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대 LINC+사업단 공동기획
시소팀의 유휴공간 재생 프로젝트
방치된 다리 밑을 주민 공간으로

고가다리 밑 아무도 찾지 않는 공간. 마구잡이로 버려진 쓰레기와 불법 주정차된 차들만이 빈 공간을 채우고 있다. 도시 곳곳에 이런 유휴공간이 방치돼 있지만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는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고 했던가. 되레 낙후된 유휴공간은 지역 주민들의 이탈현상을 부추긴다. 하지만 유휴공간에 잠재된 가능성을 엿본 이들도 있다. 가톨릭대 ‘지역혁신 캡스톤디자인 : 도시재생’ 수업에서 ‘시소팀’으로 뭉친 세 학생이었다. 그들은 “회색 공간에 색을 입히겠다”며 소매를 걷어붙였다.
 

부천시 역곡동에 있는 성심 고가 하부는 주민 안전을 위협하는 우범지역으로 전락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부천시 역곡동에 있는 성심 고가 하부는 주민 안전을 위협하는 우범지역으로 전락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유휴遊休 공간. 직역하면 ‘쓰지 않고 놀리는 공간’이란 뜻이다. 하지만 그 말 안에는 두가지 상반된 함의含意가 담겨 있다. ‘버려진 공간’이란 뜻과 ‘무한한 가능성이 열린 공간’이란 의미다. 지금은 비록 사람의 발길이 끊겨 방치돼 있지만 어떻게 손보느냐에 따라 팔색조 변신이 가능하다는 거다. 

화려한 도시의 이면으로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이런 유휴공간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문제는 대부분의 유휴공간이 버려진 공간으로만 인식되고 있다는 점이다. 방치된 유휴공간이 지역 환경을 훼손하고 주민 안전을 위협하는 우범지대로 전락하는 등 각종 사회 문제를 야기하고 있음에도 누구 하나 나서는 이가 없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가톨릭대 구한희ㆍ정희재ㆍ조예신 학생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유휴공간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봤다. 유휴공간을 잘 활용하면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동시에 지역 커뮤니티 활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난해 9월 가톨릭대 ‘지역혁신 캡스톤디자인 : 도시재생’ 수업에서 ‘시소(seesaw)팀’으로 뭉친 세 학생은 어렴풋한 아이디어를 구체적인 솔루션으로 만들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시소팀이 주목한 곳은 학교 인근에 있는 성심 고가 하부였다. 성심 고가는 부천시 역곡2동과 역곡3동에 걸쳐 있는 206m 길이의 고가 다리다. 교통 편의를 위해 만든 이 다리의 하부 공간은 오랜 시간 방치돼 숱한 문제를 낳고 있었다. 마구잡이로 버려진 쓰레기가 도시경관을 해쳤고, 군데군데 고장 난 가로등이 어두컴컴한 골목을 더 음침하게 만들었다. 청소년들의 탈선 장소로도 안성맞춤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문제는 불법으로 주정차된 차들이었다. 구한희 학생의 설명을 들어보자. “방치된 성심 고가 하부는 주로 주차 공간으로 쓰이고 있어요. 문제는 차도와 인도의 경계가 모호해 주차하는 차들이 줄곧 인도를 침범한다는 점이에요. 바로 옆에 유치원도 있고,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주민도 많아 위험천만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에요. 주차 문제를 해결하는 게 급선무였어요.” 

 

시소팀은 부천시가 2019년 여월동에서 시행했던 ‘원도심 노후주택지역 재생사업’에서 해법을 찾았다. 당시 부천시는 신축건물 지하2층에 공영주차장을 조성해 주차문제를 해결했다. ‘토지 이용 효용성 증대ㆍ주차 문제 해소ㆍ주민협의회 수익 창출’이라는 3가지 토끼를 한번에 잡을 수 있는 묘안이었다. 

때마침 성심 고가 인근에도 신축 아파트가 들어설 계획이었다. 신축 아파트의 지하층을 공영주차장으로 활용할 수 있다면 불법 주정차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셈이었다. 이와 함께 주변 노면 주차장에 주차타워를 세우는 방법도 제시했다. 

이제 남은 문제는 성심 고가 하부 공간을 어떻게 변신시킬 것이냐는 점이었다. 시소팀이 가장 중요하게 여긴 건 한가지였다. ‘소외되는 이웃 없이 모두를 위한 공간’이어야 할 것. 아이부터 청년, 노인까지 모두가 만족할 수 있길 바랐다. 그래서 시소팀은 직접 주민들을 찾아 나섰다. 설문조사 패널을 들고 학생들과 주민들을 쫓아다녔고, 온라인 지역 커뮤니티에서도 의견을 구했다.

주민들이 원하는 건 특별한 게 아니었다. ‘운동 기구 및 공원(주민 34.0%ㆍ학생 22.0%)’ ‘문화 예술 공간(주민 16.7%ㆍ학생 31.3%)’ ‘편의 및 휴식시설(주민 26.3%ㆍ학생 22.0%)’ ‘자전거 보관함(주민 23.0%ㆍ학생 12.5%)’ 등 소소한 여가ㆍ휴식 공간이었다. 

시소팀은 설문조사 결과에 자신들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녹였다. 그렇게 성심 고가 하부에 새 생명을 불어넣어줄 밑그림이 완성됐다. 테마는 ▲액티비티(성심 VR 체육센터) ▲문화예술(성심 문화예술 공간ㆍ도서관) ▲공유 오피스(메이커 스페이스) ▲친환경 및 주민편의(자전거 보관함ㆍ휴식공간) 등 4가지다.

 

액티비티는 주민들의 건강관리를 돕고 활력을 높여줄 운동 공간이다. 단순한 운동시설이 아니다.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디지털 정보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가상현실(VR)ㆍ증강현실(AR) 기술을 활용한 운동시설을 구상했다. 

문화예술 공간은 주민과 학생, 지역 예술가의 놀이터다. 가톨릭대 방송부와 대학생 연합 사진동아리로부터 ‘역큐멘터리(역곡 상인의 삶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상영회’ ‘역곡 사진전’을 개최할 의향이 있다는 대답을 받았다. 성심 고가 하부 옆에 있는 유치원 아이들의 그림으로 하부 공간 벽을 장식하는 연계 프로그램도 준비했다. 

공유 오피스는 청년들을 위한 창업 공간ㆍ스터디룸ㆍ메이커 스페이스로 사용할 방침을 세웠고, 친환경 및 편의 공간은 간단한 산책로와 자전거 보관함, 벤치 등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시소팀은 성심 하부 공간의 바뀐 모습을 담은 렌더링을 역곡동 주민들에게 보여줬다. 반응은 좋았다. “주차장으로 쓰이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피드백이 돌아왔다. 특히 문화예술 공간을 마음에 들어 하는 주민도 있었다. 

시소팀의 아이디어가 성심 고가 하부를 실제로 바꿔놓을진 알 수 없다. 다만, 언젠가 성심 고가 하부에 변화가 생긴다면 ‘또다시 버림받지 않도록 모두를 위한 장소’가 됐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다. 시소팀의 아이디어가 더 많은 유휴공간을 주민들의 공간으로 바꿔놓을 수 있을까.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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