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거리 걸어보니…
버려진 킥보드 수두룩
누구를 위한 보도인가

각종 규제와 안전 문제로 몸살을 앓던 ‘공유 모빌리티’ 산업이 국내에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법이 바뀐 데다, 킥보드에 익숙해진 이용자들이 서비스를 즐겨 사용하면서입니다. 카카오·쏘카 등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이 시장에 뛰어들면서 산업 규모도 커지고 있습니다. 그러자 또다른 문제들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킥보드 등 모빌리티의 수가 너무 많아졌다는 겁니다. 사용 후 찾아가지 않는 모빌리티가 보도를 점거한 경우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얼마나 심하길래 이런 지적이 나오는 걸까요? 더스쿠프(The SCOOP)가 킥보드가 많이 다니기로 소문난 홍대입구역을 걸어봤습니다.

수가 너무 많은 탓에 공유킥보드가 도보를 점거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수가 너무 많은 탓에 공유킥보드가 도보를 점거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전동킥보드를 빌려 타는 ‘공유 전동킥보드(이하 공유킥보드)’ 열풍이 한국에서 불기 시작한 건 2019년 10월 무렵입니다. 당시 미국 공유킥보드 스타트업 ‘라임(Lime)’이 국내에 진출하면서 국내 공유킥보드 산업도 성장세를 탔죠. 기본요금 1200원만 결제하면 대중교통이 닿지 않는 곳을 구석구석 누빌 수 있다는 장점은 젊은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습니다.

이런 인기에 힘입어 한국의 공유킥보드 이용자도 빠르게 늘었습니다. 시장조사업체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2019년 4월 3만7294명이었던 공유킥보드 앱 이용자는 2020년 4월 21만4451명으로 1년새 5.7배나 증가했습니다.

공유킥보드만이 아닙니다. 전기자전거를 이용한 ‘공유자전거’도 수요가 커졌습니다. 전기자전거는 페달을 밟으면 모터가 돌아 동력이 발생하는 구조여서 일반 자전거보다 수월하게 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특히 카카오모빌리티가 2019년 3월 카카오T 바이크 서비스를 론칭한 것처럼 내로라하는 국내 기업들이 일찌감치 공유자전거 시장에 뛰어들어 성장세에 불을 붙였습니다. 차량공유업체 쏘카가 공유자전거 서비스 일레클을 운영하는 스타트업 나인투원에 투자해 간접적으로 공유자전거 시장에 발을 담근 것도 그 사례가 되겠군요.

물론 그 과정에서 진통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가령, 초창기 전동킥보드는 자전거 도로를 주행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도로를 달려야 하는 경우가 잦았고, 관련 교통사고가 늘면서 사회적 이슈가 됐죠. 다행히 2020년 12월 관련 법이 개정되면서 전동킥보드도 자전거 도로를 달릴 수 있게 됐고, 이 문제는 일단락됐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문제가 해소됐다는 건 아닙니다. 공유 모빌리티 사업이 활기를 띠면서 또다른 부작용들이 수면으로 떠올랐습니다. 그중 하나는 아이러니하게도 공유킥보드와 공유자전거가 너무 많아졌다는 점입니다.

국내 킥보드 업체로 구성된 퍼스널모빌리티산업협의회(SPMA)에 따르면 국내에서 활동 중인 공유킥보드 업체는 17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등록제가 아니어서 정확한 사업자의 수를 파악하긴 어렵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영세 스타트업까지 포함하면 공유킥보드 업체만 60곳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만큼 공유킥보드 수도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SPMA는 2020년 8월 기준 전국에서 운영 중인 공유킥보드 수를 5만2080대라고 밝혔습니다. 2019년 12월(1만7130대) 대비 3배 증가한 수치입니다. 그중 70.5%는 서울에 집중돼 있습니다. 서울 도심 곳곳에서 공유킥보드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최근 들어 무서운 속도로 늘어난 공유자전거도 현실은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3월 10일 오후 1시, 기자가 방문한 서울 마포구 홍대거리가 그랬습니다. 코로나19 탓에 이전보다 꽤 한산해지긴 했지만 홍대는 여전히 ‘젊음의 거리’라고 불릴 정도로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곳입니다. 그래서인지 이곳 홍대에선 거의 모든 공유킥보드·공유자전거 브랜드들을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홍대입구역 9번 출구를 나와 ‘양화로’를 따라 걸었습니다. 블록마다 서너개씩 놓여있는 공유킥보드가 눈에 띕니다. 이뿐만 아니라 전기자전거도 곳곳에 비치돼 있습니다. 그래도 양화로 인도가 널찍해서인지 킥보드와 자전거가 걷는 데 방해를 주진 않았습니다.

