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를같이읽다

언어는 시대를 반영한다. 문화의 변화, 기술의 발전에 따라 과거의 언어는 사라지고 새로운 언어가 탄생한다. 지금 자동차 업계에서도 언어의 명멸明滅이 일어나고 있다. 자동차에 최첨단 기술이 더해지면서다. 어쩌면 우리는 ‘자동차’라는 용어를 쓰는 마지막 세대가 될지도 모른다. 바야흐로 ‘모빌리티’의 시대가 도래했다. 자동차를 자동차라 부르지 않는 시대가 왔다는 거다.  

지난 130년 동안 쌓아왔던 ‘자동차’의 개념이 사라지고 있다. 필자의 말에 혹자는 지금도 자동차는 우리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데 무슨 얘기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맞는 말이다. 여전히 자동차는 일상 속에 존재한다. 아마 미래에도 자동차란 말은 남아있을 것이다. 이쯤 되면 필자가 대체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건지 궁금한 독자들이 많을 거다. 

앞으로 자동차는 ‘모빌리티’라는 용어로 대체될 것이다. 전통적인 자동차는 ‘4개의 바퀴를 달고 도로 위를 달리는 기계’를 뜻한다. 반면 모빌리티는 자율주행차를 포함해 도심항공(UAM)ㆍ로봇 등 첨단 기술을 갖춘 모든 이동수단을 통칭한다.

여기에 한가지 의미가 더 있다. 모빌리티는 이동수단 안에서 이뤄지는 각종 서비스를 총칭하기도 한다. 정리하면 모빌리티란 ‘사람의 이동을 편리하게 하는 미래형 이동수단 혹은 서비스’를 폭넓게 이르는 말이다.  

자동차는 지고 모빌리티가 뜨는 변화의 바람은 업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매년 개최되는 자동차 전시회도 예외는 아니다. 세계 4대 모터쇼 중 하나인 프랑크푸르트 모터쇼는 지난 9월 개최지를 독일 뮌헨으로 옮기면서 명칭을 ‘IAA 모빌리티’로 바꿨다. 오는 11월 25일 열리는 서울모터쇼도 ‘서울모빌리티쇼’라는 이름으로 개칭한 후 첫선을 보일 예정이다. 

모빌리티의 부상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모터쇼도 있다. 미국 디트로이트 모터쇼다. 매년 초 개최되는 라스베이거스 ‘국제가전전시회(CES)’에서 모빌리티와 관련한 최첨단 기술을 전시하면서 그 직후에 열리는 디트로이트 모터쇼는 설 자리를 잃었다.

내연기관차를 포함한 신차 중심의 디트로이트 모터쇼와 달리 CES에는 전기차ㆍ수소연료전지차ㆍ커넥티드카 등 다채로운 미래차와 관련 기술이 총집합했다. 앞으로 ‘모터’라는 명칭을 버리지 않는다면 기존의 모터쇼들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게 될지 모른다. 

모빌리티 중심의 패러다임 변화는 대학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자동차 관련 학과의 이름부터 바뀌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대부분 학과는 ‘자동차과’ ‘자동차공학과’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미래모빌리티과’ ‘미래자동차융합학과’ 등 산업의 흐름을 반영한 학과명으로 개편하고 있다. 물론 이름만 바꾼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모터쇼에서 모빌리티쇼로 진화한 국제 전시의 사례처럼 대학들도 학과명에 걸맞은 최신 교육과정을 도입해 나가야 한다.

모빌리티의 파급력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부품업계도 명칭의 변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모빌리티 시대가 확대될수록 기존 부품명은 사라지고 새로운 용어들이 등장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가령, 전기차는 엔진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내연기관차에 있었던 엔진룸이 전기차에서는 사라지게 된다. 

대신 전기차는 엔진룸이 있던 자리를 짐칸으로 활용하는데 이를 ‘프렁크(frunk)’라고 부른다. 앞을 뜻하는 프런트(front)와 트렁크(trunk)를 합쳐 만들어진 새로운 명칭이다. 앞으로도 모빌리티의 발전에 따라 크고 작은 이름의 변화들이 끊임없이 생길 것으로 예상한다. 

명칭은 중요한 시작점이다. 자동차 시장만 봐도 그렇다. 아무리 품질이 좋은 자동차라고 해도 잘못 지은 이름 하나 때문에 판매는 물론 브랜드 이미지까지 손상을 입은 사례가 적지 않았다. 그만큼 남들보다 한발 앞서 명칭부터 새롭게 무장한다면 그것이 바로 경쟁력을 갖추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다. 

모빌리티라는 용어가 우리 주변에 흔히 들릴 날이 머지않았다. 지금부터 모빌리티라는 말을 즐기고 자주 활용했으면 좋겠다. 이제 미래는 ‘모빌리티 시대’이기 때문이다. 

글 =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
autoculture@hanmail.net

정리=윤정희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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