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과 미흡한 학교폭력 방지책
애들 싸움 인식부터 바꿔야…

학교폭력이 발생했을 때 가해자와 피해학생을 즉시 분리하는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지난 6월 23일 시행됐다. 피해자를 2차 가해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취지다. 하지만 법의 효력은 아직 약하다. 아이들이 “장난이었다”고 말하면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지 않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학폭을 그저 ‘애들 싸움’으로 치부했기 때문인데, 그런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 그건 허술한 면죄부免罪符일 뿐이다.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2020년 학교폭력 건수가 2019년에 비해 줄었다.” 교육부의 발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교육부 발표의 이면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온라인 수업이 이뤄지면서 학교폭력 발생 건수가 일시적으로 멈춘 것일 뿐 학교폭력 자체가 줄지는 않았다는 거다. 실제로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가 있는 각 교육지원청이 상정한 지난해 학교폭력 건수가 70여건 안팎인데, 올해는 상반기에 이미 그 건수를 넘어섰다. 

지난해 학생들은 주로 사이버상에서 소통했다. 그러다 올해 비대면 수업과 학교 수업을 병행하면서 그동안 쌓인 갈등이 학교폭력으로 번진 사례들이 많이 보고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비대면 수업을 하면서 학생들의 일상이 사이버상으로 이동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학생들이 이전보다 더 쉽게 폭력에 노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이버상에서는 피해자를 대면하지 않으니 죄책감도 없고, 언제 어디서든 접속할 수 있다. 그런 특성 탓에 사이버폭력이 과감하게 이뤄지고 있는 거다. 

학교폭력 건수가 늘어난 덴 ‘학폭 미투 현상’도 원인으로 작용한다. 올해 초 쌍둥이 배구선수의 과거 학교폭력 논란이 촉발되면서 운동선수는 물론 연예인들의 과거 학교폭력 폭로가 이어졌다. 그전까지만 해도 학교폭력 피해자들은 자신이 학교폭력 피해자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해 목소리 내기를 어려워했다.

하지만 학폭 미투 현상을 보면서 ‘나도 신고해야겠다’는 인식들이 서서히 자리 잡고 있다. 한쪽에선 “사소한 사건까지 신고하는 부작용도 발생하고 있다”는 의견을 내기도 한다. 하지만 필자는 폭력에 민감성을 가지고 사소한 폭력이라도 일단 신고해서 더 이상 발전되지 않게 하는 게 좋다는 의견을 갖고 있다. 

이처럼 ‘학폭 미투 현상’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긴 했지만 학교폭력을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최근 논란이 된 ‘일산 중학생 학교폭력 의혹 영상’ 사건을 보면 더 그런 생각이 든다. 이 영상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중학생 6명이 1명을 에워싸고 있다. 한 남학생이 피해자를 뒤에서 붙들어 팔로 목을 조르기 시작한다.

옆에 있던 여학생은 목이 졸린 피해자에게 다가가 성기 부위를 만지며 희롱한다. 남학생이 목을 풀어주자 버둥거리며 힘들어하던 피해자는 곧바로 자리에 쓰러진다. 지나가던 한 시민이 이 장면을 목격하고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후 인근 경찰서에 신고했다. 하지만 피해자는 경찰에게 “장난친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에 경찰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지 않았고, 사건을 수사부서로 넘기지도 않았다. 

이 사례에는 생각해볼 문제가 많다. 첫째, 경찰이 피해자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가해자들이 버젓이 보고 있는 곳에서 과연 어떤 피해자가 “쟤들이 나를 괴롭혔다”고 말할 수 있을까. 피해자가 “장난이었다”고 답한 건 가해자들의 보복이 두려워서였을 것이다.

학교폭력을 애들 싸움으로 치부하면 비극적인 결말로 이어질 수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학교폭력을 애들 싸움으로 치부하면 비극적인 결말로 이어질 수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둘째, 가해자들의 행동을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렸다. 영상 속 가해자의 행동을 보면, 공동폭행 또는 특수강제추행으로 형사처벌까지 가능한 수준이다. 폭행 장면이 담긴 동영상을 봤다면 피해자의 처벌 의사와 무관하게 수사를 할 수 있고 처벌도 가능하단 얘기다. 하지만 경찰들은 이를 간과한 듯 가해자의 문제적 행동들을 민감하게 체크하지 않았다. 

지난 6월 23일 학교폭력예방법은 학교폭력 발생 즉시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도록 하는 규정을 마련했다.[※참고: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제16조 제1항에는 “학교의 장은 학교폭력 사건을 인지한 경우 피해학생의 반대의사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지체 없이 가해자(교사 포함)와 피해학생을 분리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피해자를 보호하고 피해자가 심리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충분히 피해 상황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관련 법의 취지와 규정이 무색하게 학교폭력 현장은 여전히 ‘애들 싸움’으로 치부되곤 한다. 피해자를 사망으로까지 몰고 간 심각한 학교폭력도 처음에는 단순 싸움으로 보일 법한 사소한 폭력에서 시작됐다. 학교폭력 현장을 발견하면 서둘러 신고하고, 피해자를 가해자로부터 빠르게 분리해야 하는 이유다. 그래야 피해자들이 진실을 말할 수 있다. 그런 분위기가 형성돼야 가해자들이 함부로 폭력을 저지르지 못한다는 점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글=노윤호 법률사무소 사월 변호사
yhnoh@aprillaw.co.kr | 더스쿠프

정리=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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