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업으로 바이오 점찍은 식품업체들
기존 사업과 연관성 낮고 노하우 적어
바이오 전문기업도 버티기 힘든 살얼음판

식품업계에서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잇따라 바이오시장에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고령화 사회, 환경 문제, 코로나19 팬데믹 등이 위험요인으로 떠오르면서 바이오산업의 중요성이 부쩍 높아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바이오 분야의 기반이 약한 식품업체들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느냐는 점이다. 

CJ제일제당, 대상, 오리온 등 식품업체들이 미래 먹거리로 바이오를 선택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CJ제일제당, 대상, 오리온 등 식품업체들이 미래 먹거리로 바이오를 선택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신사업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건 지속적으로 성장해나가야 하는 기업이 안고 있는 과제 중 하나다.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반사이익을 톡톡히 누리고 있는 식품업계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일부 식품업체들이 성장세를 이어나가기 위해 신사업을 본격 육성하고 있는데, 그 행보가 흥미롭다.

일반적으로 기존 사업과 연관된 곳에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게 마련이지만 이들은 생소한 분야에서 새로운 도전을 꾀하고 있어서다. 대표적인 곳은 CJ제일제당, 대상, 오리온인데, 공통적으로 주목한 건 바이오다.

식품업계 1위 CJ제일제당은 그중에서도 투자가 가장 활발하다. 2021년 7월 국내 바이오기업 천랩을 인수하면서 신호탄을 쐈다. 천랩은 인체에 사는 각종 미생물을 뜻하는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을 다루는 전문기업이다. 마이크로바이옴을 분석하고 이를 기반으로 감염진단 솔루션과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1월 3일 천랩의 사명을 CJ바이오사이언스로 변경하고 바이오 전문 자회사로의 편입을 마쳤다. 

지난 12월엔 네덜란드 유전자치료제 위탁개발생산(CDMO)업체 바타비아 바이오사이언스의 지분 75.8%를 2630억원에 사들였다. 바타비아 바이오사이언스는 글로벌 제약사 얀센의 경영진이 설립한 곳으로, 바이러스 백신과 벡터(유전자 등을 인체ㆍ세포 내에 전달하는 물질) 제조공정 개발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차세대 신약 개발뿐만 아니라 최근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백신 생산 분야에서도 역량을 쌓겠다는 포부다.

그뿐만이 아니다. CJ제일제당은 최근 HDC현대EP(플라스틱소재 생산업체)와 손을 잡고 바이오 컴파운딩(두개 이상의 산업 소재를 혼합하는 생산방식) 합작회사를 세우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PHA(해양 생분해 플라스틱), PLA(생분해 플라스틱), PBAT (고강도 생분해 플라스틱), 셀룰로오스 등 친환경 소재를 활용한 바이오플라스틱 사업에 진출하기 위해서다.

식품업계 2인자 대상도 바이오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점찍었다. 공교롭게도 CJ제일제당이 출사표를 던진 바이오플라스틱 시장에 대상도 뛰어들었다. SKC, LX인터내셔널과 함께 신소재 합작회사를 설립해 PB AT를 생산ㆍ판매할 계획이다.[※참고: 대상과 LX인터내셔널은 각각 400억원, 360억원, SKC는 기술가치 790억원을 포함한 1040억원을 투자한다. 지분율은 세 회사가 각각 22.2%, 20.0%, 57.8%다.]

 

대상은 의약품 사업에도 손을 뻗었다. 대상의 모회사 대상홀딩스가 지난 7월 의료소재 업체 대상셀진을 신규 설립하고 자회사로 편입한 이유다. 대상셀진의 주요 사업은 생명공학 기반 화장품ㆍ의약품, 바이오시밀러, 단백질 의약품 등의 연구ㆍ개발(R&D)과 생산이다. 바이오소재와 더불어 바이오의약품까지 사업 영역을 확대하겠다는 거다.

제과업계 강자 오리온도 마찬가지다. 바이오시장에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았다. 2021년 3월 중국 제약업체 산둥루캉의약과 체외진단 기술을 도입하기 위한 합자법인을 세웠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오리온은 4월 국내 백신 전문업체 큐라티스와 결핵백신 기술도입을 위한 업무협약, 5월엔 국내 암 체외진단 전문업체 지노믹트리와 대장암 체외진단 기술도입을 위한 본계약을 각각 체결했다.

10월엔 중국에 암 체외진단 제품 양산을 위한 생산설비도 구축하며, 중국 바이오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오리온 관계자는 “아직은 국내 기술을 중국 시장에 연결하는 플랫폼 역할만 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자체적으로 기술을 개발하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왜 하필 바이오일까. 바이오는 크게 3가지 분야로 나뉜다. ▲농수산업ㆍ식품 분야를 뜻하는 그린바이오 ▲친환경 소재ㆍ에너지 분야에 응용되는 화이트바이오 ▲의료ㆍ제약 분야인 레드바이오 등이다.

이중 그린바이오를 제외한 화이트바이오, 레드바이오는 식품업체들의 기존 사업과 연관성이 낮다. 당연히 기술ㆍ사업적인 노하우가 있을 리 없고, 기존 사업과 시너지를 낼 만한 요소도 많지 않다. 이 때문인지 CJ제일제당은 제약바이오사업을 맡고 있던 자회사 CJ헬스케어를 2018년 매각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식품업체들이 바이오를 주목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식품업계 관계자의 설명을 들어보자. “식품이나 바이오나 큰 맥락에서 보면 모두 건강 카테고리에 포함된다. 고령화 사회로 가면서 건강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어 성장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바이오는 가장 주목받는 산업 중 하나다. 정부는 시스템반도체, 미래차와 함께 바이오를 3대 신산업으로 꼽았고, 코로나19 사태 이후엔 “우리나라를 백신 생산 강국으로 만들겠다”며 백신산업을 집중 육성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성장세도 가파르다. 일례로 최근 주목받고 있는 유전자ㆍ세포치료제 CDMO 시장은 2019년 15억2460만 달러(약 1조8127억원)에서 2026년 101억1340만 달러로 6배 이상 훌쩍 커질 전망이다. CDMO 사업을 펴고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 SK바이오사이언스 등의 주가가 코로나19 이후 부쩍 오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바이오는 장밋빛 미래만 보고 선뜻 뛰어들기엔 리스크가 큰 시장이다. 사업을 키우고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은 크지만, 그에 따른 결과물이 회사에 만족할 만한 이익을 가져다 줄지는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숱한 바이오기업이 신약 개발에만 성공하길 고대하면서 수년간 적자를 감수하는 이유다. 

최근 부업전선에 뛰어들고 있는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가파르게 늘어난 것도 이 때문이다. 화장품부터 외식업, 건강식품, 반려동물용 건강기능식품 등 분야도 다양하다. 제약바이오 사업의 리스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제약바이오업계 관계자는 “최근 바이오가 주목을 받고, 정부가 지원을 약속하면서 이 시장에 뛰어드는 기업들이 많은 것 같다”면서 “하지만 제법 업력이 있는 기업도 장밋빛 미래를 섣불리 기대하기 힘든 곳이 바이오 시장인데, 기반이 전혀 없는 기업이 얼마나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꼬집었다. 과연 바이오는 식품업체에 새로운 날개를 달아줄 수 있을까.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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