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슈퍼 매출 감소율 2%와 착시 효과

2020년 서울시 동네슈퍼의 평균 매출액은 3억2440만원이었다. 코로나19가 터지기 전인 2019년(3억3111만원)과 비교하면 고작 2.0% 감소했다. 몇몇 사람들이 “못 살겠다며 볼멘소리를 늘어놓는 동네슈퍼도 코로나19로 인한 슬세권의 혜택을 받았다”고 지적하는 이유다. 하지만 매출 감소율 2.0%엔 ‘착시 효과’가 숨어 있다. 동네슈퍼는 편의점이 톡톡히 누린 슬세권의 혜택을 전혀 보지 못했다. 

코로나19 사태로 근거리 쇼핑이 증가하면서 동네슈퍼도 혜택을 받았다는 목소리가 나오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사진=연합뉴스]
코로나19 사태로 근거리 쇼핑이 증가하면서 동네슈퍼도 혜택을 받았다는 목소리가 나오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사진=연합뉴스]

코로나19라는 복병이 터진 지 어느새 1년5개월여가 지났다. 예기치 못했던 코로나19는 모든 걸 바꿔놨다. 그중 하나가 소비 패턴이다. 관광객이 주로 찾던 주요 상권은 초토화됐고, 사회적 거리두기의 장기화로 자영업자 폐업이 속출했다. 

반면 수혜를 누린 곳도 있는데, 그건 ‘슬세권(슬리퍼와 세권의 합성어로, 편한 복장으로 여가ㆍ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주거권역)’이다. 슬세권의 대표 격인 편의점은 코로나19의 반사이익을 톡톡히 누렸다. 지난해 편의점 3사(GS25ㆍCU ㆍ세븐일레븐)의 매출액은 전년 대비 2.4% 증가했다. 외식이 줄고 밥 해먹는 수요가 늘면서 식품을 위주로 판매하는 대형마트도 선방했다. 이마트의 경우, 지난해 매출액(할인점 부문 기준)이 11조2281억원으로 전년(11조394억원) 대비 1.7% 늘었다. 

그렇다면 식품을 위주로 판매하고, 슬세권의 일원이기도 한 ‘동네슈퍼’는 어땠을까. 서울 동작구ㆍ영등포구에서 10년 이상 동네슈퍼를 운영해온 상인 3인은 “코로나19 수혜 따윈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볼멘소리가 아니다. 지난해 서울에선 하루 1.5개꼴로 동네슈퍼가 사라졌다. 서울시가 제공하는 ‘우리마을가게 상권서비스’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19년 1만7085개였던 동네슈퍼는 지난해 1만6534개로 551개 줄었다. 

영등포구에서 115㎡(약 35평) 규모의 동네슈퍼를 15년간 운영해온 김인석(가명 ㆍ58)씨도 5월을 끝으로 폐업을 결정했다. 새벽잠을 줄이며 해온 슈퍼일이 고되기도 했지만 수년째 줄어들던 매출액이 코로나19를 기점으로 고꾸라진 게 폐업을 부채질했다. 그는 “코로나19 사태 이전과 비교하면 매출액이 20~30% 줄었다”면서 “인건비를 줄이려 심야영업을 중단하니 매출 감소폭이 더 커지는 악순환이 시작됐다”고 토로했다. 

김씨의 사례처럼 동네슈퍼가 폐업으로 내몰리는 건 매출 감소 탓이 크다. 지난해 서울시 동네슈퍼의 평균 연 매출액은 3억2440만원으로 전년(3억3111만원) 대비 2.0% 감소했다. 같은 슬세권이지만 편의점과 동네슈퍼가 누린 효과는 달랐던 셈이다.

동작구에서 14년째 동네슈퍼를 운영해온 오영자(가명ㆍ75)씨는 “사람들이 동네에서 소비를 많이 한다지만 동네슈퍼엔 와닿지 않는 얘기”라면서 말을 이었다. “젊은 사람들은 편의점을 선호한다. 나이 든 사람들이나 동네슈퍼를 찾아주지만 경기가 안 좋으니 그마저 씀씀이를 줄이는 것 아니겠나.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가 걱정이다.” 

문제는 매출 감소율 2.0%에 ‘착시 효과’가 숨어있다는 점이다. 서울시가 제공하는 통계에는 165㎡ 이하 소규모 동네슈퍼뿐만 아니라 중형 종합 할인점 등도 포함돼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소규모 동네슈퍼가 입은 타격이 집계된 통계치보다 컸을 가능성이 높다.

‘착시 효과’는 또 있다. 2018년 대비 2019년 매출이 21.1% 줄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2020년 매출 감소율(전년 대비) 2.0%는 폭이 훨씬 작다. 이는 2020년에 지급된 재난지원금이 매출 감소폭을 줄여주는 역할을 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영등포구의 한 골목에서 10년째 동네슈퍼를 운영해온 김형선(가명ㆍ61)씨는 “코로나19 재난지원금을 골목상권에서만 사용하도록 한 게 그나마 효과가 있었다고 본다”면서 “하지만 그마저도 일시적이었을 뿐 올해를 어떻게 견딜지가 걱정”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서울 시내 동네슈퍼가 511개(전년 대비) 감소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지난해 서울 시내 동네슈퍼가 511개(전년 대비) 감소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골목상권이 위태로운 이유는 또 있다. 코로나19를 기점으로 기존의 대형마트·편의점뿐만 아니라 배달앱들의 골목상권 침투가 본격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 사례가 음식 배달앱 업체들의 문어발식 사업 확장이다. 배달앱 1~2위 업체인 ‘배달의민족(우아한형제들)’과 ‘요기요(딜리버리히어로)’는 식료품·공산품 등을 이륜차로 1시간 이내에 배달해주는 ‘B마트’ ‘요마트’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 B마트의 경우, 2019년 론칭 이후 배달 가능 지역을 서울 일부에서 경기도 권역으로 확대했다. 문제는 ‘초소량 번쩍 배달’을 앞세운 B마트의 판매 품목이 동네슈퍼와 겹친다는 점이다. 

배달앱만이 아니다. 쿠팡, SSG닷컴 등 온라인 플랫폼 업체들도 지역 거점 물류센터를 확충하면서 ‘빠른 배달’을 앞세워 골목상권을 파고들고 있다. ‘과자 한봉지’부터 ‘비누 한개’까지 무료로 ‘로켓배송’을 해주는 쿠팡이 대표적이다.[※참고: 쿠팡은 월 2900원 회비를 납입하면 금액에 상관없이 무료로 익일(새벽) 배송해주는 로켓와우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단, 쿠팡이 직매입한 로켓배송 상품에 한한다.] 

누군가는 “편의점에 가면 되지, 다 사라진 동네슈퍼가 꼭 살아남아야 하느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세혈관처럼 퍼져 있는 전국의 동네슈퍼는 여전히 4만8469개(통계청ㆍ2019년 기준)에 달한다. 4만8000여개라는 편의점 수와 별반 차이가 없다. 거기엔 누군가의 생계와 일거리가 달려 있다.

오세조 연세대(경영학)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시대가 변화하면서 동네슈퍼의 역할이 축소된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유통시장의 한축을 담당하고 있다. 더욱이 동네슈퍼에 생존과 생계가 달린 이들이 적지 않다는 점, 유통시장에 다양한 플레이어가 경쟁해야 시장이 건강하다는 점 등은 동네슈퍼가 살아남아야 할 이유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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