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왜 효과 없나

자! 쉽게 접근해보자. 대표든 팀장이든 상사든 아님 주주의 친척이든, 힘 있는 누군가가 평범한 직장인인 날 괴롭혔다고 치자. 그 신고를 회사, 그것도 회사의 인사 담당자에게 해야 한다면 실효성이 있을까. 이는 애먼 누명을 쓰고 가해자로 몰린 사람도 마찬가지다. 내부 파벌에 의해, 또는 개인적 감정에 의해 회사에 신고됐다면 그 억울함을 해소할 수 있을까. 

2019년 7월 제정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근로기준법 개정안)’이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근본적 결함이 있으니, ‘사각지대’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거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더스쿠프(The SCOOP)가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의 목소리를 듣는 전문가 2명(노윤호 법률사무소 사월 변호사·오진호 직장갑질 119 집행위원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법안의 문제점과 개선점을 짚었다.

 

직장 내 괴롭힘은 금지법이 마련된 후에도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직장 내 괴롭힘은 금지법이 마련된 후에도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2019년 7월 16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시행됐다. 직장 내 괴롭힘은 위계질서로 발생하는 엄연한 ‘갑질’임에도 개인 간의 문제로 치부될 때가 많았다. 그러다 최초로 법률에 직장 내 괴롭힘이 명시되면서 피해자가 법적 보호를 받을 길이 열렸다. 물론 이 법은 반쪽짜리란 소리를 들을 만큼 보완할 부분이 많긴 했지만, 그래도 ‘직장 내 괴롭힘이 줄어들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을 키웠다. 

하지만 최근 설문조사 결과는 작은 기대감마저 무너뜨렸다. 구인구직 플랫폼 사람인이 지난 5월 직장인 1277명에게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으로 변화를 체감하냐’고 물어본 결과, 무려 77.8%가 ‘체감하지 못 한다’고 답했다. 법안 시행 후 2년 가까이 지났지만 현장에선 변화를 느끼지 못했다는 얘기다. 

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한 직장인도 절반(50.1%)에 달했다. 여론조사기관 엠브레인퍼플릭이 실시한 또다른 조사에서도 직장인 1000명 중 67.5%가 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었다고 답했다. 무엇보다 10명 중 3명(31.9%)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 중인 것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설문조사에서만 나타난 현상이 아니다.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피해자의 호소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이어지고 있다. 갑질·괴롭힘을 당하는 직장인을 돕는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가 운영하는 채팅방에는 1300명이 넘는 피해자가 모여 있다. 이곳에는 하루에도 수십건씩 피해 호소와 대응 방안을 묻는 메시지가 쏟아진다. 

 

그렇다면 꽤나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효과를 체감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은 건 왜일까. 현장에서 피해자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이들은 어떤 문제점을 느끼고 있을까. 직장·학교폭력 전문인 노윤호 변호사(법률사무소 사월)와 오진호 직장갑질 119 집행위원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허점과 보완점을 짚어봤다.[※참고: 인터뷰는 각각 진행했으나 독자 편의상 묶어서 정리했다.] 

✚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지 2년이 됐는데요. 각종 설문조사를 보면 현실에선 효과가 없는 것 같습니다.   
노윤호 변호사(이하 노윤호) : “조사 결과가 그렇게 나올 법도 합니다. 제도권으로 들어오면서 신고 통로가 마련되긴 했지만, 발생 빈도는 그다지 줄어들지 않은 것 같아요. 법안이 주먹구구식이기도 하고, 가해자의 인식이 개선되지 않았어요. 자신의 언행을 괴롭힘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거죠.” 
오진호 위원장(이하 오진호) : “법안이 생긴 건 의미 있는 일이지만, 부족한 점이 많았습니다. 처벌규정도 없었으니까요. 그나마 지난 3월 사업주 또는 사업자의 친인척이 가해자인 경우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내도록 하고, 회사가 제대로 조사하지 않을 경우에도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개정된 건 의미 있는 발걸음입니다(10월 14일 이후 시행). ‘사용자는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접수하거나 발생 사실을 인지하면 지체 없이 사실을 확인하고 객관적으로 조사해야 한다’ ‘조사 과정에서 알게 된 비밀을 피해자 동의 없이 다른 사람에게 누설하면 안 된다’는 조항도 이번에 포함됐고요.”

법안을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 수차례 이어지자 국회는 지난 3월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했다. 하지만 허점은 숱하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처벌범위가 한정적이다”면서 “그 외 행위자(아파트 입주민·원청업체 관계자 등)를 향한 처벌규정이 부재하다”고 지적했다.

 


3월 개정안에 5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과 프리랜서·계약직 노동자가 빠진 것도 중대한 결함 중 하나다.[※참고: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상시 근로자가 5인 이상일 때부터 적용된다.]   

