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금리 땐 금리 변동 없더니
기준금리 오르자 따라 올라
개미 떠나면 증권사도 손해

기준금리가 움직일 때 비판을 받는 곳이 있다. 금융회사다. 금리가 떨어질 땐 나 몰라라 하지만 금리가 오르면 재빨리 태세를 전환해서다. 신용거래융자로 투자자에게 투자금을 빌려주는 증권사도 마찬가지다. 기준금리가 인상되자 좀처럼 움직이지 않던 증권사의 신용거래융자 이자율이 들썩이고 있다. 우린 언제까지 ‘기준금리 내릴 땐 찔끔, 올릴 땐 확’이란 금융회사의 꼼수에 당해야 하는 걸까.

국내 증권사가 기준금리 인상을 이유로  신용거래융자 이자율을 올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사진=뉴시스]
국내 증권사가 기준금리 인상을 이유로  신용거래융자 이자율을 올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사진=뉴시스]

시작은 한국은행이었다. 지난 8월 기준금리를 0.5%에서 0.75%로 인상한 게 신호탄이었다. 한은은 석달 후 금리를 1.0%로 한번 더 끌어올렸고, 자신들이 열어젖힌 ‘초저금리 시대’를 20개월 만에 스스로 끝냈다.[※참고: 한은은 코로나19가 경제에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난해 3월 기준금리를 0.75%로 인하했다. 5월에는 0.25%를 더 낮춰 0.5%라는 사상 초유의 최저금리 시대를 열었다.]

한은이 초저금리 국면을 마무리한 이유는 간단하다. 급격하게 늘어난 유동성을 줄이기 위해서다. 한은에 따르면 시장에 풀린 유동성을 의미하는 광의통화(M2·계절조정 기준, 평잔)는 지난해 3월 2982조7466억원에서 지난 10월 3550조5960억원으로 증가했다. 시장에서 말하는 유동성 파티가 시작된 것도 이 때문이고, 증시에 거품이 낀 것도, 가계부채가 급증한 것도, 부동산 가격이 잡히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다.

한은이 금리를 끌어올리면 유동성 과잉 문제가 해소될 공산이 크다. 하지만 후유증도 있다. 빚을 낸 사람들은 올라간 금리만큼 더 많은 원리금을 내야 한다. 금리인상과 함께 ‘영끌 시대’가 끝났다는 분석이 나온 이유다.

문제는 금융회사의 대출금리가 기준금리 인상기에 훨씬 더 가파르게 오른다는 점이다. 대출로 먹고사는 시중은행만의 문제가 아니다. 증권사도 비슷한 행보를 보인다.[※참고: 시중은행·증권사 등 금융회사들이 기준금리 하락기엔 대출금리를 찔끔 내리고, 인상기엔 대폭 올리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사례 한토막을 보자. 지난해 8월 증권업계에 때아닌 ‘이자 놀음’ 논란이 일었다. 저금리 기조에도 증권사의 신용거래융자 이자율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참고: 신용거래융자는 투자자가 증권사로부터 주식매수자금을 빌리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기준금리가 0%대로 낮아졌지만 증권사의 신용거래융자 이자율은 요지부동이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신용거래융자를 취급하는 28개 증권사 가운데 9곳은 기준금리가 1.50%였던 2019년 7월 이후 한번도 이자율을 변경하지 않았다. 기준금리 인하 효과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 셈이다. 증권사의 신용거래융자 이자율이 낮은 것도 아니었다. 대출 기간에 따라 4.5%(대출 기간 1~7일)에서 9.9%(대출 기간 90일 이상)의 이자를 챙겼다.


당연히 시장에선 증권사가 투자자를 상대로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인’ 이자 장사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금융당국도 한목소리를 냈다. 당시 금융위원회의 수장이었던 은성수 위원장은 지난해 8월 증권업계와 가진 간담회 자리에서 “한은이 기준금리를 0.75% 인하하는 동안 신용거래융자 금리를 전혀 변동하지 않은 증권사들이 있다고 한다”며 “이를 두고 개인투자자가 불투명성과 비합리성을 지적하면서 개선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라고 꼬집었다.

