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끌 세대와 불안한 미래
뭘 해도 남는 건 결국 빚빚빚
위험성 생각해야 하는 영끌 투자

생활 속 지출을 조금만 줄여도 여유가 생긴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생활 속 지출을 조금만 줄여도 여유가 생긴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 “매일 카페라떼 한잔 값을 아끼면 기대 이상의 목돈을 마련할 수 있다.” 미국의 자산 전문가 데이비드 바흐(David Bach)는 이를 ‘카페라떼 효과(Latte factor)’라고 말했다. 하지만 누군가는 말한다. 그렇게 살면 현재를 마음껏 즐길 수 없다고. 

# 그렇지 않다. 바흐는 허리띠를 졸라매라고 얘기하는 게 아니다. 그가 아끼라고 하는 건 매일 마시는 커피 한잔, 별일 아닌 것처럼 이용하는 택시의 기본요금 정도다. 나도 모르게 줄줄 새는 지출을 잡는 것으로 카페라떼 효과는 시작한다는 얘기다. 

# 누가 그렇게 살까 싶지만 사례는 풍부하다. 서윤오씨는 월 통신비를 12만원에서 6만원으로 줄였다. 기껏해야 1~2GB가 더 필요해 요금제를 올렸는데 매번 90GB가 남아돌아 다시 요금제를 낮췄다. 그렇게만 했는데, 연 72만원을 줄이는 데 성공했다. 이수환씨는 외식(60만원→40만원)과 충동구매(120만원→60만원)를 통제해 연 960만원을 절약했다. 이것이 10년만 지나도 9600만원으로 불어난다.

# 이제 내 카드 내역을 살펴보자. 눈에 띄지 않았지만 줄줄 새는 지출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걸 하나둘 관리하다 보면 내가 기대하지 못했던 목돈이 만들어질 거다. 플렉스는 그다음에 외쳐도 늦지 않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부동산 또는 주식에 투자하는 건 많은 위험을 동반한다.[사진=뉴시스]
영혼까지 끌어모아 부동산 또는 주식에 투자하는 건 많은 위험을 동반한다.[사진=뉴시스]

누군가는 명품을 사서 SNS에 자랑하고, 누군가는 밥값까지 아껴가며 저축을 한다. 따지고 보면 새로울 게 없는 모습들이다. 이전 세대에서도 누군가는 수입차를 끌며 과시욕을 한껏 드러냈고, 누군가는 알뜰살뜰 모아 집을 장만했다. 하지만 지금 이런 청년세대의 모습이 눈에 더 들어오는 건 그만큼 우리 사회가 건강하지 못한 탓일 게다. 플렉스와 파이어가 공존하는 시대, 당신은 어디쯤 있나.

‘플렉스’ ‘영끌’ ‘파이어족’ ‘노머니데이’…. 2021년을 살아가고 있는 2030세대를 일컫는 말들이다. 이 말들이 모든 2030세대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번 사는 인생 즐겁게 소비하며 살겠다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 한푼이라도 저축하려는 이들이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플렉스(Flex)’는 1990년대 미국 힙합문화에서 유래한 용어다. 래퍼들이 부나 귀중품을 뽐내는 모습을 플렉스라고 했는데, 최근엔 10~20대를 중심으로 ‘과시하다’ ‘뽐내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인스타그램 등 개인 SNS 채널이 활발하게 사용되면서 이런 문화는 더 확산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극단적으로 소비를 줄여 소득의 70~80%를 저축하는 이들도 있다. 우리는 이들을 ‘파이어(Fire·Financial Inde pendence Retire Early)족族’이라고 부른다. 파이어족의 목표는 하나다. 조기 은퇴다. 일반적인 은퇴 시기인 50~60대까지 일하지 않고 40대에 은퇴하기 위해 모든 소비를 줄인다. 좁은 집에 살고, 중고차를 타며, 여행도 가지 않는다. 그렇게 알뜰살뜰 은퇴자금을 모은 뒤 40대에 은퇴하는 것이 이들의 목표다.

최근엔 ‘영끌’이 화제다. 영끌은 ‘영혼까지 끌어모은다’는 뜻인데, 이렇게 끌어모은 돈으로 주식에 투자하거나, 더 나아가 대출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부동산 가격 탓에 더 오르기 전에 지금이라도 사놔야 한다는 일종의 위기감이 형성된 결과다.

