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정연승 한국유통학회장
메타버스까지 넘나드는 온라인 유통
오프라인 유통은 정말 종말할까…

손가락만 까딱이면 원하는 물건이 30분 만에 집 앞에 배송된다. 1996년 최초의 온라인 쇼핑몰 ‘인터파크’가 등장한 후 20여년 만에 일어난 변화다. 주목할 점은 그 변화의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는 거다. ‘소셜커머스’ ‘라이브 커머스’ 등으로 옷을 갈아입은 온라인 유통업은 이제 VRㆍAR을 넘어 메타버스의 세계까지 넘나들고 있다. 속도를 쫓기 어려울 만큼 급변하는 유통의 미래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더스쿠프(The SCOOP)가 정연승 한국유통학회장(단국대 경영학 교수)에게 유통의 미래를 물어봤다.

유통 업계 변화의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유통 업계 변화의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세계는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다(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 이 말은 유통시장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유통의 미래’가 현실의 세계로 빠르게 밀려들어왔기 때문이다. 사실 변화의 물결이 그리 특별해 보이진 않는다.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가던 쇼핑시장의 무게추가 온라인으로 더 기울었을 뿐이어서다. 

하지만 변화의 물밑을 찬찬히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 새벽배송ㆍ당일배송은 기본이 됐고, 30분 내에 배송되는 ‘퀵배송 시대’까지 활짝 열렸다. 그렇다면 그다음은 뭘까. 설자리를 잃은 오프라인은 정말 종말을 맞이할 것인가. 정연승 한국유통학회장(단국대 경영학 교수)은 “파괴적 커머스의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 온라인 쇼핑시장의 성장세가 무서울 정도입니다. 이 정도 성장세를 예상하셨나요. 
“온라인 쇼핑시장의 성장은 코로나19 이전부터 지속돼 왔어요. 다만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비대면’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온라인화가 앞당겨진 건 사실입니다. 온라인 쇼핑을 이용하지 않던 연령대의 소비자가 유입되고, 온라인에서 구매하지 않던 품목까지 구매하게 된 거죠.” 

정연승 한국유통학회장은 “소비자를 머물게 할 콘텐츠를 갖춘다면 오프라인에도 기회가 있다”고 말했다.[사진=천막사진관]
정연승 한국유통학회장은 “소비자를 머물게 할 콘텐츠를 갖춘다면 오프라인에도 기회가 있다”고 말했다.[사진=천막사진관]

✚ 이는 전세계적인 현상입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한국은 유독 온라인 침투율이 높은 편인데요. 이유가 뭔가요. 
“IT 인프라가 발달한 데다, 한국 소비자의 성향도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한국 소비자는 다른 사림들이 하는 걸 따라해보고자 하는 심리가 강해요. 이는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에도 적용되죠. 더구나 온라인 쇼핑에서도 경험할 수 있는 요소가 다양해졌어요. ‘라이브 커머스’부터 ‘메타버스(metaverse)’까지 온라인 쇼핑이 단순히 편리한 것만이 아니라 흥미로워진 거죠. 소비자가 재미를 느끼자 기업들이 앞다퉈 온라인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특히 코로나19 국면에선 과잉투자다 싶을 정도로 온라인 투자가 활발해졌죠.” 

온라인 침투율은 전체 소매시장에서 온라인 거래가 차지하는 비중을 뜻하는 용어다. 시장조사기관 이마케터에 따르면 올해 한국의 온라인 침투율은 28.9%로 중국(52.1%)에 이어 2위를 차지할 전망이다.

✚ 1990년대 ‘오픈마켓’으로 시작해 ‘소셜커머스’를 거쳐 신선식품도 30분 내에 배송되는 ‘퀵배송’ 시대가 열렸습니다. 퀵배송의 다음은 뭘까요. 
“‘파괴적 커머스’ 시대가 올 거라고 봐요. 지금은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구분하고 시장점유율을 비교하지만 앞으로는 비교 자체가 무의미해질 겁니다. AR(증강현실)ㆍVR(가상현실) 기술을 활용해 온라인에서도 매장에 온 듯한 경험을 할 수 있고, 오프라인 매장에서 제품을 가상으로 체험할 수 있겠죠. 그럴수록 실제공간과 가상공간을 구분할 필요성이 사라질 겁니다. 소비자 역시 온·오프라인 채널을 의식하지 않게 되겠죠. 이것이 바로 ‘파괴적 커머스’의 본질적 요소입니다.”  

✚ 그런데 온라인 유통업체들은 파괴적이긴커녕 되레 비슷비슷해지는 듯합니다. 플랫폼을 갖추면 뭐든 판매하고, 뭐든 배송하는 식으로요. 
“온라인 유통업체에도 차별화가 필요합니다. 소비자를 유인하기 위해선 결국 ‘콘텐츠’를 갖춰야 하죠. 소비자를 자신들의 플랫폼에 머물게 할 엔터테인먼트 요소가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쇼핑’만 제공하는 업체는 경쟁력을 잃을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겠죠. 소비자의 판매 상품을 소비자에게 중개만 하는 ‘오픈마켓’이 하락세로 접어든 건 대표적 사례죠. 쿠팡이 OTT 서비스(쿠팡플레이)를 론칭하고, 웹툰ㆍ뉴스 등 콘텐츠를 갖춘 네이버가 이커머스 강자로 떠오른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온라인 유통업체들이 자신들의 플랫폼에 소비자를 머물도록 하기 위해 다양한 기능을 탑재하고 있다는 겁니다.” 

