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건강보험 재정 논쟁❶
지난해 건강보험 재정수지 흑자
누적 적립금 ‘문재인 케어’ 활용
전임 정부가 남겨둔 적립금 덕일까

건강보험은 출산부터 사망에 이르는 생애주기 전반과 직결되는 국민들의 보호막입니다. 그만큼 국민들이 납부하는 보험료를 나라에서 얼마나 잘 모아서, 잘 쓰느냐는 중요한 일입니다. 최근 정부의 건강보험 재정 운영을 두고 논쟁이 벌어졌는데요. 나라에서 유사시를 대비해 비축한 건강보험 재정 적립금이 어떤 정부(박근혜 정부 또는 문재인 정부)의 성과냐를 둘러싸고 의견이 엇갈린 겁니다. 더스쿠프가 사실관계를 확인해봤습니다.

2021년 건강보험 재정수지가 흑자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사진=뉴시스]
2021년 건강보험 재정수지가 흑자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사진=뉴시스]

지난 2월 25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건강보험 재정 현황을 발표했습니다. 건보공단은 2021년 건강보험 재정을 운영한 결과, 총 2조8229억원의 흑자(수입 80조4921억원 · 지출 77조6692억원)를 기록했다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건보공단의 지난해 누적 적립금도 20조241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마디로 사업의 수지 타산이 잘 맞아떨어진 셈입니다. 

그런데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 뜻밖의 설전이 벌어졌습니다. 발단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인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긴 게시글이었습니다. 내용을 보시죠. “2021년 건강보험 재정수지는 2조8000억원 이상 흑자를 기록하고, 누적 적립금은 20조2000억원으로 문재인 정부가 출범할 당시보다 많다.”

여기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일침을 놨습니다. 고 의원의 발언에 이 대표는 “박근혜 정부가 문재인 정부에 넘겨준 건강보험 누적 적립금이 20조8000억원(2017년 기준)”이라면서 “사회보험료가 남는다는 것은 불필요한 국민의 고혈을 짰다는 얘기”라고 비판했습니다. 

과연 누구의 말이 맞을까요? 조금 어렵습니다. 사실 두 사람이 입에 담은 말의 사실관계를 분석하기 전에 알아야 할 게 있습니다. 건강보험 재정수지는 무엇이고, 누적 적립금의 의미는 또 무어냐는 겁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문재인 정부에선 ‘문케어(문재인 케어)’를 강력하게 실시했는데, 어떻게 흑자도 내고 적립금도 많이 쌓았는지도 궁금해지는데요. 자, 그렇다면 팩트체크에 앞서 이해를 돕기 위한 개념부터 살펴보시죠.[※참고: ‘문재인 케어’란 건강보험 보장률을 높여 가계의 병원비 부담을 낮추고, 이를 통해 국민 의료비 부담을 완화한다는 목표로 수립한 보건 · 의료 정책입니다.]  

■사전지식❶ 건강보험 재정수지란 = 건강보험 재정수지에서 ‘수지收支’란 말 그대로 수입과 지출을 뜻합니다. 건강보험 재정의 수입은 국민건강보험에 가입한 국민들이 다달이 내는 (건강)보험료와 정부지원금, 기타 수익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정부지원금은 국고지원금, 담배부담금으로 세분화됩니다.[※참고: 우리나라에서는 담배소비세의 일부를 건강증진부담금으로 거둬들이고 있습니다.]

지출은 크게 보험급여비, 관리운영비, 기타 비용으로 이뤄집니다. 이때 보험급여비가 바로 우리가 병원에서 검진이나 진료, 수술을 받을 때 국가에서 지원하는 비용이죠. 물론 보험급여비는 건강보험 가입자에 한해 법이 정한 범위 내에서만 지급하게 돼있습니다. 

만약 건강보험 재정에서 보험급여비로 사용한 비용이 많아 지출이 수입보다 크다면 어떻게 될까요? 사용한 돈이 벌어들인 돈보다 많으니 당연히 건강보험 재정은 ‘적자’가 됩니다. 반대로 벌어들인 돈(수입)이 사용한 돈(지출)보다 많으면 건강보험 재정은 ‘흑자’ 상태겠죠. 