돈을 쓰고, 돈을 모으는 건 사실 자연스러운 경제활동이다. 곽금주 서울대(심리학) 교수는 “누구나 소비를 하고 저축을 할 수 있지만 지금의 젊은 세대는 이전 세대보다 ‘물질’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플렉스와 파이어족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청년세대는 왜 점점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걸까. 여기엔 ‘미래를 가늠하기 어렵다’는 공통분모가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청년세대가 처한 상황은 무엇 하나 만만한 게 없다. 

취업이 쉽지 않고, 취업한다 한들 빚으로 시작해야 한다. 지난 3월 기준 청년실업률은 10.0%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기업들이 신규 채용을 줄이고, 이에 따라 구직활동을 포기하는 청년들이 늘어난 결과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3월 기준 청년 일자리는 전년 동기 대비 14.8% 감소했다. 지난 2월(14.2%)보다 감소폭이 커졌다. 취업이 더 어려워졌다는 얘기다. 

취업을 한다 한들 기대만큼 소득이 오르는 것도 아니다. 더욱이 코로나19로 상황이 어려워진 기업 중 상당수는 연봉을 삭감 또는 동결하고 상여금을 줄인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지난 3월 직장인 105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연봉이 올랐다고 답한 이들은 62.8%였다. 나머지는 연봉이 줄거나 삭감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연봉이 오른 이들도 전년 대비 인상률이 줄었다. 지난해 2월 같은 조사에선 연봉이 평균 5.3% 인상됐다고 밝혔는데, 올해 조사에선 4.8% 올랐다고 답했다. 

쉽게 떼치지 못하는 빚도 청년세대에겐 부담이다. 한국장학재단에 따르면 지난해 7월 기준 학자금 대출을 받은 인원은 240만7733명, 학자금 대출 규모는 24조3382억원에 이른다. 강민경 열린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아르바이트도 쉽지 않은 탓에 등록금을 해결하기 위해 학자금 대출을 받는다”면서 “그 결과 7만5000여명의 젊은이들이 금융연체와 부실채무자라는 짐을 지고 사회생활을 시작한다”고 지적했다.

영혼까지 끌어모은 결과도 결국 빚이다. 자산관리앱 ‘뱅크샐러드’가 영끌족으로 주목받는 30대 220만명의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그들이 원리금으로 갚는 돈은 월 195만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엔 155만원이었는데, 25% 증가했다. 대출금리를 3%로 잡을 경우 1인당 갚아야 할 빚은 4억5000여만원이다.

현재를 즐기기 위해 아낌없는 소비를 하거나 미래를 위해 극단적으로 소비를 줄이는 것. 이중에서 어떤 선택은 맞고 그와 다른 선택은 틀리다고 함부로 단언할 수 없다. 현재에 충실할 수도, 현재 대신 미래를 내다볼 수도 있다.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선택이다.

문제가 있다면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게 그리 많지 않다는 데 있다. 하지만 하나 명심해야 할 게 있다. 비록 불투명하고, 불안정할지라도 그들에게 미래가 있다는 사실이다. 전문가들이 미래를 위한 고민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개인 미디어의 발달로 플렉스 문화가 확산하고 있다.[사진=뉴시스]
개인 미디어의 발달로 플렉스 문화가 확산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전성인 홍익대(경제학) 교수는 지금 자신이 택한 방법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청년들이 지금과 같은 현실에 놓인 건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 촘촘하지 못한 정책 탓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를 하는 청년을 탓해선 안 된다. 그들에게 미래를 생각해서 이래라저래라 하기엔 현실이 너무 답답하지 않은가.” 그러면서도 전 교수는 “영끌 투자를 하는 건 얼마 남지 않은 자산마저 파괴할 수 있는 우려가 있으니 그 위험성은 꼭 한번쯤 생각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경만 엉클조 아카데미 대표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내가 어떤 노력을 했을 때 평생 얼마를 벌 수 있는지, 그렇다면 그건 생애주기별로 어떻게 배분을 해야 하는지, 소비와 자산은 어떤 방법으로 계획할 것인지 등의 고민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청년세대들은 과연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지 되묻고 싶다.”


현실에서 플렉스하고, 미래를 위해 소비를 극단적으로 줄이는 것도 좋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내가 어떤 모습일지,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생각해봐야 한다. 그게 그리 어려운 접근도 아니다. ‘나도 모르게 새는 약간의 지출’을 통제하면 그만이다. 그 작은 지출을 통제한다고 플렉스를 못하는 것도 아니다. 플렉스와 파이어, 그 어디쯤 서있는 당신은 무얼 선택하겠는가.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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