 방식은 상이하다.

회화에서 풍경은 자연의 부분이 하나의 대상으로 묘사되지만, 산수는 자연에 내포되고 스며든 가치나 관념이 대상으로 표현된다. 풍경과 산수는 감각적 주체와 대상과의 관계도 다르다. 풍경은 객관적 거리 속에서 구성되는 데 반해, 산수는 대상을 경험하면서 느꼈던 감흥과 생각이 자연의 형상으로 드러난다. 

이렇게 풍경이 주관과 객관이 분리되는 인식 체계에서 가능하다면, 산수는 주관과 객관이 미분리된 채로 융합돼 있는 인식 구조에서 성립한다. 따라서 풍경화가는 주체의 인식체계에 투영된 이미지가 투사되는 대상을 그림으로 그리고, 산수화가는 인식되는 자연적 대상을 인식하는 주체 그 자체를 대상으로 삼는 개념적인 그림을 그린다. 

왕열은 매우 온존한 산수화를 그린다. 그동안 그려왔던 수많은 ‘무릉도원’ 시리즈는 투사된 풍경에 대한 묘사가 아니라 아티스트가 스스로 자연 속에서 느끼고, 경험하며 이상화해 온 여망하는 세계를 그린 것이다. 이런 이상적 세계에 대한 열망이 산수화의 본령인 이상, 왕열은 매우 충실하면서도 전통적인 산수의 관념을 자기 그림 속에서 구현해 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그 산수를 구성해 내는 방식이 기존의 산수화 작법과 비교해 보면 극단적이라고 말할 정도로 파격적이었다. 우선 캔버스 위를 마치 연극에서 무대를 세우듯 배경을 빨강이나 파랑 같은 원색을 사용해 메워놓고 그 위에 하나하나 형상을 그려넣었다.

첩첩 겹치고 펼쳐지는 산과 계곡뿐만 아니라 말과 새도 색면의 배경 위에 놓이듯 그렸다. 마치 이런 형상들을 그리기 위해서, 혹은 그것들이 원색면 위에 놓여지기 위한 바탕처럼 여백이 처리된다. ‘무릉도원’에서 여백처럼 보이는 흰 공간도 입체적인 화면 구성을 위한 장치처럼 느껴질 정도다. 

아티스트는 산수화의 준법으로 지켜지던 안료의 스밈과 번짐이 들어설 여지를 처음부터 배제하고, 여백조차 뭔가 더 채워진 충만한 공간으로 만들어 버렸다. 누가 봐도 분명 산수화인데, 실제 화면의 구성은 필이 아닌 면으로 구성되고, 여백은 물체처럼, 바탕은 배경처럼 처리돼 마치 내용과 형식이 뒤집어진 산수화처럼 보인다.

무릉도원 시리즈와 확연하게 달라진 최근 작업, 특히 이번 산촌 갤러리에 전시되는 작품들은 뒤집힌 산수화를 다시 뒤집는 방식으로 그려진 것들이다. 색의 면 위에 형상을 채우기보단 붓의 스트로크나 제스처가 몹시 두드러져서 필이 면을 압도할 뿐만 아니라 필 그 자체가 오브제화하기에 이르렀다. 붓터치 자체가 더 이상 배경이 아니라 운필을 지향해 박력이 넘치고 아티스트의 기운이 생생하게 전달된다. 마음의 의지가 드러난다. 

그 기운으로 형상의 윤곽이 생성되고 드러나서 마치 9세기 당의 장언원이 ‘역대명화기’에서 평한 대로 ‘눈으로 반응하고 마음으로 이해해 감응된 정신이 이렇게 신체로 전달돼 붓이 움직여 이치가 구해진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왕열 무릉도원 시리즈 40여점이 산촌 갤러리 전관 1·2층에서 5월 12일까지 전시된다. 산촌 갤러리 개관 초대전이다. 이번 작품들의 특징은 글로벌 팬데믹 시대의 독백을 술병과의 교감으로 풀어냈다는 점이다.  

김웅기 미술비평가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