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투기’ 피해자는 무기계약직
저연봉에 성과급도 깎일 듯
처우개선 요구에 귀 닫은 LH

“LH를 수술대에 올려야 한다.” 일부 LH 직원들의 신도시 땅투기 사건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면서 이런 얘기가 나온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해체 수준으로 LH를 바꾸겠다”는 말까지 입에 담았다. 국민적 공분도 심각한 수준이다. 하지만 LH 일부 직원이 저지른 일 때문에 애먼 피해를 봐야 하는 약자도 있다. LH의 무기계약직들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LH 무기계약직의 눈물을 취재했다. 

LH 땅투기 사건의 최대 피해자는 LH 무기계약직 노동자일지 모른다.[사진=연합뉴스]
LH 땅투기 사건의 최대 피해자는 LH 무기계약직 노동자일지 모른다.[사진=연합뉴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신도시 땅투기 사건이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 공분은 하늘을 찌른다. 사실상 나랏일을 하는 공기업, 그것도 토지와 주택을 다루는 LH 직원이 땅투기를 했으니 배신감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 그럼에도 LH 직원 일부는 자성은커녕 SNS를 통해 땅투기가 정당하다거나 국민 다수를 조롱하는 듯한 발언들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자 여론은 더욱 싸늘해졌다. LH의 조직문화, 고액 연봉 등을 꼬집는 보도가 줄을 잇고 있다. 일부에선 “LH를 해체하라”는 주장까지 나온다. 중요한 건 신도시 땅투기 사건 때문에 엉뚱하게 피해를 입고 있는 LH 직원들이 있다는 점이다.

“묵묵히 제 역할을 다해온 정직한 직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뻔한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우리가 조명하려는 이들은 좀 다른 부류다.사실 LH 내부에서 국민감정과 동떨어진 목소리만 나오는 건 아니다. “일부의 일탈일 뿐인데 왜 이렇게 소란인지 모르겠다”는 직원들이 있는 반면, 땅투기 문제를 강하게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LH 사내 게시판에는 땅투기 사건이 불거진 후 “사건에 연루된 이들을 엄중하게 처벌해야 한다” “공사 이미지를 실추시킨 (직원들에게) 민형사상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번 사건은 빙산의 일각이며, 썩은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닌 만큼 시스템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등 내부 혁신을 위해 목소리를 함께 낼 것을 호소하는 글들도 많다. 

LH는 2018년부터 비정규직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했지만 처우는 개선하지 않았다.[사진=연합뉴스]
LH는 2018년부터 비정규직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했지만 처우는 개선하지 않았다.[사진=연합뉴스]

이런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건 곪아서 터지기 직전인 내부갈등과 무관하지 않다. 이 말을 이해하려면 설명이 좀 필요하다. LH에는 일반정규직 7116명, 무기계약직 2201명, 단시간 무기계약직 148명이 근무하고 있다. 명목상으론 모두 ‘정규직 노동자’다. 2017년 문재인 정부가 “공공기관과 공기업의 비정규직 문제를 해소하겠다”면서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조치했는데, 그때 정규직으로 전환된 이들이 무기계약직 2000여명(이후 가감)이다.

하지만 무기계약직의 처우는 비정규직일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2019년 기준 일반정규직의 평균 연봉은 8101만원(남 8630만원ㆍ여 6075만원)이다. 반면 무기계약직의 평균 연봉은 3099만원(남 3422만원ㆍ여 2924만원)이다. 일반정규직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특히 무기계약직 가운데 외부 현장에서 근무하는 이들은 외근수당처럼 분류되는 ‘체제비’라는 걸 받는다. 하지만 현장에 나가지 않는 업무직 노동자들은 이런 체제비도 제공되지 않는다. 그래서 급여는 평균치에 훨씬 못 미친다.

‘땅투기’ 피해자는 무기계약직

예를 들어보자. 더스쿠프(The SCOOP)가 입수한 주거복지본부 업무직 노동자의 급여명세서에 따르면 체제비를 제공받지 않는 이들의 월 실수령액은 약 170만원이다. 2021년 최저임금(8720원)을 월급으로 환산하면 약 182만원(주 40시간 근무 기준ㆍ주휴 수당 포함)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최저임금보다도 못한 급여를 받고 있는 셈이다. 

더구나 이들은 호봉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10년차든 1년차든 급여가 똑같다. 지난 1월 LH 사내 게시판에 10년차 업무직 노동자가 “10년 근속해서 170만원을 받고 있는데 내 자신이 한심하고 눈물이 난다”면서 “죽고 싶다”는 글을 올린 바 있는데, 괜한 푸념이 아니라는 얘기다.

LH 업무직 노동자 A씨는 “이번 땅투기 사건 이후 언론에서는 ‘LH 직원들의 고액 연봉’을 얘기하는데, 최저임금조차 못 받는 입장에선 억울하기 짝이 없다”면서 “내부 정보를 활용하는 건 일반정규직, 특히 고위직일 텐데, 우리까지 싸잡아 비난받게 만든 LH에 화가 난다”고 말했다. 그는 “고위직들이 한직閑職을 맡아 근무시간만 채우며 임금을 받는 등 불합리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닌데, 이런 걸 늘 지적해도 LH는 바뀌지 않았다”면서 “이번 땅투기 사건은 그런 도덕적 해이 중 일부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더 중요한 건 이번 땅투기 사건이 LH 무기계약직의 성과급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다. 공기업은 정부로부터 경영평가를 받고, 경영평가 성적에 따라 성과급이 달라진다. 땅투기 사건으로 물의를 빚은 LH의 경영평가 성적이 좋을 리 없다. 성과급도 줄어든다.

고액 연봉을 받는 이들에게 성과급은 그저 보너스의 개념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최저임금보다 못한 연봉을 받는 이들에게 성과급은 없어서는 안 되는 돈이다. 그러니 LH 무기계약직 노동자들로선 직원 관리를 제대로 못한 LH를 향해 불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참고 : 성과급이 기본급에 비례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무기계약직의 성과급은 일반정규직보다 훨씬 낮다.] 

쉽게 말해, ‘일반정규직과 무기계약직의 차별 대우→무기계약직 불만 축적→땅투기 사건→경영평가 악화 예상→성과급 감소→더 열악해진 무기계약직 처우’로 귀결되는 셈이다. 신도시 땅투기 사건으로 LH 무기계약직 노동자가 애먼 피해를 보고 있다는 얘기다.

불만에 귀 닫는 LH

LH가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하지만 LH는 이런 목소리를 귀담아듣지 않는다. 오히려 비판 여론이 나오자 LH 임원들이 내부 단속에 나서고 있다. 한 지역본부 본부장은 땅투기 사건이 불거진 후 “LH 직원으로서 품위와 위신을 잃지 않도록 말과 글, 행동을 겸허히 해주기 바란다”는 내용의 공문을 직원들에게 보내기도 했다.

LH 내부 관계자는 “일부 직원들이 SNS에 막말을 올린 것을 두고 자중을 부탁한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실제 분위기는 이번 땅투기 사건으로 인해 또다른 불합리한 일들이 수면 위로 올라올까 미리 내부의 입을 단속하려는 것”이라면서 “성실하게 일해 온 직원들이 피해자가 된 마당에 직원들에게 죄송하다고 말하지는 못할망정 되레 단속만 하고 있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고 비판했다.

한 LH 무기계약직 직원은 “잔치는 자기들이 벌이고, 책임은 함께 지자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면서 “LH 정규직은 우리의 눈물 따위엔 관심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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