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 대출 증가세의 함의
보험으로 돈 못 버는 보험사

보험을 팔아 수익을 내지 못하는 보험사가 선택할 수 있는 수익창출 창구는 무엇일까. 답은 간단하다. 자산을 매각하거나 대출 등을 통해 수익을 올리는 거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초저금리 국면이 길어지면서 채권 등 자산을 팔아도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없게 됐다. 보험사들이 최근 대출사업에 힘을 쏟고 있는 이유다. 당연히 보험사가 보험은 팔지 않고 대출로 손쉽게 돈을 벌려 한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보험사가 자산 운용 수익을 늘리기 위해 대출을 확대하고 있다.[사진=뉴시스]
보험사가 자산 운용 수익을 늘리기 위해 대출을 확대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좀처럼 부진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던 국내 보험사가 지난해 실적 반등에 성공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보험사의 당기순이익은 6조806억원으로 전년 동기(5조3378억원) 대비 13.9%(7428억원) 증가했다. 2019년 보험사의 당기순이익이 2009년(3조9963억원) 이후 최저 수준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부진에서 벗어난 셈이다.

실적 증가세 덕분에 국내 증시에 상장한 보험사의 주가도 상승세를 탔다. 삼성생명의 주가는 지난해 3만9400원(4월 13일)에서 지난 13일 7만6700원으로 94.6%(3만7300원) 상승했다. 같은 기간 한화생명의 주가도 1720원에서 3250원으로 88.9% 올랐다. 생보사만큼은 아니지만 손보사의 주가도 많이 올랐다. 메리츠화재(37.6%), DB손해보험(19.7%), 삼성화재(1.8%) 등의 주가가 상승세를 탔다.

그런데도 국내 보험사의 전망은 여전히 어둡다. 이는 보험사 실적의 내용이 신통치 않아서다. 사실 국내 보험사는 정작 보험 판매로 돈을 벌지 못하고 있다. 2013년 보험영업에서 낸 적자의 규모가 사상 처음으로 20조원을 넘어섰고, 지난해에도 27조7676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보험사라는 이름으로 사업을 펼치고 있지만 보험으론 수익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거다.

그렇다면 보험사들은 무엇으로 돈을 벌고 있을까. 답은 간단하다. 주로 보험료 적립금을 굴려 수익을 낸다(투자영업이익). 실제로 보험사들은 지난해 보험영업에서 발생한 26조7676억원의 적자를 30조9613억원의 투자영업이익으로 메웠다.[※참고: 보험업계는 보험영업이익이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이유를 과거에 판매한 고금리 보험과 정부의 보험료 인상억제정책에서 찾고 있다.]


그렇다고 투자영업이익의 성적표가 좋은 것도 아니다. 2019년 생보사와 손보사들이 금융자산(채권 등)을 매각해 만든 수익의 비중은 각각 62%, 87%에 이른다. 투자를 잘해서가 아니라 채권 등을 팔아서 많은 돈을 벌어들인 셈이다.

문제는 저금리 기조가 길어지면서 채권을 팔아 벌 수 있는 수익금도 줄고 있다는 점이다.[※참고: 이는 자산매각만의 문제는 아니다. 저금리 국면에선 이자수익도 줄 수밖에 없다. 지난해 보험사 투자수익의 주된 수익원인 이자수익은 2019년 26조1848억원에서 지난해 25조2665억원으로 9183억원 감소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보험사의 대출 규모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도 골칫거리다. 금감원이 발표한 ‘보험회사 대출채권 현황’에 따르면 2018년 239조5000억원이었던 보험사 대출 채권의 규모는 2019년 234조7000억원을 기록한 이후 지난해 253조원으로 56.3%(29조5000억원) 증가했다.

특히 지난 한해 대출 규모가 눈에 띄게 늘었다. 2018년에서 2019년까진 11조2000억원이 늘어났지만 2020년엔 18조3000억원 증가했다. 지난해 가계대출은 123조1000억원, 기업대출은 129조7000억원을 기록했다.


보험업계는 대출이 증가한 이유를 대출 규제에 따른 풍선효과와 투자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대체투자를 늘린 결과라고 밝혔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시중은행의 대출 규제가 강화하면서 돈을 빌리지 못하자 보험사 대출로 발길을 옮긴 차주借主가 많았다”며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대체투자를 확대한 것도 보험사의 대출이 늘어나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손쉬운 대출로 수익 챙겨

하지만 다른 의견도 나온다. 보험사가 쉽게 수익을 내기 위해 대출 비중을 끌어올렸다는 거다. 실제로 보험사 대출 중 담보가 필요한 주택담보대출과 중소기업 대출이 크게 증가했다. 두 대출은 지난해 각각 3조2000억원, 11조2000억원 늘어났는데, 보험사 전체 대출 증가금액 18조3000억원의 무려 78.6%를 차지했다.

조연행 금융소비자연맹 회장은 “보험사가 손쉬운 대출로 돈을 번다는 지적은 계속돼 왔다”며 “보험사들이 코로나19 국면에서 어려움을 겪자 자산 운용 능력을 높이기보다 당장 수익을 낼 수 있는 대출에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그는 “보험사 대출이 증가한 것은 은행 대출을 막은 풍선효과의 영향도 있겠지만 보험사가 적극적으로 대출에 나섰기 때문”이라며 “과거에도 고객 본인이 낸 보험료를 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약관대출을 활용해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돈을 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조 회장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지난해 생보업계 빅3(삼성생명·한화생명·교보생명) 보험사가 유가증권(국공채·회사채·특수채·주식) 투자를 통해 올린 수익률은 2~4%에 불과했다. 이중 두곳은 유가증권 중 주식투자 비중이 3%도 되지 않았다. 지난해 유례없는 주식투자 열풍이 불고, 코스피지수가 연초 대비 32.1% 상승할 정도로 활황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이해하기 쉽지 않다.

보험업계는 고객에게 지급해야 할 보험료를 이용해 투자에 나서야 하기 때문에 안정성을 따질 수밖에 없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이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숱하다. 국내 보험사가 위험투자를 꾀하는 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어서다.

일례로, 보험사들이 해외 대체 투자금 70조4000억원(지난해 3분기 기준) 중 고위험 부동산에 속하는 상업용 부동산에 투자한 금액은 34.2%(24조1000억원)에 이른다(금감원). 오죽하면 금융당국이 보험사의 해외 대체 투자를 더 강하게 관리·감독하겠다고 나섰을 정도로 부실 가능성이 높다.

보험사 대출 부실률 높아질 수도

김상봉 한성대(경제학) 교수는 “엄밀하게 따지면 보험사는 제2 금융권에 속한다”며 “제2 금융권의 대출 규모가 늘어나는 건 바람직하다고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은행에서 돈을 빌리지 못한 차주가 찾는 곳이 제2 금융권”이라며 “경기침체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시장금리까지 오르면 부실률이 높아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 때문에 시장에선 보험사의 자산 운용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병윤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저성장·저금리·고령화·디지털화 등 국내 보험시장의 구조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며 “저금리 기조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점에서 보험사의 투자 수익률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는 “전통적 자산보다는 새로운 투자를 확대하고, 자산 포트폴리오의 구조도 바꿔야 한다”며 “자산 운용 전문인력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 체계적 위험관리 시스템을 마련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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