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 통합항공사 엇갈리는 시각 ❶
대한항공·아시아나 M&A ‘조건부 승인’
공정위, 향후 10년 운임 인상 제한 조치
“운임 자유 없다… 과한 규제” 사실일까

지난 2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기업결합을 조건부 승인했습니다. 그동안 통합항공사의 독과점 여부를 두고 논란이 숱했던 만큼, 공정위의 조치를 바라보는 시각도 엇갈리고 있는데요. 그래서 더스쿠프(The SCOOP)는 통합항공사를 둘러싼 논쟁적 사실들의 진위를 확인해보기로 했습니다. 팩트체크 ‘통합항공사’ 편은 총 2편의 시리즈로 이뤄집니다. 오늘은 그 첫번째 편입니다.

지난 2월 공정거래위원회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기업결합을 조건부 승인했다.[사진=연합뉴스]
지난 2월 공정거래위원회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기업결합을 조건부 승인했다.[사진=연합뉴스]

지난 2월 22일 공정거래위원회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을 조건부 승인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공정위는 두 회사의 인수 · 합병(M&A)을 허락하는 대신 두가지 조치를 내렸는데요. 

첫번째는 두 회사의 중복노선 87개(여객운송 한정) 중 시장경쟁을 제한할 것으로 판단하는 40개 노선(국제선 26개 · 국내선 14개)에 한해 향후 10년간 ▲운임 인상 ▲공급량 축소 ▲서비스 축소를 제한한다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이 40개 노선 중 34개 노선의 운수권 또는 슬롯(SLOT)을 회수한 뒤 다른 항공사에 재분배한다는 내용인데요.[※참고: 국내선 14개 노선 중 제주~진주 · 여수 · 울산 왕복 노선은 통합항공사가 100% 독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수요가 부족한 탓에 수익성이 없다시피 한 벽지僻地 노선이어서 운수권 · 슬롯 반납 조치에서는 제외됐습니다.]

여기서 운수권은 정해진 노선을 운항할 수 있는 권리를, 슬롯은 항공사가 배정받는 이 · 착륙 시간 및 (해당 시간에) 공항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합니다. 소비자들의 수요와 선호도가 높은 노선 · 슬롯을 많이 보유할수록 항공사는 더 큰 이익을 낼 수 있습니다. 그만큼 해당 항공사를 이용하려는 손님들이 많을 테니까요. 따라서 운수권과 슬롯은 항공사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재산이나 다름없습니다. 

이 때문인지 공정위의 심사 결과를 두고 다양한 목소리가 나옵니다. “항공운임을 마음대로 올릴 수도 없는데, 공정위가 과한 제재를 했다”는 비판과 “결국 외국항공사에 운수권만 빼앗기는 격”이란 우려가 공존하고 있는 겁니다. 

자, 그렇다면 누구의 말이 사실일까요. 만약 시장을 독점한다면, 항공사가 마음대로 티켓 가격을 올리는 일이 가능할까요? 이번 공정위 조치로 통합항공사는 외국항공사에 운수권을 빼앗기게 되는 걸까요? 지금부터 첫번째 팩트체크를 시작해보겠습니다. 

“통합항공사는 독점 노선의 가격을 마음대로 올릴 수 있을까요?” 답은 ‘사실’입니다. 그 배경에는 모호한 규정이 있습니다. 공정위가 향후 10년간 통합항공사의 운임 인상을 제한하겠다는 입장을 견지한 이유도 여기에 있죠.

항공법 제117조(운임 및 요금의 인가 등)에 따르면 국제선 운임은 항공사가 해외 당국과의 항공협정을 통해 가격을 확정한 후 국토교통부 장관의 인가를 받거나 신고를 해야 합니다. 

반면 국내선 운임은 자율적 예고제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항공사가 티켓 가격을 올리든 내리든, 운임을 조정하기 20일 전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에 미리 알리기만 하면 됩니다. 이때 항공사들은 노선별로 정해진 가격 상한선을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운임을 책정할 수 있습니다. 