공사 중인 남강빌딩 코너를 돌아 홍익로로 들어섰습니다. 홍익대로 이어지는 홍익로는 ‘어울마당로’와 ‘걷고싶은 거리’인 홍익로3길이 중간에 연결돼 있어 꽤나 복잡한 곳입니다. ‘어울마당로’에서 H&M 건물을 끼고 돌자 도로 한편에 놓여있는 공유자전거가 눈에 들어옵니다. 황색 점선 안쪽에 세워져 있긴 했지만, 발판에만 의존해 있는 자전거가 안전해 보이진 않습니다.

사람보다 많은 킥보드

15분 정도 걸으니 홍대 앞에 도착했습니다. 학교 앞 한편엔 공유킥보드가 업체별로 줄지어 세워져 있고, 주변 보도 곳곳에도 사용한 흔적이 있는 킥보드와 자전거가 즐비합니다. 왼쪽엔 자전거, 오른쪽엔 킥보드가 세워져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사이는 사람 2명이 간신히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기만 합니다.

일반적으로 보도의 유효폭은 가로수와 교통신호 제어기를 제외하고 2.0m 이상이 돼야 하는데, 홍대 앞 보도의 폭은 2m가 조금 넘는 수준입니다. 이같은 보도에 1~1.2m 길이의 전동킥보드가 여기저기 서 있으니 보행에 방해가 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이처럼 특정 지역에 공유킥보드·자전거가 집중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공유 모빌리티 수요가 높은 지역을 우선적으로 기기를 배치하기 때문이죠. 공유킥보드 업체 라임 관계자는 “이용자들의 탑승 관련 기록이 앱에 저장되는데, 이를 분석해 이용자들의 수요가 높은 지역에 우선 배치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른 업체들도 이같은 방식을 사용한다면 한 지역에 기기가 쏠릴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홍익로를 따라 내려가는데, 아까 버스정류장 앞에서 봤던 전동킥보드에 스티커를 붙이고 있는 남성이 눈에 띄었습니다. 용역업체 직원이라고 밝힌 그는 “전동킥보드는 버스정류장 10m 이내에는 놓을 수 없다”면서 “우리 회사에서 마포구와 계약해 불법 주차한 킥보드나 자전거를 수거해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용역업체는 수거한 킥보드와 자전거를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차량보관소로 옮깁니다. 그러면 공유 모빌리티 업체들이 보관소를 찾아가 수거해가죠. 이 정책은 지난해 7월 서울시가 국내 처음으로 도입했습니다. ▲차도 ▲지하철역 출구 ▲버스 정류소 ▲점자블록 위 ▲횡단보도 등 교통약자 통행에 방해를 주거나 교통사고 발생 우려가 큰 5개 구역에 주차할 경우 불법주차로 간주해 견인업체가 즉시 견인하는 게 이 정책의 골자입니다. 불법주차 대상이 된 공유 모빌리티 업체에는 불법주차 1건당 견인료 4만원과 보관료(30분당 700원)를 부과하는 등 제재 강도가 꽤 높습니다.

용역업체 직원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하루에만 수십대의 킥보드에 부과했다”면서 “지금은 벌금 부여 횟수가 하루 5~6건으로 그나마 나아진 편”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실제로 마포구 홍대입구역은 전동킥보드 주·정차 위반 건수가 많기로 손꼽히는 지역입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서울 주요 지역 40곳 중 홍대입구역 위반 건수는 52건(총 673건 중 7.7%)으로 1위를 차지한 바 있습니다.