■사전지식❷ 누적 적립금이란 = 그렇다면 누적 적립금은 대체 무엇일까요? 적립금의 공식 명칭은 ‘법정준비금’입니다. 쉽게 설명해보겠습니다. 용돈으로 받은 2000원을 들고 슈퍼에 가서 1500원짜리 포켓몬빵을 사먹었다고 가정해보죠. 이때 남은 500원은 용돈을 갖고 있는 사람 마음대로 쓸 수 있습니다. 100원짜리 머리끈을 살 수도 있고, 300원짜리 막대사탕을 살 수도 있겠죠.

하지만 건강보험을 운영하는 건보공단이라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건보공단에선 1년 간 필요한 곳에 지출하고 남은 비용(잉여금)이 발생합니다. 그런데 남는 돈이라고 해서 잉여금을 건보공단 마음대로 사용해선 안 됩니다. 국민건강보험법 제38조에 따라 건보공단은 잉여금의 일정 부분을 미래를 위한 ‘준비금’으로 남겨둬야 하기 때문이죠. 

이렇게 법으로 정해진 의무에 따라 건보공단이 매년 비축한 준비금이 바로 누적 적립금입니다. 이는 건보공단이 국민들에게 지급할 보험급여비가 부족할 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적립금 규모가 클수록 유사시 보험급여비로 충당할 수 있는 ‘여유자금’이 많다는 겁니다.

팩트체크에 앞서 누적 적립금의 개념을 살펴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자! 어려운 내용이 조금은 이해되셨나요? 그럼 지금부터 고 의원과 이 대표가 제기한 말의 진위를 따져보겠습니다.

■팩트체크❶ 文정부 많이 넘겨받았나 = 문재인 정부가 박근혜 정부로부터 건강보험 재정 누적 적립금을 많이 넘겨받은 건 ‘대체로 사실’입니다. 박근혜 정부의 건강보험 누적 적립금은 2013년 2월 출범 이후 가파르게 늘어났습니다. 2012년 기준 4조5757억원 수준이었던 누적 적립금(결산 기준)이 박근혜 정부의 마지막 해인 2016년 20조657억원까지 커졌죠. 

다만 이 대표가 언급한 20조8000억원이라는 숫자에는 오류가 있습니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2017년 5월 10일)한 이후인 2017년 말 기준 누적 적립금입니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가 넘겨받은 누적 적립금은 새 정부가 출범하기 전인 2017년 1분기 기준 20조1817억원(현금흐름 기준)입니다. 

어쨌거나 문재인 정부는 20조원이 넘는 누적 적립금을 넘겨받아 ‘문케어’에 십분 활용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보험급여로 많은 돈을 지출해 재정수지가 적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확인해볼까요? 문재인 정부는 출범 후 2018년부터 2019년까지 2년 연속 100% 이상의 수지율(104.1%→100.5%)을 기록했습니다.

건강보험 재정 적립금은 유사시를 대비해 비축해두는 여유자금이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건강보험 재정 적립금은 유사시를 대비해 비축해두는 여유자금이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그사이 2017년 연말 20조7734억원이었던 누적 적립금은 2018년 20조5955억원, 2019년 17조7713억원으로 쪼그라들었죠.[※참고:건강보험 재정수지율은 100%를 기준으로 그 미만이면 흑자, 그 이상이면 적자를 의미합니다.] 

지출 비용이 많았던 만큼 건강보험 보장률은 강화됐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건강보험 평균 보장률은 64.0%로 역대 정부(노무현 정부~문재인 정부)중 가장 높습니다. 이 지점에서 혹자는 “박근혜 정부가 남긴 넉넉한 적립금 덕분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단견短見입니다. 만약 박근혜 정부에서 적립금 지출이 많았다면, 문재인 정부의 씀씀이도 줄어들었을 공산이 큽니다. 되레 여기서 던져야 할 질문은 따로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누적 적립금을 많이 남긴 게 ‘긍정적’이냐는 겁니다. 이 질문을 풀기 위한 팩트체크는 다음호에서 해보겠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다음호에 계속> 

윤정희 더스쿠프 기자
heartbri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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