적정 운임 판단 기준 없어

물론 정부가 나서긴 합니다. 해당 노선을 보유한 항공사가 가격 상한선과 운임 인상률을 책정해 국토부에 인가를 요청해야 하기 때문입니다.[※참고: 이렇게 공식적으로 정해진 상한선을 ‘공시운임’이라고 합니다. 각 항공사는 운항거리, 유류할증료(기름값), 계절적 요인(성수기 · 비수기), 좌석등급, 탑승률, 노선점유율, 경쟁사의 요금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노선별 가격 상한선 아래에서 운임을 산출합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입니다. 국토부가 항공사에서 제시한 상한선과 운임 인상률을 적정하다고 판단하는 기준이 모호합니다. 항공법 제45조 1항에 명시된 항공운임 · 요금의 인가 기준을 살펴보면 ▲해당 사업의 적정한 경비 및 이윤을 포함한 범위를 초과하지 않을 것 ▲의뢰인(소비자)을 비합리적으로 차별하지 않을 것 ▲의뢰인(소비자)이 해당 사업을 이용하는 것을 매우 곤란하게 하지 않을 것 등이 있습니다. 

국내 양대 대형항공사의 통합으로 항공편 가격을 인상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국내 양대 대형항공사의 통합으로 항공편 가격을 인상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그런데, 언뜻 봐도 항공사의 ‘적정한 경비 및 이윤’이 합당한지 판단할 수 있는 근거도, ‘비합리적인 차별’의 기준도 없습니다. 항공법에 명시된 규정만으론 소비자를 ‘매우 곤란하게 하는’ 수준의 운임이 어느 정도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국토부가 항공사의 운임을 직접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조항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국토부 관계자 역시 “현재로선 항공사들의 운임 인상을 제한할 수 있는 규정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종합하면 항공사들이 티켓 가격을 올리든 내리든, 사실상 별다른 제재 없이 운임을 조정할 수 있는 구조인 셈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이용하려는 소비자가 많은 인기 노선을 하나의 항공사가 독점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독점 노선 문제는 가격결정력 

한때 ‘독점 노선’의 상징이었던 몽골 노선의 사례를 보겠습니다. 대한항공은 1996년 4월 서울~몽골 울란바토르 노선에 단독 취항한 이후 20년 넘게 이 노선을 독점했습니다. 그러면서 최대 100만원(성수기 기준)에 육박하는 티켓 가격을 유지했는데요. 

상황이 달라진 건 2019년 1월부터입니다. 당시 우리나라 정부는 몽골 노선의 독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몽골에 항공회담을 요청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1국1항공사 운항 체제가 1국2항공사로 바뀌면서, 각국 항공사에 추가 운수권이 부여됐습니다. 그 결과, 2019년 7월 아시아나항공이 몽골 노선에 취항하게 됩니다. 

흥미롭게도 아시아나항공이 몽골 노선의 운임을 80만원대(2019년 7~8월 성수기 · 86만6600원)로 책정하자, 대한항공도 같은 기간 운임을 90만원대(95만1800원)로 낮췄습니다. 23년 동안 고공행진을 거듭했던 몽골행 티켓의 가격이 경쟁자가 등장하자마자 하락했던 겁니다. 

과거 몽골 노선의 독점 행태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명확합니다. 항공사가 티켓을 비싸게 판매해도, 다른 대안이 없다면 소비자들은 어쩔 수 없이 높은 가격을 부담해야 한다는 거죠.

더욱이 지금처럼 항공사가 운임을 자율적으로 책정할 수 있는 환경에선 통합항공사의 독과점으로 인한 부작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공정위가 통합항공사의 운임 조정에 제약을 두려는 건 ‘과한 규제’가 아닙니다.

윤정희 더스쿠프 기자
heartbri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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