시행 2년 지났지만 피해 여전해

✚ 그럼 5인 미만 사업장의 피해자는 어떻게 구제하나요?
오진호 : “올 1~5월 받은 이메일 제보 1014건 중 44건(4.3%)이 5인 미만 업체에서 근무하는 직장인의 사례였습니다. 이들은 신고조차 할 수 없죠. 대신 신체적·정신적 피해를 입은 경우 모욕죄나 명예훼손죄 등으로 고소할 수 있습니다. 산업재해로도 인정받고요. 하지만 피해자의 퇴사로 끝나는 경우가 다수입니다. 자발적으로 퇴사한다면 사유가 괴롭힘이라는 점을 입증해야 실업 급여를 받을 수 있어요.”
노윤호 : “5인 미만 사업장의 피해자에게는 고소 외엔 방법이 많지 않아요. 그래도 직장 내 괴롭힘 사건에서 상해죄나 모욕죄 등이 인정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 10~20인 사업장은 어떤가요? 피해자-가해자 분리 조치나 사건 조사가 잘되는지 의문입니다. 
노윤호 : “피해자의 권고사직으로 정리되는 사례가 많습니다. 직원이 대표나 사장에게 직접 신고하긴 어려우니 과장급의 중간관리자가 접수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일을 키우고 싶지 않아 쉬쉬하거나 가해자가 회사에 더 필요하다고 판단해 유야무야 넘어가곤 하죠.”
오진호 : “상시 근로자 10인 이상 사업장에는 ‘취업규칙’이 있습니다. 그 안에 직장 내 괴롭힘 처리 절차도 있고요. 대기업은 ‘고충처리위원회’처럼 별도의 기구를 두기도 하지만, 작은 회사에선 인사담당자가 성추행 신고와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함께 받는 경우가 많죠. 담당자가 비협조적으로 조사하면 피해자는 고용노동부에 신고할 수 있습니다.”

 


✚ 고용노동부는 어떻게 처리하나요? 
노윤호 : “신고를 받은 고용노동부는 회사에 재조사를 지시합니다. 사업주가 가해자인 경우 등 근로감독관이 직접 나설 때도 있긴 합니다. 문제는 피해자가 근로감독관에게 피해사실을 설명하는데, 그 과정에서 해결은커녕 2차 가해가 일어난다는 겁니다. 여러 차례 지적된 문제죠. 결정적으로 피해자가 저(변호사)를 찾는다는 건 해결이 안됐다는 뜻이니까요.”
오진호 : “근로감독관마다 방식이 약간씩 다르지만, 신고가 들어오면 감독관이 피해자를 통해 불리한 처우가 있었는지 파악하고 상황에 따라 처리합니다. 만일 회사가 제대로 조사를 안했다면 재조사 요청 공문을 통해 ‘정기근로감독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 ‘근로감독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공문을 받으면 회사가 조치를 취하나요?
오진호 : “근로감독이라는 건 쉽게 말해 회사가 노동 관련법을 잘 지키고 있는지 점검하는 겁니다. 직장 내 괴롭힘뿐만 아니라 안전·임금·보건 등 다방면으로 점검하죠. 아무래도 회사 입장에선 부담이 됩니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고용노동부의 권한이 작지 않아요. 이들이 적극적으로 나서면 문제를 좀더 원활하게 해결할 수 있다는 거죠.”

 


✚ 그렇군요. 결국 회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 보입니다. 
노윤호 : “그렇죠. 가해자가 회사 내부자인데, 신고를 회사에 하니까 회사와 개인이 싸우는 구도가 되면서 피해자는 더욱 힘들어져요. 피해자만이 아니에요.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도 이 방식에 불만이 많습니다. 알력 다툼 때문에 억울하게 (가해자로) 몰리는 경우가 있거든요. 이런 사건도 회사가 해결할 수 없죠.”

회사 자율 처리 한계 있어

✚ 그럼 어떻게 보완해야 할까요.

노윤호 : “전문가를 파견하든 제3의 기관이 사건을 맡든 외부의 개입이 필요해 보입니다. 회사가 자율적으로 해결하는 데엔 한계가 있어요. 애초에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회사가 전적으로 맡을 사안일까요?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조사 담당자가 내부적으로 연결돼 있잖아요. 중립적이고 전문적인 조치가 어렵다는 얘기입니다.” 

✚ 의식 차원에선 어떤 개선이 필요할까요?
오진호 : “법이 생겼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의식이 바뀌진 않아요. 법이 실효성을 갖추려면 관리·감독을 잘해야 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인권 감수성’이 없는 근로감독관의 태도는 반드시 개선돼야 해요. 고용노동부의 적극적인 사건 처리도 필요합니다. 의식을 바꾸려면 실질적인 권한을 가진 곳에서 움직여야 합니다. 민간이 아무리 캠페인을 해도 의식이 쉽게 바뀌지 않아요.” 
노윤호 :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의무 교육이 시행되고는 있어요. 하지만 형식적인 교육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서로 조심하는 조직 문화를 형성하는 게 중요합니다. 공개적이고 객관적인 신고 창구도 마련돼야 하고요.”  

심지영 더스쿠프 기자
jeeyeong.shim@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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