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매매의 위험한 역설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투자에 나선 이들의 곡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내 증시가 연일 하락하면서 반대매매 물량이 가파르게 늘어난 탓이다. 증권사의 반대매매 규모는 10거래일 연속 200억원을 웃돌고 있다. 문제는 반대매매의 추세가 당분간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더스쿠프가 반대매매가 불러일으킨 위험요인을 취재했다.

국내 주식시장이 하락하면서 증권사의 반대매매 금액이 증가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국내 주식시장이 하락하면서 증권사의 반대매매 금액이 증가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강성민(가명·34)씨는 주식투자 2년 차에 접어든 직장인이다. 강씨가 하루를 보내면서 가장 많이 하는 일은 휴대전화에 있는 주식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 앱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단타(짧은 시간 내 주식을 사고파는 것)’를 치거나 투자종목을 살피기 위해서가 아니다. 증권사 계좌의 신용담보비율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최근 신용담보비율이 악화하면서 반대매매를 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강씨의 주식계좌를 살펴보자. 총 투자금액은 6000만원이다. 이중 여윳돈으로 투자한 건 1500만원이다. 1000만원은 은행 마이너스 통장에서 마련한 자금이다. 여기까지는 그나마 다행이다. 문제는 나머지 3500만원인데, 이는 증권사 ‘신용거래융자’를 통해 빌린 돈이다. 이른바 ‘빚투(빚내서 투자)’를 한 셈이다.

주식시장이 안정적인 흐름을 이어갈 때는 강씨의 사정도 나쁘지 않았다. 300만원의 손실을 기록하고 있었지만 기회만 오면 얼마든지 만회할 수 있다는 기대가 컸다. 물론 은행(1000만원×금리 4.0%)과 증권사(3500만원×금리 4.5%)에 이자를 내야 했다. 하지만 증권사 신용융자거래는 단기거래에만 활용해 부담이 크지 않았다. [※참고: 강씨가 입은 손실 300만원은 여윳돈과 마이너스 통장에서 마련한 자금 2500만원에서 발생했다.]

그러던 9월 말 강씨의 주식 계좌에 빨간불이 켜졌다. 중국 부동산그룹 헝다恒大(에버그란데)의 디폴트 위기, 미 부채한도 이슈, 인플레이션 우려 등의 악재가 한꺼번에 터지면서 국내 증시가 출렁이기 시작했다. 지난 9월 27일 3133.64포인트였던 코스피지수는 지난 12일 2916.38포인트로 6.9% 하락했다.

여기에 강씨가 투자했던 코로나19 치료제 관련주까지 급락하면서 투자 손실은 손쓸 틈도 없이 커졌다. 2500만원(여윳돈+마통)의 투자금에서 발생한 손실 300만원은 500만원으로 커졌다. 신용거래로 투자한 3500만원에서도 600만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6000만원이었던 강씨의 주식평가금액이 4900만원으로 줄어든 셈이었다.

강씨 신용거래 담보비율(주식평가금액÷신용거래 투자금×100)은 140%로 떨어졌다. 증권사는 최저담보비율이 140% 아래로 떨어지면 고객이 신용거래로 매입한 주식을 되파는 반대매매를 통해 대출을 회수한다. 강씨로선 주식평가금액이 10원이라도 줄면 반대매매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반대매매는 공포 그 자체다. 증권사는 신용거래 종목 전일 종가의 80~85%, 더한 곳은 하한가로 반대매매를 한다. 장 시작 전 동시호가로 매매하는 탓에 투자자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신용거래 종목의 전일 종가가 1만원이었다면 8000원이나 7000원에 반대매매가 이뤄지는 셈이다. 이때 발생한 손실은 고스란히 투자자의 몫으로 남는다.

투자금을 더 마련할 수 있다면 문제는 해결된다. 하지만 증시 하락세를 감안하면 안심할 수 없다. 투자금을 어떻게 마련할지도 걱정이다. 강씨는 “예수금을 마련하기 위해 아내 몰래 추가로 대출을 받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며 “신융거래 기간이 길어지면서 매월 증권사에 갚아야 할 이자도 늘어나 걱정”이라고 말했다.

투자자를 벌벌 떨게 하는 반대매매가 가파르게 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증권사의 위탁매매 미수금 대비 실제 반대매매 금액은 지난 9월 28일 208억원을 기록한 이후 지난 8일까지 8거래일 연속 200억원대를 웃돌았다. 그 기간 2263억400만원의 반대매매가 발생했다. 코스피지수가 2900포인트대 초반까지 떨어진 지난 6일(2908.31포인트)에는 393억8500만원의 반대매매가 이뤄졌다.

