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수의 Clean Car Talk
규제가 발목 잡은 PM의 현주소
헬멧 착용 의무화 뒤 이용 급감
지역마다 견인 요건도 천차만별
현장 사업자·소비자 혼란스러워

지난해 5월 정부는 도로교통법을 개정해 전동킥보드 이용자들의 ‘헬멧 착용’을 의무화했다. 문제는 공유 전동킥보드에서 나타났다. ‘헬멧 착용’을 의무화하긴 했지만, 헬멧의 구비 주체가 누구인지는 규정하지 않아서다. 공유 전동킥보드 업체의 헬멧은 위생상 우려가 제기됐고, 그래서 쓰기 싫으면 개인이 헬멧을 사야 하는 탓에 현장에선 혼란이 발생했다. 더스쿠프가 규제에 발목 잡힌 퍼스널 모빌리티의 현주소를 진단했다.

국내 PM 시장이 각종 규제에 막혀 쪼그라들고 있다.[사진=뉴시스]
국내 PM 시장이 각종 규제에 막혀 쪼그라들고 있다.[사진=뉴시스]

국내에서 전동킥보드를 비롯한 퍼스널 모빌리티(PM · Personal Mobility) 서비스가 시작된 지 올해로 4년째다. PM이 처음 도입될 당시만 해도 관련 시장의 성장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세계 각국이 기후위기 대응책으로 탄소 배출 감축을 추진하면서 국내에서도 친환경 이동수단인 PM의 필요성이 커질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참고: PM의 종류에는 전동킥보드, 전동스쿠터, 전기자전거 등이 있다.]

하지만 당초 기대와 달리 국내 PM 시장은 되레 죽어가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의 규제가 PM 시장의 성장을 방해하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어서다. 대표적인 사례는 2021년 5월 시행된 개정 도로교통법이다.

당시 정부는 PM 관련 사고가 급격히 늘어나자 기존 도로교통법에 PM 이용 시 헬멧 착용을 의무화하는 조항을 추가했다. 이에 따라 헬멧 등 인명보호장구를 착용하지 않은 PM 운전자는 2만원의 범칙금을 물게 됐다(도로교통법 제156조).

이용자들의 안전을 강화한다는 취지에서 보면, 이상할 게 없는 법 개정이었다. 문제는 개정 도로교통법의 실질적 효과였다. 한가지 통계를 살펴보자. 헬멧 착용 법제화 후 한달 만인 2021년 6월 13일 한국교통안전공단은 PM 중 하나인 공유 전동킥보드의 이용 실태를 조사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개정 도로교통법 시행 전 0.4%였던 안전모 착용률은 개정법 시행 후 2.9%로 2.5%포인트 오르는 데 그쳤다. 정부 규제의 실효성이 그만큼 떨어진다는 방증으로 풀이할 만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개정 도로교통법은 또다른 문제를 초래했다. 헬멧 착용 의무화가 실제로 적용되자 PM 이용률이 급감하기 시작했다.

빅데이터 전문기업 TDI의 분석 결과, 헬멧 착용을 법제화한 개정 도로교통법 시행 후 국내 4대 공유 전동킥보드 앱의 일간활성이용자수(DAU)는 평균 68.7% 줄어들었다. 공유 전동킥보드 업체들로선 잘나가던 사업에 제동이 걸린 셈이었다.[※참고: 분석 대상으로 삼은 공유 전동킥보드 앱은 Beam, 킥고잉, 씽씽, 지쿠터다. 비교 시점과 대상은 2021년 5월 13일 대비 5월 16일 일간활성이용자수다.]


실효성 없는 제도 ‘역효과’

정부 정책이 의도와 다르게 악수惡手로 작용한 원인은 명확하다. 공유 전동킥보드 업체들이 마련한 헬멧은 불특정 다수가 사용하는 탓에 소비자 사이에서 위생 논란이 제기됐다.