✚ 겉으로 보기엔 어떨지 몰라도 온라인 시장의 내밀한 변화는 역동적이란 말씀인가요. 
“그렇습니다. 불과 5년 전만 하더라도 쿠팡이 이렇게까지 성장할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죠. 오픈마켓 강자 ‘이베이코리아(이마트 인수)’가 매물로 나오게 될 줄도 몰랐고요. 이런 다이내믹한 시장을 누가 더 잘 예측하고 그 길목을 선제적으로 지키느냐가 중요합니다.” 

✚ 최근에는 ‘메타버스’까지 유통업계에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유통업계가 어떻게 메타버스를 활용할 수 있을까요. 
“현재로선 미래의 소비층인 Z세대(1995년 이후 출생자)가 모이는 곳이라는 점에서 브랜드를 알리고 소통하는 효과가 가장 크겠죠. 나아가 메타버스가 이들의 ‘주된 세상’으로 자리 잡는다면 실제로 메타버스 내에서 쇼핑까지 이뤄지는 또 하나의 ‘옴니채널(omni-channelㆍ온라인과 오프라인 판매채널의 결합)’로 성장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메타버스의 미래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유통업체가 기꺼이 뛰어들어야 하는 시장이라고 봐요. 소비자가 열광하면 같이 열광하고 그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살피는 건 유통업체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죠.”  

쿠팡은 OTT 콘텐츠를 강화하며 소비자를 ‘락인(Lock-in)’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쿠팡은 OTT 콘텐츠를 강화하며 소비자를 ‘락인(Lock-in)’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메타버스 등 가상의 공간까지 생겨났습니다. 이 때문인지 일부에선 오프라인의 종말을 언급하곤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럼에도 온라인이 오프라인을 넘어서기는 쉽지 않다고 봐요. 온라인이 전체 유통시장의 50%대에 달할 즈음엔 온·오프라인을 구분 짓는 것 자체가 의미 없어진다는 거죠.” 

✚ 그럼에도 오프라인 유통업이 무너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오프라인 유통이 어떻게 달라질 거라고 보시나요. 
“무엇보다 유통 과정이 변화했습니다. 그동안 제품을 생산해서 소비자에게 도달하기까지 여러 단계를 거쳤죠. 하지만 온라인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유통 단계가 축소하고 효율화했어요. 그 과정에서 ‘유통’의 역할이 작아질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럴수록 오프라인 유통업체가 지닌 ‘머천다이징, 고객 체험, 서비스 기능’은 오히려 부각될 수 있습니다.” 

✚ 오프라인 유통업계에도 기회가 있다는 건가요. 
“지금은 모두가 ‘빠르고’ ‘효율적이고’ ‘편리한 것’을 중시하고 있어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소비자가 ‘남는 시간’에 뭘 할 거냐가 중요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 결국 다시 ‘오프라인’이 필요하겠군요. 
“그렇죠. 사람들은 남는 시간에 테마파크, 공연장, 경기장 등을 찾아 시간을 보내죠. 앞으로는 유통업체가 이런 기능을 담당할 수밖에 없어요. 엔터테인먼트 기능을 갖추고 소비자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으로 변화해야 하는 거죠. 유통업체가 ‘유통’의 틀을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 실제로 미래의 주요 소비층인 MZ세대는 오프라인 경험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합니다. 이들을 잡기 위해서라도 변화가 필요하겠네요. 
“MZ세대는 앞선 세대에 비해 오프라인 갈망이 큽니다. X세대나 Y세대 등은 오프라인 유통의 발전을 모두 경험했죠. 반면 MZ세대는 온라인에 익숙한 만큼 오프라인 경험은 빈약합니다. 시기적으로도 팬데믹 상황을 지나면서 온라인에 갇혀 있다 보니 오프라인을 체험하려는 욕구가 더 커진 셈이죠.” 

유통업계도 MZ세대를 잡기 위해 변화를 꾀하고 있다. ‘고객을 머물게 하라’를 콘셉트로 매장을 180도 바꾸고 있다. 백화점에 맛집ㆍ편집숍을 유치하고 ‘인증샷 존’을 만들거나, 영업 매장을 줄이고 고객이 쉬다 갈 유휴공간을 늘리는 건 대표적 사례다. 

✚ 유통업계도 오프라인 매장을 바꾸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실익이 없다’는 평가도 많습니다. 
“‘구매연계 효과’가 크지 않다는 지적도 있어왔죠. 하지만 고객이 좋아하는 공간으로 만들고, 고객이 찾아와 시간을 보내게 하는 게 우선이라고 봐요. 구매 행위가 일어나게 만드는 건 그다음입니다. 매장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소비자는 지갑을 열 수밖에 없고요. 또 각 브랜드 입장에서도 오프라인 매장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구매는 온라인에서 이뤄지더라도 소비자와의 접점으로서 오프라인 매장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 그렇다면 소비자가 머물 만한 ‘콘텐츠’를 갖추지 못한 오프라인 유통업체의 구조조정은 앞으로도 불가피한 건가요. 
“‘쇼핑’이라는 기능적 욕구만 채워주는 공간은 앞으로도 어려움에 처할 공산이 큽니다. 실용적이고 기능적인 목적은 온라인에서도 해결할 수 있죠. 생활문화적인 욕구를 채워주는 공간이 살아남을 겁니다.”

✚ 결국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살아남기 위해선 ‘콘텐츠’가 중요한 거네요. 
“그렇습니다. 앞으로의 유통은 온ㆍ오프라인의 경계만 허물어지는 게 아닙니다. 소비자가 즐길 수 있는 모든 콘텐츠와 쇼핑이 결합하겠죠. 그걸 잘할 수 있는 기업이 경쟁력을 갖는 파괴적 커머스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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