공유 모빌리티 업체들은 지자체의 방침에 동의하면서도 내심 억울하다는 반응을 보입니다. 공유킥보드 업체 관계자는 “약관은 물론이고 앱 내에 팝업을 띄우는 등 주정차 권장 구역을 지정해 이용자들에게 지속적으로 알리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면서 “이용자들이 올바르게 주차해 주기만을 기대해야 하는 상황이다”고 말했습니다.

불법주차 논란이 커지자 서울시는 지난 22일 GPS를 이용해 공유킥보드 이용자가 불법주차구역에서 주차시 반납을 못하도록 하는 기술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상습적으로 위반하는 경우엔 경고(1차)부터 앱 계정 해지(4차)까지 단계적인 조치도 취할 계획입니다.

이렇게 지자체에서 나름 신경을 쓰고 있지만, 공유 모빌리티의 도보 점거를 완벽하게 방지하진 못합니다. 앞서 언급한 5개 구역 이외에 세워진 킥보드·자전거는 견인업체가 수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시민이 민원으로 신고하면 견인이 가능합니다만, 그다지 효과적인 방법은 아니죠.

불편한 건 보행자뿐만이 아닙니다. 상인들이 피해를 보는 경우도 꽤 많습니다. 킥보드와 자전거가 가게 앞에 세워져 영업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에서입니다. 킥보드를 의도적으로 가게 앞에 세워놔서 피해를 입었다는 상인도 적지 않습니다.

한 휴대전화 대리점 사장의 한탄을 들어보시죠. “한번은 어떤 업체에서 자기네 킥보드를 (우리) 가게 앞에 쫙 깔아놓았어요. 화가 나서 전화번호를 찾았는데, QR코드만 있고 회사 전화번호가 없더라고요. 결국 견인해 달라고 마포구청에 민원을 넣었죠. 킥보드 1대가 이틀이 넘도록 가게 앞에 세워져 있던 적도 있었어요.”

이렇듯 공유 모빌리티에 관한 인식이 나빠지자 업계 내부에서도 시장을 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일례로 지난해 9월 라임은 정부 차원에서 공유킥보드 수를 제한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과거 공유킥보드 붐이 일었던 미국 샌프란시스코가 추진한 ‘공유킥보드 허가제’를 도입하자고도 밝혔습니다. 공유킥보드 허가제는 지자체에서 일부 업체에 공유킥보드 허가증을 발급하고, 그 업체에 한해 주차를 허용하도록 하는 게 골자입니다. 한국보다 앞서 이런 진통을 겪었던 해외의 사례에서 답을 찾자는 겁니다.

킥보드와 자전거가 가게 앞에 주차돼 상인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사진=더스쿠프 포토]
킥보드와 자전거가 가게 앞에 주차돼 상인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사진=더스쿠프 포토]

하지만 이 주장은 다른 공유 모빌리티 업체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유야무야됐습니다. 공유킥보드 업체의 한 관계자는 “샌프란시스코가 공유킥보드 허가제를 도입할 당시엔 라임과 버드 등 공유킥보드 사업을 시작하는 업체가 한두 곳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업체만 수십곳에 이른다”면서 “공유킥보드 허가제를 도입하면 일부 기업에만 혜택이 돌아갈뿐더러 국내에서 전동킥보드 사업이 성장할 기회를 가로막는 것이나 다름없는 셈”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불법주차 문제 여전해

어쨌거나 한국은 이미 공유 모빌리티에 익숙해진 듯합니다. 1시간 30분간 홍대거리를 걸으면서 킥보드를 타고 도로를 질주하는 이들을 숱하게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보행자를 위한 보도가 좁아진 건 풀어야 할 과제입니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공유 모빌리티가 상인의 장사를 방해하는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도 정부나 지자체가 해결해야 합니다. 조금씩 도보를 점거해가는 공유 모빌리티, 이대로 괜찮은 걸까요?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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