개정 도로교통법 시행 전 여론조사에서도 ‘공유 전동킥보드 업체에서 제공하는 안전모를 착용할 의향이 있다’고 밝힌 이들은 소비자 10명 중 4명에 불과했다(2021년 4월 · 설문조사 전문업체 오픈서베이). 이를 감안하면 헬멧 착용이 의무화된 이후 소비자들은 누가 썼는지 모를 헬멧을 쓰기보단 전동킥보드를 이용하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혹자는 “전동킥보드 이용자들이 직접 헬멧을 구비하면 될 일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언제 어디에서 전동킥보드를 이용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용자 개개인이 매번 헬멧을 들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용자들 입장에선 헬멧 착용 의무화가 전동킥보드 이용에 장벽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PM 업계의 성장동력을 꺾은 요인은 또 있다. 지자체별로 제각각인 견인 요건이다. 공유 전동킥보드 시장을 살펴보면, 광주·대구·원주·제주는 관련 조례를 개정해 불법주차된 전동킥보드를 지자체가 직접 견인하고 있다.

반면 성남 · 용인 · 수원 · 남양주 등 대다수 경기권 지역은 지자체가 견인하지 않고 업체가 수거한다. 서울시는 ‘즉시 견인구역’을 지정해 자체적으로 전동킥보드를 견인하고 있지만 자치구별 운영 정책에는 차이가 있다. 전국구 사업장을 운영하는 공유 전동킥보드 업체들로선 어느 장단에 사업의 초점을 맞춰야 할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주먹구구식 규제가 발목 잡아

더욱이 불법주차된 전동킥보드의 경우 이용자가 아닌 사업자(공유 전동킥보드 업체)가 견인료와 보관료를 납부해야 한다. 불법주차 건수가 늘어날수록 업체가 부담하는 견인·보관료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는 거다. 업계 안팎에서 “견인 구역에 전동킥보드를 주차하는 이용자에게 페널티를 부과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정부와 지자체의 주먹구구식 규제 탓에 PM 시장은 급격히 쪼그라들고 있다. 공유 전동킥보드 시장만 해도 지난해 5월 125만7644명이었던 월간활성화이용자수(MAU)가 올해 2월 56만7556명으로 54.9% 감소했다(빅데이터 플랫폼 기업 모바일 인덱스). 정확한 시장 분석과 계획 없이 무작정 도입한 규제가 PM 이용자의 안전·편의는 고사하고 시장 자체를 죽이는 결과로 돌아온 셈이다.

PM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PM의 특성을 반영한 법과 제도가 필요하다.[사진=쏘카 제공]
PM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PM의 특성을 반영한 법과 제도가 필요하다.[사진=쏘카 제공]

그렇다고 무너지는 PM 시장을 이대로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필자는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릇부터 바꿔야 한다고 판단한다. 현재 PM 시장의 발목을 잡는 가장 큰 문제는 PM 관련 법과 제도가 PM의 특성을 반영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자동차·자전거 등 기존 이동수단을 중심으로 한 교통법에 PM 조항을 마구잡이식으로 끼워 넣었으니 규제가 제대로 작동할 리 없다.[※참고: PM 전용법을 제정하려는 움직임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2020년 홍기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박성민 국민의힘 의원이 각각 PM 관리·안전·이용활성화를 위한 법률안을 발의했지만 아직까지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다행인 건 국내 PM 시장을 되살릴 수 있는 기회가 아직 남아있다는 점이다. 그 방법은 이제라도 새로운 그릇을 마련하는 거다. 이를 위해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PM 관련 법안을 다시 점검하고 다듬어서 제도적 기반을 구축해 나가야 한다.

사업자의 애로사항은 해소하고 소비자들의 안전을 보호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다면, 국내 PM 시장은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거다. PM은 친환경 이동수단 중 하나다. 그만큼 교통당국의 한걸음 한걸음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글=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
autoculture@hanmail.net | 더스쿠프

윤정희 더스쿠프 기자
heartbri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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