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항공편 없이 일방적 취소
가격 올려 같은 항공권 재판매
쿼터제 10개월짼데 예측 못해
호주 정부와 협의 없이 운항했나

지난해 항공업계는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았다. 여행 수요가 확 줄어서다. 최근 백신 접종률이 높아지긴 했지만 해외 여행객은 여전히 귀하다. 그러자 항공업계는 가격 경쟁이 한창이다. 특별한 서비스로 무장한 항공사들도 숱하다. 하지만 이런 시장 분위기와 정반대로 ‘배짱 영업’을 하는 항공사도 있다. 스케줄을 멋대로 취소하고, 취소한 날짜에 항공편을 재편성하면서 가격은 두배로 올려서다. 바로 아시아나항공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아시아나항공의 배짱영업을 단독취재했다.  

항공업계가 줄어든 승객을 붙잡기 위해 가격 경쟁을 펼치고 있지만, 아시아나항공은 배짱 영업을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사진=뉴시스]
항공업계가 줄어든 승객을 붙잡기 위해 가격 경쟁을 펼치고 있지만, 아시아나항공은 배짱 영업을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사진=뉴시스]

한 승객이 지난 2월 예약한 ‘시드니행 7월 9일자 항공편’을 일방적으로 취소ㆍ환불하고, 똑같은 날짜의 항공편을 2배 높은 가격에 팔고 있는 항공사가 있다. 다름 아닌 아시아나항공이다. 호주 영주권자인 박호준(가명)씨는 올해 2월 5일 아시아나항공에서 판매하는 7월 9일자 시드니행 항공권을 예약ㆍ발권했다. 코로나19로 항공기 이용에 제약이 많아 일터가 있는 호주로 가기 위해 일찌감치 항공권을 예매했다.

때마침 아시아나항공은 매주 금요일(운항 스케줄 기준) 시드니행 항공편을 운항하고 있던 터라 예약ㆍ발권에 별문제가 없었다. 당시 예매 금액은 약 96만원. 한국과 호주를 자주 오가던 박씨는 마일리지로 이를 결제했다. 

그로부터 두달을 훌쩍 넘긴 올해 4월 29일 아시아나항공 측으로부터 이메일 한통이 날아왔다.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하계 스케줄 변경(비운항)으로 기존 항공편이 결항됐습니다. 예약ㆍ발권한 항공권은 취소해 드리고, 환불 조치하겠습니다….”

박씨는 코로나19 상황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아시아나항공 측이 기존 예매 승객을 위해 환불을 제외한 다른 대안을 내놓지 않은 게 아쉬웠지만 이 역시 그러려니 했다. 박씨는 “외국에서는 항공사 사정에 의해 결항되는 경우, 기존 예매 승객을 위한 대체 항공편을 마련해 주는 게 일반적이다”며 “아시아나항공의 조치가 아쉽긴 했지만 항공사마다 서비스 정책이 다르니까 이해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박씨는 그다음 날 황당한 일을 겪었다. 다른 항공편이 있는지 알아보는 과정에서 아시아나항공 운항 스케줄을 들여다봤는데, ‘결항됐다’던 7월 9일자 시드니행 항공권이 버젓이 판매되고 있었다. 항공기 종류도 같았다. 운항시간과 가격만 달랐는데, 이날 가격은 종전 판매가격보다 두배 넘게 오른 약 200만원이었다. 이 항공권은 마일리지 결제도 되지 않았다. 

아시아나항공은 호주 정부의 쿼터제에 따라 이미 지난해 7월부터 탑승인원을 제한해왔다. 사진은 시드니 공항.[사진=뉴시스]
아시아나항공은 호주 정부의 쿼터제에 따라 이미 지난해 7월부터 탑승인원을 제한해왔다. 사진은 시드니 공항.[사진=뉴시스]

박씨는 아시아나항공 측에 “기존에 예매했던 항공권을 환불조치하지 말고, 지금 판매되고 있는 항공편으로 대체해 줄 것”을 요구했다. 아시아나항공 측은 오른 가격으로 다시 결제를 해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아시아나항공 측이 이런 주장을 내놓는 근거가 뭘까.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현재 호주 정부는 코로나19로 인해 입국을 까다롭게 막고 있다. 그 일환으로 지난해 7월부터 탑승객 수를 제한하는 일종의 쿼터제를 실시하고 있다. 더구나 호주 정부는 늘 쿼터(탑승객 제한 수)를 출발 시점에 임박해서 알려줬다. 결국 그 기준에 맞춰 승객 수를 제한하다 보니 부득이하게 기존 항공편을 취소했다. 문제 될 게 없다.” 