반대매매에 떠는 투자자

이날 주식시장에선 장전 동시호가 거래에서 90여개의 종목이 하한가를 기록했다. 증권사가 장 시작 전 동시호가 이용해 반대매매에 나선 탓이었다.[※참고: 위탁매매 미수거래는 주식 결제대금이 부족할 때 증권사가 3거래일간 대금을 대신 지급해 주는 제도다. 증권사는 투자가 3거래일째까지 미수금을 갚지 못하면 다음 거래일 반대매매를 통해 미수금을 회수한다.]

강씨의 사례와 같은 신용거래 반대매매도 증가세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7월 일평균 42억1000만원이었던 신용거래 반대매매 금액은 8월 84억8000만원으로 두배 이상 증가했다. 8월 이후 국내 증시가 크게 위축됐다는 걸 감안하면 신용거래 반대매매 금액은 더 증가했을 공산이 크다.

증시 상승을 이끌었던 유동성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아졌다.[사진=뉴시스[
증시 상승을 이끌었던 유동성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아졌다.[사진=뉴시스[

실제로 9월 27일 25조1487억원이었던 신용거래 규모는 지난 8일 23조355억원으로 2조1132억원 감소했다. 증시 폭락으로 신용거래가 줄어든 영향도 있지만 반대매매가 늘어났기 때문이라는 게 증권업계의 분석이다.

문제는 반대매매의 공포가 당분간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국내 증시가 부진한 흐름을 보일 가능성이 높아서다. 우선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증시가 폭락했던 지난해 3월과는 상황이 다르다.


당시엔 코로나19의 충격이 오래가지 않을 것이란 기대가 컸다. 코로나19가 수그러들면 침체했던 경기가 금세 회복세로 돌아설 것이란 전망도 우세했다. ‘동학개미운동’으로 불리는 주식투자 열풍이 거셌던 것도 이런 요인 때문이었다.

지금은 기대보다 우려가 높다. 올 3분기에 기록한 성장세의 기저효과로 경제가 다시 둔화할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린다. 이는 최대 실적을 올리고도 주가가 떨어진 삼성전자를 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삼성전자의 올 3분기 매출액은 전년 동기(66조96 00억원) 대비 9.0% 증가한 73조원, 영업이익은 12조3000억원에서 27.9% 늘어난 15조8000억원을 기록했다.

삼성전자의 매출액이 70조원을 넘어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호실적에도 주가는 역주행을 거듭했다. 실적 발표일인 지난 8일 7만1500원이었던 삼성전자의 주가는 지난 12일 6만9000원으로 3.4% 하락했다. ‘7만 전자’가 깨진 셈이다. 3분기 이후 실적이 악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 탓이다. 시장은 최대 실적이 아닌 앞으로의 실적 둔화를 우려하고 있다는 얘기다.

증시를 둘러싼 환경도 급변했다. 지난해엔 유동성이 넘쳐났다. 경기 방어에 나선 세계 각국 중앙은행이 돈을 풀기에 바빴다. 한국은행도 지난해 5월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치인 0.5%로 낮췄다.

하지만 현재 통화정책의 초점은 확장보다는 정상화에 맞춰져 있다. 한은은 9월 기준금리를 0.75%로 인상한 데 이어 또 한번의 금리인상을 준비하고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도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에 나설 전망이다. 시장에 돈이 넘쳐났던 1년 전과는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는 거다.

하락장에 대처하는 투자자의 반응도 1년 전과는 다르다. 하락장에서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던 투자자예탁금(증시투자 대기자금)은 되레 쪼그라들고 있다. 코스피지수가 3000포인트 초반으로 떨어진 지난 1일 69조7746억원이었던 투자자 예탁금은 코스피지수가 2900포인 초반으로 하락한 지난 8일 66조2216억원으로 감소했다.

반대매매에 숨은 증시 부진 시그널

지난해 3월 11~19일 1908.27포인트였던 코스피지수가 1457.64포인트로 폭락했던 시기에 투자자예탁금이 32조9092억원에서 38조3666억원으로 되레 증가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시장의 투자심리가 증시 회복보다는 둔화로 기울어져 있다는 방증이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증시 하락을 이끈 다양한 요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코로나19 이후 살아난 경기가 다시 둔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라며 “이런 시기에 반대매매가 급증하는 것은 가뜩이나 얼어붙은 투자심리를 더 악화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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