은 위원장의 엄포성 발언 이후 몇몇 증권사가 신용거래융자 이자율을 낮췄지만 인하폭은 크지 않았다. 증권업계는 “증권사는 시중은행과 달리 조달 비용이 비싸기 때문에 신용거래융자 이자율도 높을 수밖에 없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증권사는 금리인상기엔 기민하게 움직였다. 지난 11월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에 맞춰 신용거래융자 이자율을 올린 증권사는 세곳에 이른다. DB금융투자는 신용거래융자 이자율을 0.21%포인트 올렸다. 메리츠증권과 NH투자증권도 각각 0.11%포인트, 0.4%포인트 인상했다.

기준금리 인상과 동시에 신용거래융자 이자율을 끌어올린 셈이다. 이자율 인상의 명목은 기본금리 상승이다. 기준금리가 인상돼 증권사의 기본금리인 양도성예금증서(CD)·기업어음(CP) 금리가 상승하면 이자율을 올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금리인상기엔 기민하게 반응


문제는 이자율 상승폭이 가파르다는 데 있다. 지난 8월 이후 4차례 신용거래융자 이자율을 인상한 DB금융투자가 대표적이다. DB금융투자는 2019년 이후 6.9%의 신용거래융자 이자율(대출 기간 16~30일 기준)을 고수했다. 2019년 1월 1.75%였던 기준금리가 지난해 5월 0.5%까지 떨어졌지만 신용거래융자 이자율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 올해 8월 이자율을 6.81%로 소폭 낮췄다. 기본금리인 CD금리가 하락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지난 8월 26일 한은이 기준금리를 0.75%로 인상하자 DB금융투자는 곧바로 금리방향을 위쪽으로 틀었다. 지난 9월 6.89%로 신용거래융자 이자율을 한달 만에 0.08%포인트 끌어올리더니, 10월 7.17%, 11월 7.25%, 12월 7.46%로 계속해서 인상했다. 8월 6.81%와 비교하면 4개월 만에 0.65%포인트 끌어올린 셈이다. 저금리 시기엔 움직이지 않던 이자율이 금리 인상기에 접어들자마자 빠른 속도로 올라갔다는 얘기다.

더 큰 문제는 국내 증권사의 신용거래융자 이자율 상승세는 앞으로 본격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한은이 2022년에도 한차례 이상의 기준금리 인상에 나설 것으로 보여서다. 게다가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까지 2022년 최소 3차례 이상 기준금리를 올리겠다고 예고했다. 신용거래융자 이자율 상승 기조가 전 증권사로 확대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빚내서 투자(빚투)에 나선 이들이다. 가뜩이나 증시가 부진한 상황에서 이자율까지 오르는 이중고를 겪을 수 있다. 김소영 서울대(경제학) 교수는 “이자율이 상승하면 투자로 더 많은 수익을 올려야 빚을 갚을 수 있다”며 “하지만 증시가 부진한 모습을 보여 빚투에 나선 투자자는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반면, 증권사는 신용거래융자에서 손해를 볼 위험이 적다. 증권사는 신용거래융자 거래 시 최저담보비율이 140% 아래로 떨어지면 고객이 신용거래로 매입한 주식을 되파는 반대매매를 통해 대출을 회수하면 된다. 이 때문인지 국내 증권사가 신용거래융자로 벌어들인 이자수익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 중이다.


빚투 나선 투자자 어쩌나…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3분기까지 국내 증권사(신용거래융자를 취급하는 28곳)가 신용거래융자를 통해 얻은 이자수익은 1조3432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기(6554억원)의 두배가 넘는 금액이다. 증권사의 과도한 이자놀이에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이유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시장금리가 상승하면 결국 신용거래융자 이자율을 높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아직은 서로 눈치를 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물론 주식에 투자하는 것도, 빚을 내 투자를 하는 것도 투자자의 선택이다.


하지만 개인투자자의 이자 부담에 허덕이는 투자자가 늘어나는 건 증권사에도 좋을 게 없다. 국내 증시에 실망한 투자자가 시장을 떠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증권사에 돌아간다. 눈앞의 수익에 취해 투자자의 어려움을 외면하고 있는 건 아닌지 살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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