호주 정부의 쿼터제에 따라 스케줄이 변동됐으니 아시아나항공에 귀책 사유가 없다는 거다. 모든 항공사가 준용하고 있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규정에 따르면 ‘천재지변과 같은 불가항력적인 이유’로 항공사가 운송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그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돼 있는데, 아시아나항공은 바로 그 면책을 주장한 셈이다. 

언뜻 그럴듯해 보이지만 아시아나항공의 주장엔 허점이 숱하다. 호주 정부가 ‘쿼터제’를 실시한 건 지난해 7월부터다. 박씨가 지난 2월 시드니행 항공편을 예약ㆍ발권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변수였다. 

이는 올 1월 국토부의 답변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참고: 박씨처럼 아시아나항공의 일방적 결항 통보에 피해를 입은 소비자들이 국토교통부에 항의하는 일이 꽤 많았다. 국토부는 한 소비자에게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아시아나항공에 따르면 호주 정부는 항공편마다 약 30석의 할당 좌석을 정해준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할당 좌석은 더 줄어들 수 있다.” 호주 정부의 쿼터제가 아시아나항공이 주장하는 것처럼 ‘불가항력적인 이유’가 아니란 얘기다. 

법리를 따져 봐도 호주 정부 측의 쿼터제를 ‘불가항력적인 것’이라고 주장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국내 최대 법률사무소인 김앤장은 지난해 3월 ‘코로나19 : 주요 법률 이슈에 대한 항공사의 의무와 책임’이라는 뉴스레터를 통해 ‘해상 운송계약’을 예로 들면서 이런 의견을 내놨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해당 국가의 제한적 조치가 운송계약을 이행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것이 되려면 ▲그 조치가 화물운송 당시엔 예견 불가능할 정도의 천재지변에 속하고 ▲손해발생의 예방조치가 불가능했음이 인정돼야 한다. 예상이 가능하고 적절한 조치를 통해 운송불이행 상황을 방지할 수 있었다면 ‘불가항력’을 주장하기는 어렵다.”

호주 쿼터제를 항공편 취소의 이유로 든 아시아나항공의 변명이 궁색하게 들리는 이유다.[※참고: ‘불가항력적’이란 아시아나항공의 주장과 달리, 외국 항공사들이 쿼터를 호주 정부로부터 일방적으로 할당받고 있는 건 아니다. 호주 외교부는 쿼터가 항공사의 요청과 협의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재외공관 등에 명시해 놨다.] 

더 심각한 문제는 지금부터다. 호주 쿼터제 탓에 항공편을 취소했다는 게 정당하더라도 ‘왜 가격이 두배인지’는 설명할 길이 없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납득할 수 없는 답을 늘어놨다. “당시(2월)엔 7월 9일자 항공편의 탑승 인원을 늘려 잡았기 때문이다. 항공권 가격이 다른 것도 탑승 인원이 줄어든 원인이 크다.” 

탑승 인원이 줄었기 때문에 항공권 가격이 두배가 됐다는 건데, 이는 박씨에게 ‘대체 항공편’을 주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더 구체적으로 꼬집으면, 승객이 줄어들었으니 더 비싼 값을 매겨 수지타산을 맞췄다는 거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이를 일부 인정했다. “항공권 가격을 결정하는 요인 중 ‘승객수’는 핵심 변수다. 승객수가 줄어서 가격을 높였다고 봐도 무방하다.” 

결국 아시아나항공이 어떤 근거로 탑승 인원을 두배가량 늘려 잡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로 인해 아시아나항공은 리스크가 있는 항공권을 판매했고,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소비자피해를 키웠다는 거다. 

더구나 아시아나항공은 기존 예약자에겐 피해를 줬지만, 자신들은 아무런 손해도 보지 않았다.[※참고: 아시아나항공 측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모든 국제선 항공편 승객들에게 홈페이지나 개인 SNS(예매 후)로 ‘코로나19 관련 결항과 스케줄 변동 가능성’을 공지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시아나항공 측은 특별한 방식의 쿼터제를 운영하는 호주의 상황을 별도로 공지하지 않았다.] 

박씨는 “경영이 악화된 아시아나항공 측이 항공권 스케줄에 맞춰 모든 일정을 짜놓은 소비자들이 별수 없이 2배의 가격으로 항공권을 구매할 수밖에 없도록 뒤통수를 치는 것 같다”면서 “마일리지를 현금처럼 인정해주지 않는 등 그동안 국내 항공사들의 갑질과 횡포는 다양했지만 이번 경우는 도를 지나친 것 같다”고 혀를 찼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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